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직위원 김정수
산재보험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최근 산재보험제도의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노동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나름의 개혁방안을 마련한 이후, 꾸준히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요 근래에는 정치권과 정부에서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산재보험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듯하다. 당연히 노동계에서 요구하는 개혁방안과 정치권 및 정부에서 제시하는 개혁방안 사이에는 많은 격차가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다소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현재 산재보험제도의 ‘진입장벽’에 관한 것이다. 즉,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들이 산재로 인정을 받지 못해서(산재인정 기준에 관한 문제) 혹은 산재 인정 과정이 너무 까다로워서(산재인정 절차에 관한 문제) 산재로 치료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산재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우선 치료를 제공하고 사후에 산재인정 여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 자문의 제도를 폐지 혹은 개선하는 것, 사업주 날인제도를 폐지 혹은 개선하는 것, 산재인정과 관련된 각종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더러운 음모, “요양업무처리규정”
산재보험제도의 개혁에 대한 논의들이 미약하나마 이 수준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수구 꼴통 집단이 있다. 바로 일선에서 산재보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작년에 <근골격계 질환 인정기준에 관한 지침>을 선보이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고 하더니만, 작년 12월 <요양업무처리규정>을 통해서 그러한 음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더러운 음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근로복지공단은 <요양업무처리규정>을 통해 자문의 제도를 강화하고 재해조사의 범위를 확대,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자문의 제도가 현행 산재보험제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제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산재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우선 치료를 제공하고 사후에 산재인정 여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자 할 때, 자문의 제도는 가장 일차적으로 폐지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제도이다. 이러한 자문의 제도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현재의 산재보험제도를 개선시킬 의사가 전혀 없음을, 오히려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법에 명시된 요양 및 요양연기 결정 기한 7일을 연장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화하겠다고 하는 것은 산재 인정 절차를 보다 까다롭게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집단 요양신청서 등 기타 지사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즉 모든 경우에 결정 기한을 연장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처리기한이 길어질 것이 뻔히 예상된다. 특히 ‘사업주의 확인 없이 제출한 요양신청서’의 결정 기한을 연장하겠다는 것은 사업주 날인 제도의 폐지 혹은 개선을 통해 산재요양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흐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요양업무처리규정>을 통해 도입한 전원 사전 승인제도는 산재환자의 ‘제대로 된 치료'는 외면한 채 단순히 '요양기간과 전원'만을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결국 산재 환자의 정당한 ‘치료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번 규정 개정안의 내용이 일선 산재의료기관에 하달된 이후 일선 산재의료기관에서는 산재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산재환자의 요양기간 단축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산재환자들은 그동안 받아왔던 부실한 의료서비스를 제한된 기간동안 받게 됨으로써 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산재환자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만이...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은 재해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산재승인’을 무기로 재해노동자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기관이었다. 초법적인 근로복지공단의 각종 규정과 지침이 이 권력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산재보험제도 개혁을 위한 논의들이 근로복지공단의 이러한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빼앗기기 않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 군사 독재정권이 자신을 민주적으로 정화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듯이, 근로복지공단 역시 스스로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날 능력이 없다. 오로지 노동자들의 투쟁만이 근로복지공단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기관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