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위원 김소진
사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박지선
(intro)
지난 6월 14일, 사조레미콘 정문 앞에서 파업 중 대체인력 도입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사측의 대체근로 레미콘 운전차량에 깔려 사망한 김태환(한국노총 충주지부장) 열사의 죽음으로 특수고용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특수고용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개인사업자등록을 받도록 하는 방식으로, 사용자가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일을 시키는 고용형태이다.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 레미콘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A/S기사, 애니메이터, 텔레마케터, 방송작가, 리포터 등의 특수고용 노동자는 사용자와 형식적으로는 위탁 내지 도급계약 형태를 띠고 있고, 일반적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조합관계법 상에서도 노동3권이 적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작년 7월 사측의 일방적인 용역전환에 반대하며 시작된 한원C.C. 투쟁은 283일간의 끈질긴 투쟁 끝에 올해 4월 16일 타결되었다. 지난 투쟁기간 동안 해고, 구속, 손배가압류 등 수많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천막농성과 단식농성, 노숙투쟁 등 힘겨운 투쟁을 꿋꿋이 진행해온 결과 얻어낸 승리라 할 수 있다. 한원C.C 사측은 당시 ‘경기보조원 업무복귀, 조합인정, 손배가압류 철회 등’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였으나 아직 현장에 남아있는 투쟁의 과제가 녹녹치 않은 듯하다.
한원C.C 노동조합 투쟁, 남겨진 과제
40만평의 광활한 대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다는 용인시 남사에 위치한 한원C.C.로 들어가는 길목과 주차장에는 푸르른 나무들과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다. 공기 좋고 드넓은 자연에서 한가롭게 골프를 즐기는 손님들에 반해, 특수고용직으로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 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의 얼굴에선 좀처럼 여유를 느끼기 어렵다.
전통 한옥식 클럽하우스와는 대조적으로 주차장 한켠에 위치한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한원C.C노동조합 위원장 김부영 동지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 한원C.C 노동조합이 설립되서는 조합원이 44명이었어요. 시작하자마자 용역으로 전환시켜 용역으로 많이 들어갔고, 7명이 남았었거든요. 10개월 투쟁하는 동안에 5명이 여러 가지 회사의 협박과 손배가압류 문제로 포기를 했고, 정직원은 저와 식당에서 일하시는 김미순씨 2명만 남았어요. 나머지 28명은 경기보조원으로 총 30명이 조합원으로 있어요.”
회사는 조합원들 개개인에게 5천만원에서 2~3억 가량 걸어놓은 손배가압류 철회 등에 대한 합의를 약속했으나,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조합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 취소에 늑장을 부려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회사에서 용역으로 가라는 것을 거부하고 정직원으로 남아 있는 경력 20년차인 김미순씨는 3억이나 가압류가 걸려있는데, 회사에서 지난달에 월급을 가압류 통장에다 넣어 월급도 못 받았다고 한다.
“복직... 사실 투쟁보다 더 힘들어요”
식당일을 마치고 조합사무실에 들리신 김미순씨에게 복직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복직... 사실 투쟁보다 더 힘들어요. 위원장님은 노조 전임자시고 정직원으론 제가 혼자 일하고 있거든요. 그간 제가 식단짜고 사무정리까지 다 하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복직하면서 회사에서 우리를 싹 무시하고 생판 모르는 영양사를 대리로 앉혀놓더니 영양사 지시에 따르라는 거예요. 우리 인원에 영양사가 필요하지 않거든요. 내가 보기에는 감시하는 거죠. 저는 회사에서 계속 용역으로 가라는 것도 안 가고 한원C.C 정직원으로 정년퇴직 하겠다는 걸 주장했어요. 그래서 탄압이 엄청 심했죠.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매점으로 보내거나 구조본부실에 데려다놓고 맨날 작업시키고 계속 일을 하던 사람한테 일거리를 안 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벌당, 벌로 당번한다!?
