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오주환
얼마 전, 우연히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베네수엘라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들 아시다시피 베네수엘라는 남미의 석유수출국임에도 가난한 나라이고 차베스라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차베스는 석유수출국기구에서 “석유를 사람에 비유하면 피와 같은데... 수혈을 해주는 나라의 국민들은 가난해지고 수혈 받는 나라는 잘 살게 되는 모순된 현실이 있다”고 연설하면서 일약 미국 네오콘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게 된 인물이다. 그 후 베네수엘라에서 석유와 관련된 산업을 국유화시키고 이 산업에서 발생하는 이윤으로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차베스는 자국 내의 민중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로 인해 미국의 사주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쿠데타세력에 의해 강제감금 되지만 “굴복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선언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을 타고 그의 지지자들이 대통령궁을 에워싸기 시작하여 엄청난 인파가 그를 엄호함으로써 민중의 힘으로 결국 대통령직에 복권할 수 있었던 그 감동의 드라마는 독자들께서도 많이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한편, 이웃나라인 쿠바는 혁명 이후 보건의료 자원의 체계적 정비와 보건의료 부문의 개혁 성과로 인해, 이전에 비슷하게 나쁜 수준의 영아사망율 등의 건강지표를 가졌던 다른 남미국가들보다 이제 상당히 앞선 국민건강수준의 향상을 달성하고 있다. 이런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조치로 오랜 기간동안 어려움을 겪어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쿠바에 석유를 계속 공급해주던 나라는 예전에는 소련이었는데 소련의 해체 이후 이런 석유공급의 중단으로 겪는 어려움을 대신 도와주게 된 나라가 바로 가까이에 있는 베네수엘라라고 한다. 독재정권이 물러난 이후의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를 공급받고 있는 쿠바는 다음과 같이 베네수엘라에 그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의료자원이 부족한 베네수엘라의 1차 의료를 돕기 위해 2003년 4월 58명의 쿠바 의사들이 베네수엘라에 건너가서 쿠바의 일부지역에서 1차 의료를 책임지는 의사의 임무를 해준 것을 시작으로, 그 해 6월에는 500명의 쿠바 의사들이, 그 해 9월-12월에는 수천 명의 쿠바의사들이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1차 의료와 보건의료인력 교육 등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참으로 엄청난 규모에 놀란다. 1회성 의료봉사활동도 아니고 현지체류를 하는 도움을 이렇게 대규모로 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이런 사실이 국내에 잘 알려진 적이 없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이들이 베네수엘라에서 진행한 의료활동 양상을 보면, 한 달에 26일간 일하였으며, 하루 중 오전에는 진료소에서 20~40명의 환자들을 개인단위로 진료하고 오후시간에는 가족단위로의 방문진료를 하였다고 한다. 한사람의 쿠바 의사는 250가구 12,500명 정도의 베네수엘라인들을 담당하여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진료뿐 아니라 주택문제, 식품안전, 교육, 운동 등에 대해 폭넓게 접근하며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쿠바 의사에게 여기에 오게 된 동기를 묻자, ‘그런 질문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국가간에 서로 돕는 프로그램이며 돕기 위해 왔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부유한 자들은 이미 자신의 의료서비스를 가지고 있겠지만, 자신들은 이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왔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너무 감동스런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어떤 1회성의 의료봉사활동도 이렇게 대규모였던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긴 기간에 걸쳐 체계적인 보건의료지원활동을 이렇게 꾸준히 진행하였다는 게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몇 년 전부터 받아온 석유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쿠바에서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양질의 훈련되고 자발적인 의료인. 너무나도 그 현장의 느낌을 보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행사에서인지 베네수엘라의 마을주민들이 쿠바 의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주변에서 환호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는 쿠바 의사들과 함께해서 행복하다”, “쿠바는 우리를 도와준 첫 번째 외국정부이다”라는 말들이 있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정말 그런 감동의 장소에서 진료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조건 없이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