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전충북지부 대한이연지회
글/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霖
사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박지선
#0. 날씨
출발 전 서울.
아침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태풍나비가 잠잠해지길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그 뒤에 상륙하던 카눈의 영향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거리도, 내 마음도 온통 다 질퍽하다.
신탄진역 도착.
이곳은 카눈이 힘에 부쳐서인지, 비를 맞을 이들이 안쓰러워 봐준 것인지 빗방울이 자작자작하다.
#1. 의문
대한이연(주)은 피스톤링(Piston Ring)과 실린더라이너(Cylinder Liner)를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이다.
“주조파트, 라이너파트, FC링과 스틸링파트로 나뉘죠. 스틸링은 스틸로 되어 있는 건데, 스틸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단가가 높아요. FC는 단가가 낮구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FC는 계속 적자라고 하죠. 원자재 가격이 낮으니까 현차에서도 단가를 계속 낮추려고 하거든요.”
대한이연의 생산품은 주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GM대우자동차 등에 납품된다. 그 중 현대자동차로 가장 많은 납품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일면 일리가 있어 보이는 듯한 말이다. 하지만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기업’에서 과연 적자 나는 것을 무릅쓰고 생산품을 생산하고자 할까? 더욱이 주물 작업은 모두들 마다하는 작업이 아니던가? 회사에서는 작업자를 구하는 것조차 힘들 텐데 ‘적자’라는 말로 현장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2. 일터
깜깜하다. 날씨가 흐리니 밖이 어두운 것은 알겠는데 바깥보다 안이 더 어둡다.
‘불을 켠 건가? 올려다 보다 사고가 나면 어쩌지?’ 천장을 보고 싶지만 여유가 없다. 잠시 머뭇거리다 불빛을 발견했다. 시뻘건 쇳물이다.
“주조과 처음 단계로 선철을 녹이는 과정이에요. 전기로 쇠를 녹이는데, 쇠를 녹이다 보면 이물질이 위로 뜨게 됩니다. 그러면 그걸 걸러 내기 위해서 화학물질을 첨가하는 거죠. 화학물질을 첨가하면 이물질이 딱딱하게 굳게 되거든요.” 가까이 가기도 겁나는 열기에 땀을 흘려가며 한 사람은 쇳물 위로 첨가물을 붓고, 다른 한 사람은 막대를 이용하여 이물질을 걷어낸다. 이렇게 나오는 쇳물은 원심력을 이용한 작은 틀에 부으면 라이너가 되고, 링 틀에 부으면 링이 된다. (너무... 간단한 말이다... --;;)
“프레스 안에 일정한 모양의 틀이 있는데, 모래를 뿌리고 치우치지 않도록 평편하게 손으로 대강 펴 준 다음에 프레스로 콱 찍으면, 그 형태에 맞게 형틀이 생기죠. 그러면 여기에 쇳물을 붓는 거예요. 여기는 프레스로 계속 찍다보니까 진동으로 인해서 허리나 이런 곳의 통증환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손가락도 협착되어서 산재했던 사람들도 있구요.” 링 틀을 만드는 작업이다. 마치 어릴 적 쌀, 보리 놀이를 할 때처럼 프레스 기계 안으로 손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은 놀이 할 때의 아슬아슬함에 비할 것이 못 될 정도로 아찔하다. 형틀을 통해 만들어진 라이너와 링은 이후에 가공을 거친다. 무수한 과정들이 있지만 크게 보면 라이너는 3단으로 자른 뒤 3차의 걸친 내외선을, 링은 이물질제거와 연마를 거쳐 도금이나 착색이 이루어진다.