한원C.C에는 조합원 28명의 경기보조원 이외에, 용역으로 전환되거나 고용되어 있는 120여명의 경기보조원들이 있다. 요즘 사측에서는 조합원들이 코스에 나갈 경우 팀장과 용역 진행들을 붙여 몰래 숨어서 보고 쫓아다니며 꼬투리 잡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경기보조원 조합원들이 하나 둘 사무실로 들어왔다. 더위에, 하루 종일 카트와 백을 옮겨가며 진행을 해 지칠대로 지친 조합원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골프장에서는 골프장 나름대로 룰(서비스태도 불량, 카트사고, 손님 소지품 분실, 진행이 늦어지는 경우 등)을 정해 놓고,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 하루 종일 청소를 시키는 ‘벌당’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벌당을 받게 되면 그 날은 일을 못하게 되므로 일을 마치고 손님에게 받게 되는 수입이 당연히 없게 마련이다. “만일 카트관련 사고가 일어나면 카트에 손상이 있거나 망가졌을 때 벌당을 주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요즘 회사는 카트에 손상도 없는데도 경위서 쓰거나 재교육 받으라고 하고 있어요. 숨어서 쫓아다니면서 감시하고, 조금만 잘못하면 바로 벌당을 줘야 한다느니 제재를 가해야 한다느니 하는 얘기가 들어와요. 조합원이라고 이렇게 하는 건 너무 부당하다는 거죠”
“너 노동조합이지? 너 조합원이니까 다 죽었어”
한원C.C 골프장을 찾는 손님들 중에는 파업참가 조합원하고는 필드에 나갈 수 없다며 라운딩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손님들이 우리가 조합원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회사측에서 일부러 조합원들에게 백을 안 주려고 유도하는 거예요.”
비를 맞으면서 일을 해도 행복하다는 조합원들의 바램과는 반대로, 그 고귀하신 일부 ‘손님’들의 언행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손님한테 나가면 손님이 딱 그래요. ‘너 노동조합이지? 너 조합원이니까 다 죽었어.’라고 처음 나갈 때부터 손님이 그런 말을 해요. 그런 사람도 있고 조합원인 걸 알고서 클레임을 걸고 넘어지는 손님들도 있어요. 벌당에 포함이 되지 않는 다른 것도 걸고 넘어지는 거예요.”
회사측에서는 공공연히 조합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다 짤라버리겠다는 등, 백을 전체적으로 안 줄 수 있다는 등, 조합에 대한 탄압과 차별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회사측에서 엄청 협박해요. 우리는 조합원이 아니라는 거예요. 너네는 조합에서만 조합원이고 여기 나와서 일하는 건 개인으로 일을 하는 거라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조합 자꾸 운운하지 말라면서.”
“볼에 맞는 사고도 많고, 위험한 산재사고나 직업병에 노출된 상황이에요.”
또한, 경기보조원들은 직무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사고성 재해, 직업병 등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필드에 나갔다가 볼을 맞는 경우가 있어요. 볼에 맞으면 손님이 딱 하는 말이 ‘니가 앞에 가 있어서 맞았다’는 얘길 해요. 손님이 치료비를 주지 않으면 자기가 알아서 치료를 하거나 멍이 든 채로 다니는 거죠.”
경기보조원들은 업무 중에 타구에 머리를 맞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강하게 날아오는 공에 허벅지나 팔을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드는 상황도 빈번하지만 산재혜택을 받지 못해 일반 노동자들과 큰 차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골프장은 노동강도가 세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경기보조원 업무는 육체노동이라 근골격계가 많이 발생할 수 있지요. 볼에 맞는 사고도 많고, 위험한 산재사고나 직업병에 노출된 상황이에요. 노동3권을 인정받고 4대보험 적용을 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해요. 이후 열심히 투쟁해 나가면서 해결해 나가야지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받고 노동3권 보장받는 것이 투쟁의 끝이라 할 수 있겠죠”
경기보조원들은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남녀고용평등법 상의 보호도 받지 못했으며 해고를 당해도 하소연할 길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투쟁에서는 이겼지만, 경기보조원 뿐만 아니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문제로 남아 있어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더 큰 투쟁을 벌여나가야지요. 지속적으로 투쟁해서 결국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노동3권을 보장받는 것이 투쟁의 끝이라 할 수 있겠죠.”
한원C.C 노동조합에서는 복직 이후 현장에 남겨진 과제와 투쟁 이전부터 발생했던 단협을 근거로 한 55세 정년문제에 대한 투쟁을 또다시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끈질긴 투쟁과 실천은 전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아 가는 또 하나의 성과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