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현장통신2] 서울대학교병원지부노동조합 산재승인 투쟁

[05/11월/현장통신2]

서울대학교병원지부노동조합 산재승인 투쟁
서울대학교병원지부노동조합 부위원장 김애란


서울대학교병원지부노동조합은 올 7월에서 9월 말까지 단 1명의 조합원 산재승인을 위해 투쟁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접해보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조직을 보며 노동자의 건강권의 현주소에 대해 철저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시작

2005년 7월 11일 어린이병원 수술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조합원이 아픈 허리를 이끌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25세, 근무경력 만 3년이 안 되는 신규 간호사이다. 수술장 경력으로는 절대로 길지 않은 경력으로 새내기 수준이다. 열심 조합원이 아니면 노동조합 사무실이 어디 있는 지도 모를 나이, 어린 조합원이 본인 스스로 산재신청을 해보겠다고 노동조합 문을 연 것은 노동조합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5살 나이에 만 3년의 근속기간이 채 되지 않는 간호사 조합원의 병명은 퇴행성 척추증, 요추부염좌, 추간판탈출(팽윤으로 진행)이다.

수술장 간호사는 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 환자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면 수술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수술 보조를 하기 때문에, 허리가 휜 채로 서서 기본 8시간을 하루 종일 일한다. 또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기계나 세트를 밀거나 옮겨야 하는데, 이 때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 세트의 무게는 평균 20Kg이고 정형외과 수술세트는 30Kg가 넘기도 한다. 응급상황에서 이렇게 무거운 장비를 밀고 끌면서 분초를 다투는 일이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심지어 수술이 길어지면 10시간이 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간호사 조합원은 그런 일을 3년 여간 하다가 몸이 너무 아프고 점점 고통이 심해져서, 일하는 중간에 다른 동료가 도와주거나 근무표를 바꾸어주기도 했다.

병원의 행태

산재를 신청한 조합원에게 처음에 병가를 받기 위해 진단서를 요청하자, 서울대학교병원은 20일짜리 진단서를 발급하여 주었다. 그러나 다시 병가를 연장하기 위해 진단서를 요구하자 의사가 ‘지금이라도 병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 허리를 더 못쓰게 되니 가서 일하라’고 진단서 발급을 거부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사용자 조사를 하는 장소에서는 간호과장, 전․현직 수술장 수간호사와 복지계장이 참여하여 ‘수술장은 힘든 곳이 아니다. 앉아서 하는 일이기에 허리에 무리가 가는 일은 없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또한 산재 신청한 조합원에 진술서를 작성하여 준 동료 간호사에게 ‘비정규직을 정규직시켜주었더니...’하며 탄압하였고 수술장 작업환경평가를 하러 온 날에는 평균 35건인 수술 건수를 평소보다 매우 적은 25건의 스케줄로 조정하였고, 평소 조합원이 하던 흉부외과와 정형외과 수술을 그 날 수술 일정에 넣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는 7월 2일 접수한 서울대학교병원 수술장 조합원의 산재신청이 개인 산재임에도 집단 산재로 정리해서 근로복지공단 중앙으로 이관하면서 직무를 포기하였다. 면담 중에 서울본부장이 “산재보험료를 사용자가 내기 때문에 사용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하여 근로복지공단 관리자들이 철저히 사용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술장 조합원의 산재신청에 대해 서울대학교병원노동조합이 집단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미리 판단하여 공단 중앙으로 이관했고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는 근골격계 관련 산재를 다루어 본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 본부

그런가 하면 근로복지공단 본부는 작업환경평가를 한다고 수술장에 들어오는 날을 병원과 사전에 교류하여 잡고 오전 8시부터 한다고 온갖 수선을 떨다가 단 1시간만에 갔다. 또한 병원 관리자를 장시간 만나고 왔고, 작업환경 평가를 한다고 온 교수가 산재 신청한 노동자를 병원 근처의 식당에 데리고 가서 “병원한테 들은 얘기가 많다. 누가 봐도 산재인데 노사간의 문제가 있어서 힘들다. 혹시 취하를 할 생각은 없는지, 만약 취하하면 잘 해주겠다(병원한테 말 잘해서 병가도 받게 해주겠다는 내용임), 본인을 생각해서 하는 얘기니까 잘 생각해라, 노동조합한테는 말하지 마라”라는 본연의 임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발언을 하면서 힘들게 산재 투쟁하는 노동자를 우롱하고 다녔다.
작업환경평가를 하지도 않았지만 수술장 환경평가를 한 담당들이 참여도 하지 않은 채 평가서만 넘기고 심의위원회를 하려고 하고, 주치의의 참석이 불가능한 날 심의위원회를 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였으며, 노동계가 추천한 전문위원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자 양노총에 추천을 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3차례에 걸친 일방적인 처리연기를 자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단은 규정을 무시한 채 불승인을 기조로 강행하려는 시도뿐 아니라, 요양부장 면담진행 중 몰래카메라로 면담자를 감시하는 것도 발각되었다. 이에 문제제기를 하자 요양부장은 ‘평소에도 하는 일이다, 무슨 문제냐’라고 해 일상적으로 면담자를 감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집단과격민원처리지침에 의해 해오는 것으로 근로복지공단은 민원인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산재노동자의 요양신청에 대해 7일만에 결과를 주어야 함에도 서울대학교병원 수술장 조합원의 산재승인은 무려 10주가 걸렸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상황을 거쳐 공단은 수술장의 과중한 업무가 요추부 염좌를 유발한다고 인정했다. 그동안 병원이 주장한, 앉아서 편히 일하는 부서라서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작업이 아니라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심의위원회 의사의 ‘근골격계에 걸리면 의사가 걸리지 간호사가 뭐가 힘드냐’는 상식 이하의 발언도 망발임을 알 수 있었다.
산재조합원이 부분승인이라는 결과를 듣고 ‘씁쓸하다’했던 표현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산재를 증명하기 위해 재해자까지 나서야 하는 현실은 노동자의 투쟁으로 바꾸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을 과제로 남기고 있다. 이는 서울대병원노조 조합원들의 이후 근골격계 직업병 산재승인 투쟁을 위해서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남은 과제

근로복지공단의 눈치 보기, 직무유기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근로복지공단을 계속 존속시켜야 하는지 의문까지 들게 한다. 서울대학교병원의 브랜드파워에 눌려 신속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함에도 눈치 보기로 일관했던 상황은 공정하지도 않고, 신속하게 결정을 못하는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이 과연 일하다가 병든 노동자를 위해 제대로 된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느냐도 의문이다. 위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절차와 과정도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서 아픈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한 상태에서 병가를 받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무급으로 휴직을 받은 채 생계대책도 없이 병든 몸으로 10주간을 버텨내야 하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지지 않는 구조가 노동자에 대한 이중살인을 마음 놓고 저지르게 하고 있다.
조직이 있는 노동조합이 붙어도 이렇게 힘든데, 혼자서 이런 투쟁을 하려면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가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라는 압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도 먼 길을 달려 투쟁하고 있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동지들을 비롯, 전국에서 힘차게 투쟁하는 동지들께 서울대병원의 투쟁 결과가 희망적인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혼자 하는 투쟁이 되지 않도록 노동자는 무조건 연대해야 한다. 공공연맹의 노상규 전 산안국장님을 비롯하여 함께해주신 분들이 없으면 여기까지 오는 길이 많이 힘들었을 터, 이 글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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