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칼럼] 런던 폭탄 테러와 폭탄주 금지

[05/8월/칼럼]
런던 폭탄 테러와 폭탄주 금지
자유기고가 박일평


김종빈 검찰총장이 검찰의 조직문화 중 하나인 폭탄주 문화를 “조폭 문화”에 비유하며 폭탄 제조(?)를 중단한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김 총장은 취임 후 기회 있을 때마다 검사끼리 모이는 자리에서는 폭탄주를 마시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일선 검사들에게는 사실상 폭탄주에 대한 금지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총장은 검찰의 부정적 이미지 중의 하나인 ‘검사=폭탄주 문화’라는 선입견을 없애나가기 위해 이런 주문을 했다고 한다. 폭탄주는 보통 맥주를 따른 컵에 양주를 담은 잔을 넣어 만드는데, 이런 의미에서 일명 회오리주(酒)와는 다르다. 맥주 잔 안에, 알콜 농도가 약 3배 가까운 고농도 핵을 담은 작은 양주잔이 놓이기 때문에 맥주와 양주를 그대로 섞는 술과는 다르다. 원래 폭탄주는 제정 러시아 때 시베리아로 유형간 벌목노동자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보드카를 맥주와 함께 섞어 마신 것이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애초에 노동자들의 정겹고 슬기로운 문화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1960∼1970년대 미국에 유학간 군인들(?)이 들여와 확산시켰다고 한다. 이후 폭탄주 문화는 1980년대 초 정치에 나선 군인들이 정치계와 법조계, 언론계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만들어 마시면서 음주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하며, 그 이후 기업체 등 접대문화로 활성화되면서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폭탄주라는 용어가 의미하듯이 폭탄주의 가장 큰 특징은 가공할 파괴력이다. 동일한 음주량에도 폭탄주로 마시게 되면 위나 장에서의 흡수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강화된다. 문화사적으로 폭탄주 문화를 성숙시킨 것은 정치 군일들이라고 하니, 김종빈 검찰 총장이 이를 조폭 문화로 호도한 것은 잘못이다. 조폭들이 명예훼손을 걸지도 모를 일이다.

술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그 길이를 같이하고 있지만 폭탄주의 역사는 비교적 근대에 등장하였다. 그것은 폭탄이 제조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폭탄(bomb)의 기원은 19세기 러시아의 화학자 N.I.키바르치치가 암살용으로 발명한 것이 시초라고 하며, 1876년 이탈리아의 F.오르시니가 다이너마이트를 장전한 수류탄을 제조하여 그것을 나폴레옹3세에 투척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항공기가 등장하자, 공중무기로서 보통의 포탄에 날개를 부착한 것을 사용하였고, 폭격기의 출현으로 폭탄도 대형화하였으며, 그 후 유선형의 탄체에 네 잎 날개(四枚翼)를 부착한 항공기 전용의 폭탄이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폭탄의 위력은 원자폭탄을 사용하면서부터 절대적인 파괴력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원자폭탄이 폭발하면 먼저 엄청난 열이 순간적으로 발생한다. 온도가 태양 표면온도인 섭씨 백만 도까지 이르러 이로부터 나오는 복사열로 인해 폭발된 지점으로부터 수 km 지점까지 모두 불타버리게 된다. 또한 폭발 후 초속 70m 이상의 폭풍으로 인하여 반경 수 km 내의 대부분의 건조물이 부서지게 된다. 특히 원자 폭탄은 폭발 당시의 파괴력 뿐 아니라 폭발 후 분출하는 방사능에 의한 엄청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반경 수십 km 내의 대부분의 생명체가 곧바로 목숨을 잃게 된다.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 십 년간에 걸쳐 후유증에 고통을 받게 되고 자손에까지 유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와 같이 원자폭탄은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고, 이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그 가공할 파괴력을 확인하였다.
 
