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일터이야기] 인내란 게 이런 거구나. 아. 대단하다

명성운수 버스노동자 김정렬씨를 만나

[05/9월/일터이야기]

인내란 게 이런 거구나. 아. 대단하다.
-명성운수 버스노동자 김정렬씨를 만나

글/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진철
사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박지선


(intro)
"저는 그들이 보면 외곬수라구요. 이제는 사람들과 저를 분리시키려고 해요. 외톨이 싸움으로 만들려는 거죠. 이번 조합장 선거에 야당이라는 사람들이 나온다고 해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노동자들은 야당도 여당도 없다. 다만 어용이나 민주냐. 둘 중에 하나일 뿐이다."

저... 그렇게 살다보면 외롭지 않나요.

"외롭죠... 아... 처음엔 술을 많이 마셨어요. 외롭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제는 만성이 돼서, 술보다는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친구들이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도 또 어용을 하는 그들. 그들이 나에게 행위하는 것들. 그것들을 또 인내하면서 가야하는 거죠. 기분대로 싸우고 나면 끝나버리는 거니까. 개인적인 데서 끝나버리고 마니까. 그럼 안 되니까."




2000년 전 갈릴리 지방의 한 성자가 말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거라고. 그래. 세상살이는 각자의 몫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 무게의 차이가 너무 커 보인다.

"인내. 인내 없이는 안 되더라구요. 참. 우습지만 부처님이 되어야 해요. 야. 자비란 게 이런 거구나. 인내란 게 이런 거구나. 아. 대단하다. 오랜 시간 활동하진 않았지만, 전체적인 문제로 싸우다 보니."

벼랑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는 듯 보이는데, 그 긴장으로 인해 더 깊어지고 넓어진 사람. 이번 달 일터이야기는 일산 명성운수 버스노동자 김정렬씨를 만났다.

수당에 속고 수당에 울고

뿡뿡... 빵빵... 초보운전자에게 택시와 버스는 무법자다. 대한민국 교통신호 안 지키는 거야 모두 공통된 거니 따로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초보운전자에게 덩치가 큰 버스는 무섭다. 아~ 아저씨. 깜박이 좀 넣고 들어오세요.

"하루 15시간 일해요. 회사 나오고 들어오는 시간 합치면 18시간이지요. 기본급 50여 만원에 나머지는 수당이에요. 공익사업장이라 연장근무, 변형근무 52시간 특례조항이 있어요. 얼마든지 그 안에서 시킬 수가 있어요. 우리. 죽죠."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돌아오는 거 아닌가. 농담으로 되물었더니. 진짜 그렇단다.

"몸이 안 좋아서 일을 못하면 시급 곱하기 몇, 해서 월급이 보정돼요. 끝까지 무리해서 일을 하도록 만들어내는 거죠. 수당. 수당. 수당. 모든 게 수당. 수당. 수당. 상여금도 만근을 해야 줘요. 하루 부족하면 50%, 이틀 빠지면 아예 안 줘요. 그니까 만근을 하지 않을 경우에 손해 보는 금액이 한 달에 50-70만원 가량 되는 거죠."

수당. 수당. 수당. 이게 무슨 불러도 대답 없는 임의 이름도 아니고. 답답해진 마음에 분위기를 바꾸고자 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여름 휴가는 내셨어요?

"우리는 휴가가 없어요. 휴가비가 나오긴 해요 5만원. 한 이틀 쉬죠. 휴가로 인해서 만근을 못하면 돈이 안 나오니까, 휴식을 못 갖는 거죠."

아앗. 예...

"허리를 툭툭 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올해 3월 장승현씨는 저녁 점호시간에 쓰러졌다. 운전 중 삐끗했던 허리.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병원에 가보니 추간판 탈출증, 수술을 했다. 회사에서 산재신청을 했다고 했다. 다쳐서 치료받는 사람에게 사고경위 한 번 묻지 않고 서류를 작성한 게 이상했지만, 기다렸다. 40여일이 넘는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할 때까지 산재 승인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갔다.
서류에는 휴일날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쓰여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다친 사람을 두고서 공문서를 위조한 거 아닌가. 승인이 나지 않는 동안, 수술비와 입원비를 모두 홀로 지불해야 했다. 다치고 5개월을 쉬는 동안 휴업급여는 지불된 적이 없었다. 빚이 늘어만 갔다. 아니. 그 무엇보다 회사측에서는 괜찮냐는 말 한 마디 없었다.
공단 지사장을 찾아갔다. 5개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정을 설명했다. 지사장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고생하셨다고, 빠른 시일 내로 해결하겠다고. 그리고 며칠 후 지사장은 인사 이동으로 떠나갔다. 새로운 지사장은 아직 오지 않았고, 지사장의 웃음 섞인 약속은 미아가 됐다. 장승현씨 부인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허리를 툭툭 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너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 하며, 우습게 보기도 하죠.

가장 어려운 게 뭐예요.

"사람들의 의식이죠. 노동자면서도 노동자라는 것을 잘 모르니까. 회사는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데 우리는 회사를 생각하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야. 그래도 회사도 생각이 있는데. 하거든요. 조합이 어용이다 보니 노동자들 이야기를 못하고 안 하니까. 동료들끼리 점점 눈치를 보거든요. 또 오랜 기간 만나다 보니 사측 사람들과도 여러 인간관계가 얽혀 있고. 인간적으로 미안하다는 이유로. 알면서도 못 움직인다는 거죠."

젊은 날 연애에 올인했던 필자는 짝사랑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안다. 게다가 선수들은 마음이 멀어질랑 하면 당근을 던져주며 사람을 붙들어 놓는다. 앗. 이이가 나를 사랑하는가. 잠시 착각하지만 그게 다다. 당근에 현혹되면 안 된다. 자본가의 당근은 겉으론 깨끗해 보인다. 색도 반지르르 하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안 믿는 눈치인데, 진짜다. 서서히 머리가 굳는다. 동지를 동지라 부르지 못한다.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잊게 만든다. 그래서 하루 15시간 노동으로 과로사로 죽게 만드는, 허리가 망가져도 한 번 거들떠보지 않는 세상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저들은 엄청나게 큰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자본과 권력. 정치적인 빽을 가지고 있죠. 사람들이 그래요. 너 바위에다 계란 던진다. 너. 왜 그렇게 힘들게 하냐. 우습게 보기도 하죠. 그럴 때 씩 웃고 그냥 중얼거려요. 가끔가다 계란이 바위를 깨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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