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 ‘참터’ 공인노무사 유성규(vic93@lycos.co.kr)
1. 근로복지공단이 주장하는 불승인 사유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 관할지사의견서, 조사복명서, 불승인 통보공문 등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이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산재자 전원을 불승인한 사유는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우선, 본 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자문의사협의회를 구성하여 심의한 결과, 만성적응장애의 발병 사실 자체는 인정되지만, 그 주된 발병 원인이 된 스트레스가 노사갈등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업무상 질병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불법적 직장폐쇄와 부당해고, CCTV를 통한 감시, 왕따라인 설치를 통한 통제와 감시, 조합원과 비조합원간의 차별 등을 모두 쟁의행위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으로 보면서, 만성적응장애를 업무상 사유에서 기인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주된 불승인 사유로는 적시하고 있지 않으나,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실관계를 규명할 수 없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단의 불승인 사유는 심대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그 문제점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2. 원처분기관 불승인 사유의 문제점
(1) 노사갈등에서 기인한 적응장애가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하여
관할지사의견서를 참조할 때, 공단 역시 본 건 적응장애가 산재자들 개인의 기질적 사유가 아닌 회사와의 갈등에서 기인하였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즉, 질병은 인정하지만 노사갈등으로 인한 것이므로, 그 업무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심대한 법리적 오인의 결과이다. 공단은 본 건에 대해 직장 내에서 적응장애를 야기한 스트레스가 실제로 존재했는가는 간과한 채, 엉뚱하게도 이와 같은 스트레스가 왜 야기되었는가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 법리적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기인성에 대한 판단은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스트레스 요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스트레스의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는 단순히 참고되어야 할 사항에 불과하다.
같은 이유로, 2003년 승인된 ‘청구성심병원사건’이나 2005년 승인된 ‘문혜요양원사건’ 모두 그 스트레스 요인이 모두 노사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공단은 사업장 내에서 실제로 스트레스 요인이 발생했는지를 판단하였을 뿐, 그 발생원인은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본 건에 대한 공단의 그릇된 판단은 잘못된 법리의 적용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기존의 판례 및 결정례에도 배치되는 심대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2) 직장폐쇄기간을 쟁의행위기간과 동일시하는 주장에 대하여
공단은 또한 직장폐쇄기간은 사용자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시기이므로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신청인들이 문제로 제기한 차별, 감시, 통제의 문제들이 모두 직장폐쇄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이라 단정 짓고 있다. 나아가, 직장폐쇄기간을 쟁의행위기간과 혼동 내지 동일시하면서, “불법적인 노동조합활동 또는 사용자와 대립관계로 노동조합이 쟁의행위에 들어간 이후에 노동조합활동 중에 생긴 재해는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까지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2002년에 노동조합이 벌인 쟁의행위기간은 단 3일에 불과하였으며, 나머지 기간은 회사가 직장폐쇄를 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본 건 직장폐쇄는 노동조합이 원하여 발생한 상황이 아니었으며, 회사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회사는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벌이지 않는 기간에 대해서도 조합원에 대해서만 직장폐쇄를 단행함으로써, 사실상 위법적․공격적으로 취업을 거부 또는 방해하였다. 당시 노동조합은 쟁의행위를 중단하고 오히려 직장폐쇄 철회를 요구하면서 사업장 복귀의사를 명확히 밝힌 상황이었다.
결국, 본 건 “직장폐쇄”는 ㉮ 회사가 스스로 근로를 원하는 조합원에 대해 그 취업을 거부내지 방해하였다는 점과 ㉯ 회사가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하지 않은 기간에 대해서도 불법적․공격적으로 직장폐쇄를 했다는 점을 판단할 때, 사용자와 노동조합간에 대립관계의 일환으로 바라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사용자의 위법한 행위로 인하여 노동조합 및 조합원이 피해를 당한 상황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사실이 이와 같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이 동 기간에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벌였다고 단정 짓는 것은 중대한 사실관계 왜곡이다.
결국, 공단은 사용자의 직장폐쇄를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와 동일하게 판단하거나 혼동함으로써, 중대한 사실관계 왜곡을 범하였으며, 나아가 부적합한 판례를 인용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여기서 논리를 비약하여, 2002년 11월 18일 이후 조합원들이 업무에 복귀하여 근무 중 발생한 일들까지도 모두 쟁의행위의 연장선이므로, 이 역시 쟁의행위와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3) 사용자의 적극적 부인으로 인하여 사실관계 규명이 불가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산재자들은 직장폐쇄 이후, 2002년 11월 18일 업무복귀 직후부터 집중적으로 발생한 ‘조합원 왕따 라인 설치’, ‘조합원 라인에 대한 일상적 CCTV 감시 및 관리자들의 감시통제’, ‘조합원들에 대한 비조합원들의 집단적 따돌림’, ‘외출ㆍ상여금ㆍ임금인상ㆍ야유회ㆍ식당사용 등 일상적 근로조건에 있어서의 차별’과 ‘부당해고’(최근 행정소송 판결을 통하여 부당한 처분이었음이 확인됨) 등을 주된 발병 사유로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공단은 단순히 “사용자가 이를 부인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신청인들의 주장이 옳은지 사용자의 주장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단 한 차례의 출석조사와 형식적인 현장조사를 실시했을 뿐, 실질적인 조사를 통하여 사실관계를 밝히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아가, 신청인들보다 많은 수인 17명의 회사측 관계자를 대거 출석시켜 조사를 진행하고 신청인들의 주장보다 오히려 회사의 주장을 조사에 비중 있게 반영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3년이 넘는 기간동안 벌어진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조합원들의 주장”과 “사용자의 주장”을 그대로 단순 수집하기만 했을 뿐, 양 당사자간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지에 대한 판단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를 그대로 자문의들에게 보고하고 법률전문가들이 아닌 자문의들이 사실관계나 법률관계를 판단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공단이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조사를 통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통하여 승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 절차인 조사복명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바, 이는 명백한 절차상 하자이다.
