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칼럼]여러 갈래 길

자유기고가 박일평

노동운동가 출신 방용석은 지금 세간의 화제다. 아니 더 정확히는 노동운동진영의 화제다. 노조 탄압, 진정사건 특별 지시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이번에는 산재 진정인 및 면담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민주노총 등 47개 단체로 구성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하이텍 공대위)'에 따르면, 방용석 이사장은 지난 6월 16일 하이텍 사건 관련하여 면담하러 들어갔던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 당 위원장 등 6명의 면담자에게 폭언 및 폭행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서위원장 등 이 날 면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서위원장과 방이사장간의 몸다툼이 시작되자 공단 직원들 수십명이 몰려와 서로를 떼어놓은 후, 면담자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프레시안 기사 中) 그가 "민주노총이 다 와도 안 만나면 안 만난다.", "내가 복지공단을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이 건(하이텍노조 진정건)은 처리 못한다.", "이 새끼들아, 니들이 노동운동하는 인간이냐, 나도 노동운동 30년 했는데, 니들처럼 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

그렇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동운동의 산 역사로 묘사된 적도 있다. 동아일보 사설에도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1970년대 유신 치하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세 차례나 투옥된 경력이 있다. 그는 노동운동 자체가 불온시되던 시대에 원풍모방 노조위원장으로, 근로자의 건강을 위협하던 유해 작업환경과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웠던 노동운동의 원조(元祖) 격이다.”라고 극찬 받은 바 있으니, 소위 ‘새까만’ 후배들의 철없는 어거지에 분통이 터질만도 할 것이다. 그는 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의 대명사였던 한국모방, 원풍모방의 노조지부장을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70,80년대 격렬했던 민주노조 운동을 이끌었던 산 증인이었다. 이후 지난 1995년 국민회의 당무위원을 거쳐 15대 민주당 국회의원(전국구)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지난해 3월에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및 명예회복추진위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아마 보상도 받았을 게다. 이후 그는 새천년 민주당 원내 부총무도 역임하고 한국 가스안전공사 사장도 했으며, 노동부장관까지 역임했으니, 노동자 출신 중에서는 아마 가장 성공한 인물일 것이다. 최근 잘나가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이나 울산 구청장들이 고진감래하며 오늘의 위치를 가다듬었다면, 방용석은 우울한 70년대를 지내고 90년대 들어 화려하게 정계로 진출한 성공한 정치인이다.

이제 장관직을 마치고, 말년(?)을 노동자 복지에 투신하게 되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 창립 10주년 기념사에서 “우리 산재보험시스템은 지난해 11월 일본 사회보험노무사들이 견학을 왔을 정도로 선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만족해선 안 됩니다. 건강보험/국민연금 등과 연계해 근로자들에게 빈 틈 없는 복지혜택을 줄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라고 그 의미를 강조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선진국 수준의 재해보험 공단으로 발돋움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다고도 하였다. 방용석은 공단의 관리, 운영을 정부가 독점하는 형태에서 기업, 노동조합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전환해 산재보험요율, 요양관리의 적정화를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가 자신의 욕구에 따라 선택하는 복지서비스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공하기 위해선 자율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에 의한 이른 바 “고객만족경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푸하하!! 고객만족 경영!!

그래서 그가 도입한 주요 정책은 성과관리시스템과 주요 보직 공모제이다. 공단을 경쟁력 있게 경영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한편 그는 노동운동 출신답게 노동운동 노선에 대해서도 간섭을 해왔다. 그는 공기업 노조가 “순수성을 잃었다”고 질타했다. 어려운 시절에 투쟁했던 노동운동계의 대선배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쓴소리임에 틀림없다. “공기업 노동운동이 순수성을 잃어가는 것을 보다 못해 후배들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문을 연 것”이라고 보수 언론이 거들기도 하였다. 공기업 노조는 처우 문제에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자(?) 경영권과 인사권 개입에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기업 임금은 정부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올려져 확정되기 때문에 공기업 노사는 임금교섭을 할 수 없단다. 그래서 실제로 임금 투쟁을 할 필요도 없다. 공기업 직원들의 임금은 공무원 급여는 물론이고,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기업의 임금보다 많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공기업 노조가 임금과 복지 문제로 싸울 것이 별로 없다고 해서 사용자의 권한인 인사권과 경영권을 넘보는 것은 노동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월권이라는 것이다.

어디서 놀던 친구일까?

그가 경영평가를 하고 그 실적을 인사에 반영하자 근로복지공단 노조는 “단체협약을 위반했다”고 반발하였는데, 바쁜 시기(?)에 조합원 총회를 열고 업무를 태만히 했다 하여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단한 사람이다.

원풍모방 노동조합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72년부터 시작된 투쟁이니까 무려 32년을 이어왔다. 노무현 정부가 민주화 운동을 인정하고 복직 권고안을 내기까지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6월 2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조원 13명이 지난달 10일 “지난 4년 동안 회사쪽의 부당해고와 직장폐쇄, 차별로 인해 정신질환이 생겼다”며 낸 산재신청에 대해 “조합원 모두 정신질환이 있는 것은 인정되지만 스트레스의 원인이 노사 대립관계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사 대립 기간에는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기간에 발병 원인이 있었다면 산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공동대책위원회의 유성규 노무사는 “지난 4년 동안 파업을 한 쟁의기간은 사흘뿐이었고, 정신질환의 원인이 된 스트레스는 생산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 감시와 차별 때문”이라며 불승인 철회를 요구했다.(한겨레 신문)
이런 류의 대립과 투쟁은 노무현 정부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주목되는 것은 이 대립과 투쟁의 한 가운데 30년 노동운동의 산 증인이라는 지배계급의 대표주자인 방용석이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갈래 길

방용석이 이 세상의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을 때, 그가 잊었을지도 모르는 동지인 원풍모방노동조합의 부지부장 박순희씨는 감옥과 감시를 전전긍긍하였다. 그녀는 지금도 어려운 싸움이 발생하면 온몸을 하께 던지고 있다.

“피신해 다닐 때는 조합원들 집을 전전했고, 아니면 공동생활을 했지. 감옥에서 독방생활 할 때 ‘이게 1인주택이구나’ 그랬어. 70년대 한창 산업화될 때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거든. ‘80년대에는 1가구 1주택에 마이카 시대를 열어준다’고.... 감옥에서 독방에 갇혀 살려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고. 마이카는 몰라도 ‘1가구 1주택’을 이렇게 살아보는구나....”

83년 3월26일 재판을 받으며 박순희씨가 법정에서 한 최후진술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들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이 땅에 노동운동은 계속될 것이며, 오늘 우리가 당하는 이 억울한 아픔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노동부는 권력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 누구의 꼭두각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이렇게 바보, 등신, 천치만 모여 있는 것으로 몰아붙인단 말입니까. 원풍의 원한 맺힌 바람은 분명히 노동계의 부활의 바람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구치소에서 유독 우리에게만 적용하는 차별적 대우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관에서 지급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노동자 출신이었는지 모르지만, 노동부 장관이 될 때는 가스안전공사 사장이었잖아. 그러니까 노동자 출신이 장관이 된 것이 아니라, 사장 출신이 장관이 된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돼.”(한겨레 21 인터뷰 중에서)

여러 갈래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이론으로 무장되기도 하고, 삶의 철학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여기, 어렵던 시절 함께 투쟁하던 두 동지가 있다. 하나는 이제 적의 동지가 되어 적으로 겨누고 있다.

함께 갈 수 없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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