직접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선선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땀범벅이다. 귀에서는 때 지난 매미 소리마냥 기계굉음의 왱왱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헐떡거리며 밖으로 나오니 모자이크 세상이 보인다. 한 조각, 두 조각... 조각들이 모아지고 나서야 ‘아~ 살 것 같다’
#3. 대화
“이름은 전근영이에요. 6년 정도 근무했고 조형라인에서 일을 하죠. 쉽게 말씀드리면 프레스와 거의 같은 원리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 프레스와 다른 점이라면 찍어낸 이후에 주물을 붓는다는 거죠. 프레스는 찍어내는 자체가 생산품이지만 저희는 그 다음 공정이 또 있는 거니까.” 전근영 조합원의 간단한 소개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6년이란 시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마도 많은 일들이 있었을 거란 생각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기억에 남는 거는 특별히 없고요.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보장, 고용안정, 생존권 뭐 그런 것들이 노동조합이 있으므로 해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되니까. 또 내가 가정을 생각할 수 있는 거고. 뭐, 그런 게 좋은 거 같아요.” 엉뚱한 대답인가? 아니, 노동조합 그 자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처음에 99년도에 입사 했을 때, 우리 부서가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었어요. 9월 1일부터 출근을 했는데 그때도 덥잖아요. 더운데서 작업을 하는데 선풍기를 안 주는 거야. 그래 옆에 있는 분한테 물어 봤어요. ‘선풍기 누구한테 달라고 하면 주느냐?’ 그랬더니 ‘무슨 선풍기냐? 여기 선풍기 자기가 다 집에서 가지고 오거나 사서 쓴다’고. 난 황당한 거예요. 뭐... 물론 내가 벌어먹기 위해서 와서 일을 하는 거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일을 하는 건데 이 정도는 제공해 주는 게 맞지 않겠냐는 판단이 드는데, 또 겨울에 유리창 깨진 게 있으면 그걸 갈아 주는 게 맞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거예요. 그 이듬해에 임단투를 했었어요. 그때 하는 거 보고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정말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는 구나.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한 번 일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임단투 이후 선거 끝나고 조직부장 제의를 받고서 2년 활동했죠.” 노동조합활동에 대해 느낀 점과 현재 활동에 대해 질문을 잇는다.
“조합원들은 간부가 열심히 하는 만큼 인정을 해주고 따라준다는 걸 느꼈죠. 지금은 아무런 활동을 안 하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요. 우리 같은 경우에는 잔업을 해야 부족분을 채워서 가정을 꾸려 가는데, 활동을 하다보면 잔업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경우도 있고 현장에 적응하기도 힘들어지고 해서 사실 잔업을 많이 못해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과 꿈은 무엇일까?
“삶을 너무 고달프게 살아가지고... 꿈이 있었죠. 장사를 하고 싶었는데, 원래 제가 사람하고 부딪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장사를 하려면 어느 정도 밑천이 필요한데 내가 이거 벌어봐야 그걸 할 수 있는 여력도 안 되고,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걸 먼저 해결해야죠. 99년도에 거의 벌지를 못했는데, 우리 애기엄마도 벌어 보겠다고 영업을 했는데 거기서도 돈을 까먹고 해서 빚을 졌거든요. 술을 마셔야 얘기가 잘 나오는데 안 마시고 하려니 아쉽네요.” 현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의 삶이 다 이럴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쇄도하고, 1인당 가계부채 2천만 원을 등에 지고 살아가면서 잠시나 시름을 잊고 이야기를 하자면 술이 필요하다.
#4. 술~
“저희부서는 교대제가 없어요. 그전에 한 번 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할 수가 없어요. 특근 같은 경우에는 일요일은 뭐 거의 다 한다고 봐야죠.” 여가 시간 이야기를 하다 문득 교대제에 대해 묻고는 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묻는다.
“우리 애기엄마는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요. 근데 최저임금도 못 받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희망이라는 말에 아이들 교육에 대해 말을 건넨다. “저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 시키고 싶지 않아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서울대 가지 않는 이상은 어차피 비정규직인데...”
어차피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는 삶이라, 술이 술술 넘어간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까 서울대 진학하는 애들 80%가 서울 강남권이라고 하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뭘 생각했냐면, 세습이 무섭다는 거. 돈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를 모두 장악한다는 거예요.” 어쩌면 이것이 답이 아닐까? 자신들의 끊임없는 ‘세습’을 위하여...
#5. 다시
카눈이 소멸되었다. 잊혀져 가는 매미도, 나비도 그러했다.
그 이름은 바뀌지만 태풍은 본연의 성질을 지닌 채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
문득 ‘파도 앞에서’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그래 그렇게 부서져도 또 다시 솟구치자!
노동자 투쟁의 위력이 폭풍보다 더한 태풍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