이에 대하여, 원처분기관은 양당사자간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판단할 수 없었다거나 근거가 부족하여 판단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다음과 같은 근거들을 살펴볼 때, 사실이 아님이 명확하다.
① 피재자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유발요인이었던 CCTV의 경우
원처분지사 의견서에도 적시되어 있듯이, ㉠ 2003년 11월 18일 이후에 조합원 왕따 라인에 조합원 감시용으로 4대가 집중적으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 노동부가 조합원 감시를 위한 것으로 활용할 소지가 있어 철거 시정명령을 내리고 검찰에 송치한 사실이 있으며,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이를 무혐의가 아닌 기소유예처분을 내림으로써 그 범죄사실을 인정한 바 있고, ㉣CCTV를 통한 감시 문제에 기인하여 노동부는 2003.8.26.~8.28.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사실이 있으며, ㉤2003년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이 이와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부에 시정을 촉구한 사실이 있으며, ㉥언론을 통하여 회사에 의한 CCTV 조합원 감시 사실이 폭로되기도 하였다.
② 조합원 왕따라인 설치의 경우
관할지사의견서에도 적시되어 있듯이, ㉠산재자들이 업무에 복귀한 2002년 11월 18일 직후부터 현재까지 조합원들로만 구성된 소위 ‘왕따 라인’을 편성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와 같은 사실은 2005년 5월 18일 공단이 실시한 현장조사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며, ㉢회사가 왕따 라인과 다른 라인의 생산량을 비교하면서 이를 공개적으로 공시하고 조합원들에 대한 일상적 통제와 압박을 가했음은 현장조사와 제반 자료를 통하여 확인된 사실이다. 이와 같이, 확인된 사실들을 배제하더라도, 조합원들로만 별도의 라인을 구성하여 다른 직원들과의 교류를 차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정상적 경영의 범주를 벗어난 행태로 판단되며, 이로 인한 산재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당했을 것으로 상식적으로도 인정된다.
③ 2003.1.31. 부당해고의 경우
부당해고는 해고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산재자들 모두에게 생존권 박탈에 대한 두려움과 조합활동에 대한 심한 박탈감, 부담감을 야기한 중대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은 본 건 관할지사의견서에서조차 이에 대한 언급을 배제하고 있다. 본 건 부당해고의 경우, ㉠사용자가 자신의 징계권을 남용하여 행한 부당한 처분이었던 바, 이미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하여 부당해고 사실과 복직명령이 내려진 명백한 사실관계이며, ㉡회사가 이에 대하여 항소하였으나, 서울행정법원역시 회사의 항소를 기각함으로써 부당한 해고였음을 판결한 사실관계이다.
④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의 경우
노동부가 2003년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회사에 대해 실시한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노동부는 ㉠비노조원들에게는 야유회 행사지원금을 지급하였으나 조합원들에게는 지급을 거부한 행위를 확인하고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위반 소지를 들어 시정지시하였으며, ㉡비노조원들에게는 8.9% 임금인상을 실시하였으나 조합원들에게는 임금협상을 핑계로 인상을 거부한 행위를 확인하고 시정을 권고하였다. 이에 대해서도, 공단은 회사가 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는 사유를 들거나, 공신력 있는 기관도 아닌 회사가 임의로 작성하여 제출한 자료들을 신빙성 있는 근거로 인정하면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이를 본 건 적응장애를 유발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3. 결론을 대신하여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건에 대한 공단의 판단과 처분은 명백하게 잘못되었다. 따라서 공단이 불승인 처분을 즉시 취소하고 산재자 전원을 승인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나 본 건이 시정되어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는 본 사건에서 드러난 공단의 문제점들은 과거에도 발생했으며, 현재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들이기 때문이다. 부실한 조사와 그릇된 판단으로 인하여, 수많은 산재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막대한 소송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힘들게 요양승인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공단은 본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이 진정 노동자를 위한 기관이었던가를 되새겨보고 거듭나야 할 것이다. 거듭남의 방향은 너무도 자명하다. 근로복지공단! 이 단어가 뜻하는 바와 같이, 사용자의 입장, 정부의 입장, 자기 기관의 입장이 아닌 노동자의 입장에서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만이 하이텍알씨디코리아 13명 조합원과 같은 불쌍한 노동자들이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는 길이며,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를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