최근에 폭탄은 중동지역의 무장 전술과 자살테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라크 저항세력이 대규모 인해전술식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해 7월 한달만해도 이라크 전역이 피로 물들었다는 외신의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7월 15일, 16일 바그다드 등 20여 곳에서 터진 테러로 최소 100여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했으며 바그다드에서는 그 이전 1주일간 7건 이상의 테러로 60명 이상이 희생됐다. 2003년 3월 미국의 침공 이후 자살폭탄 테러는 이로써 400건을 넘어선 셈이다. 그런가 하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휴전협정은 반복되는 폭탄 테러와 보복공격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잘 알다시피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지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 쟁)을 통해 요르단강 서안지역(웨스트뱅크)과 가자지구를 점령한 뒤 안보 확보를 위해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한 이래 끊임없는 살상과 전쟁이 반복된 지역이다. 그러나 중동에서 시작한 폭탄테러는 이제 유럽을 무대로 이동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폭탄은 전쟁 발발 지역이나 중동과 같은 특수 지역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결과로 이해되어 왔다. 더구나 지난 9월 11일 미국 뉴욕을 강타한 테러에도 불구하고 서방세계는 폭탄과 테러의 가능성을 중동 및 인접 분쟁 국가의 문제로 국한시키려고 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침략을 통하여 폭탄의 가공할 능력이 서방세계 국민들의 일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지난 7월 7일 발생한 런던 폭탄 테러는 지금까지 있었던 전쟁 구도, 폭탄의 사정거리, 뇌관 등 모든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중동은 서방으로 확대되었으며, 아랍 민족주의는 서유럽의 종주국에서도 자생하기 시작하였다. 조직된 군대를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모래 속의 유리 조각을 찾아내는 전쟁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번 런던 테러의 원인과 관련하여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19일 발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런던테러의 원인에 대해 조사대상자의 33%는 블레어 총리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31%는 '약간의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영국 국민의 64%가 영국의 이라크 파병과 런던테러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반면 런던테러와 영국 정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28%에 불과했다(2005년 7월 20일 프레시안 기사 중). 물론 이러한 인식은 서유럽 주변국 국민들의 불안감과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알 카에다는 또 다른 영국을 찾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서방세계에 등장하고 있는 오늘날의 이슬람의 모습은 폭탄을 안고 자살하는 순교도의 모습이다. 자살 폭탄 테러는 자살이라는 최초이자 최후를 상징하는 극한적 경험과 폭탄이라는 위력과 공포를 결합한 중동인들의 저항정신으로 이미 충분히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제 민족과 종교를 넘어서는 서방화된 중동인들에서도 이 정치적 상징은 작동하기 시작한 셈이다. 자살 폭탄 테러는 테러의 대상이 되는 대중 뿐 아니라 테러에 가담한 본인의 육신을 남기지 않는 가공할 공격-타인을 포함한 자기 자신의 완전한 분해-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살 폭탄 테러는 가장 근본적인 자살방식의 하나이다. 오래 전부터 인도의 여성들은 수치심을 느끼는 행동을 당할 경우 자살의 수단으로 자신을 불에 태우는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불교적 관습과 여성의 순결이 결합된 자살 방식일 게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야 한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목을 매는 방식을 주로 이용해 왔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육신을 그대로 보존한 채 생명을 마감하는 방식이다. 이는 유교적 덕목, 즉 사후 시체를 유지 보존하는 데 관심을 가진 문화적 특징 덕분일 게다. 미국은 주로 총기를 이용한 자살이 유행이었는데, 오래 전부터 서로 죽이고 쏘는 데 익숙한 서부개척정신(?)의 덕택이다. 남을 죽이는 데도 간편하고 자신을 죽이는 데도 매우 간결하다. 인도나 우리나라의 자살 방식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하고 용이해서 생명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듯이 느껴진다. 현대사회에서 자살은 이제 중동인들의 방식으로부터 그 근본적 성격이 새롭게 전달되고 있다. 폭탄이라는 가공할 화력과 자신의 공중분해라는 처절한 방식을 결합한 자신을 죽이는 방식, 그러나 자신의 죽음에 머무르지 않고 다수 침략자들의 죽음을 겨누고 공격하는 자살방식이 자살 폭탄 테러인 셈이다. 따라서 자살이라기보다는 공격이며 저항이고 그리고 전쟁의 한 수단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시를 위시한 전세계의 반테러 연합군이 아무리 강고하다고 하더라도 이들 자살 폭탄 테러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신에 대한 자살이 아닌 침략자를 향한 전쟁의 의미로 폭탄을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이상, 이는 모든 전사들이 죽음을 담보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7.7 런던 테러가 있고난 후 이해찬 총리가 허겁지겁 테러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정부 부처 협력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모름지기 일국의 총리가 국민의 안위를 위하여 자살 폭탄의 가능성을 염려하였다면, 검찰 총장은 머리를 마주 대고 미국 주도의 패권적 세계질서 극복을 위한 참신한 의견을 내놓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폭탄주를 그만 마시자고 화답을 하고 말았으니, 조폭들의 명예도 문제지만 총리의 권위가 이렇게 없어서야 어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地上)이라고 감히 올려볼 자가 있겠는가? 어쨌든 룸싸롱에서 ‘조폭’처럼 어울리던 검사 영감들의 꼴불견은 한동안 안 보아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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