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김인아
글을 청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조합원의 씨를 말려버리기라도 할 듯 덤벼드는 자본과 정부의 공세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지라 조합원이건, 간부이건, 심지어 울산에서 연대하고 있는 동지들이건 글쓰기가 힘들 정도로 바쁘다고 했다. 상황은 그렇게 급박했다. 취재를 가야 마땅하건만 그것 역시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알려야 했다. 그만큼 급박하고 소중한 투쟁이기에 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이라도 현장통신을 쓰기로 했다. 동지들의 양해를 구하며 이런 급박함과 중요함이 동지들의 마음으로 가 닿아 연대의 함성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한 것은 지난 3월 18일이었다. 3개월이 넘어가는 파업기간 속에서 플랜트 동지들은 대거 연행되기도 하고, 노숙농성을 하기도 하고, 타워크레인 점거농성과 SK 정유탑 고공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노조간부 9명에게 출두요구서가 날아왔고, 5일만에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5천여명의 경찰병력이 즉각 투입되어 현장을 봉쇄했으며 폭력진압과 검거 등 계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4월 1일 출근투쟁을 마무리하고 있던 조합원 24명을 그 자리에서 연행했고, 이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해 2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4월 8일에는 연좌집회를 진행 중이던 조합원 825명을 연행하여 이중 9명을 구속하고, 1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4월 30일 첫 교섭이 이루어졌으나 사측은 집단교섭 거부하였다. 서울의 타워크레인과 울산의 정유탑에서 고공농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까지 검찰은 지도부 연행을 시도하고 사측은 집단교섭을 거부하고 있으며, 언론은 ‘고공농성자 호화성찬’ 등의 허위 보도로 삼박자를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플랜트 노동자들의 요구는 아주 간단하다.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에 불을 당겼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35년이 지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근로조건 개선(1일 8시간 노동보장과 유급휴일 및 주/월차 보장)’, ‘재하청(다단계) 금지’, ‘산업안전 보장’, ‘탈의실, 샤워실과 중식 및 휴게시설 확보’, ‘노조 인정’과 같은 플랜트 동지들의 요구는 70년대가 아닌 2005년의 목소리이다.
하루 종일 유해한 화학물질을 뒤집어쓰고 땀에 흠뻑 절어도 샤워는커녕 손조차 씻지 못하고 퇴근해야 했다. 탈의실이 없으니 새벽밥 먹고 현장에 와 도로에서, 출퇴근길에 비좁은 차량 안에서 작업복을 갈아입어야 했다. 화학물질이 내려앉고 시멘트가루 쇳가루가 날리는 속에서, 비를 맞아가며 밥을 먹어야 한다. 화장실조차 제공되지 않아 풀숲에서 눈치껏 해결해야 했다. ‘화장실을 제공해 달라’는 것이 단협의 주요한 요구다. 이것이 3달을 넘게 목숨 건 파업을 하고 있는 플랜트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다.
지난해 4월 삼양제넥스 수소저장탱크 폭발사고로 3명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10월에는 한국바스프 유화공장 폭발사고로 조합원 5명이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이렇게 중대재해의 위협에 노출되면서 위험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노가다’라는 비정규직의 이름이다.
이렇게 목숨걸고 일을 하면서 착취당하는 데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는 그물망이 근본적으로 깔려 있다. 이를테면 SK(주) 삼성정밀화학(주) 한화석유화학(주) 등은 건설공사 도급을 주는 발주회사들이다. ‘SK건설 주식회사’와 같은 경우가 도급받는 1차 건설업체이며, 이들은 도급받은 건설공사를 다시 ‘제이콘’ 등과 같은 전문건설업체에 하청(하도급)을 준다. 다시 이 업체는 더 작은 업체에 재하청(하도급)주는 방식으로 이렇듯 4~5단계를 거쳐 시공에 참여할 노동자를 모집하게 되는 것이다.
도급이란 것이 일정한 기일 안에 해야 할 일을 전체적으로 하청 주는 것이기에 이러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이윤확보를 위한 무리한 공사기일 단축과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 부실공사, 주/월차 수당 떼먹기, 심지어는 밥값 떼먹기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여기에 기반해서 원청회사들과 건설업체들은 다양한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서로의 배를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법 다단계 하도급의 고리를 끊고, SK(주)와 같은 원청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그들의 투쟁과 “제발 좀 도와달라”는 그들의 절규를 연대의 함성으로 화답하자. 전국에 울려 퍼지고 있는 비정규직들의 분노와 절규를 외면하지 말자. 지금 이들의 투쟁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말자.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