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번 칼럼은 분량이 많아 이번 호와 다음 호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교원평가제도를 바라보는 각계각층의 입장과 시각을, 다음 호에서는 교원평가제도에 관한 왜곡된 속설과 진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 공항고등학교 교사/전교조 조합원 송원재
교원평가 논란이 뜨겁다. 얼마 전 시범실시에 들어간 교육부와 강력저지를 천명한 교원단체는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보수언론은 “교사들의 철밥통을 깨뜨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학부모는 그 동안 교육에 대해 쌓인 불만을 일제히 터뜨린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이미 쌍방 간에 주고받는 토론이 아니라 일방적인 ‘교사 때리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길거리에서 교사 신분이 탄로나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뭇매를 맞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 동안 전교조의 참교육운동을 지지해 왔다는 이들도 이번만큼은 쉽사리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 대신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따끔한 일침이 날아오기 일쑤다. 배가 불러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부 대기업 노조처럼, 전교조도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참교육의 대의를 버린 것일까?
누가, 왜 교원평가를 바라는가?
학부모 - 교원평가를 바라보는 각계각층의 눈은 참으로 다양하다. 학부모들은 사실 교원평가의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또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어 보인다. 대다수 학부모들이 교원평가에 대해 바라는 것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실력은 개뿔도 없는 주제에 돈만 밝히는 ‘촌지선생’,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두들겨 패는 ‘깡패선생’, 성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대충선생‘, 성추행 같은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뻔뻔선생’들을 제발 교단에서 더 이상 보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거기 덧붙여 날로 늘어가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휠 지경이니,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되도록 학교에서 아이들 좀 제대로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보수언론 - 그러나 보수언론의 속셈은 사뭇 다르다. IMF 위기가 닥친 뒤 보수언론은 이른 바 ‘철밥통론’이란 걸 들고 나와 노동유연화 정책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것이 노동통제를 한 층 더 강화함으로써 결국엔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결과 요즘엔 보수언론이 가리키는 대로 우르르 몰려가 남의 밥그릇을 깨는 게 어느덧 자연스러운 사회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또 경쟁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면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나의 경쟁상대’를 갖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교육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보수언론은 “경쟁만이 살 길이다. 교육도 경쟁력을 키워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 같은 천재 1명이 둔재 100명을 먹여 살린다.”느니, “가뜩이나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살 길은 인재를 기르는 것 뿐”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보수언론이 만들어 놓은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도 평가의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교원평가는 어느 새 거부하기 어려운 대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교육의 학업성취도 수준은 보수언론이 떠드는 것처럼 낮은 수준이 아니다. 2003년도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를 조사한 국제학업성취도 비교평가(PISA 2003)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읽기’, ‘쓰기’, ‘수리’ 등 평가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세계 최고수준의 학업성취도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미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사교육 열풍이 한 몫 했겠지만, 우리나라 공교육의 질이 낮다고 단정 지을 만한 근거는 없다. 결국 보수언론이 떠드는 ‘공교육의 경쟁력’은 객관적 실체를 가진 ‘사실’이라기보다는, 교육 내 경쟁을 부추기기 위한 의도에서 조작된 ‘신화’에 가깝다.
‘교육 경쟁력’과 함께 보수언론이 즐겨 쓰는 ‘교육 수요자론’도 마찬가지다. 공교육은 원래 노동력 양성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불하는 시스템으로, 그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는 계급 간의 타협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다. 따라서 공교육은 처음부터 고도의 공적 이념에 근거한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어, 그에 필요한 모든 시설과 자원은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무상 의무교육 제도는 바로 이런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느닷없이 ‘수요-공급 이론’을 들이대는 것은 뜬금없는 이야기다. 겉으로는 학부모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교육에서 ‘공공성’을 탈색시키는 대신, 그 빈자리를 ‘자본의 시장논리’로 메우려는 것이다. 이 같은 ‘공공부문의 시장화’ 시도는 비단 교육부문 뿐 아니라, 그 동안 ‘공공영역’으로 분류되어 국가의 책임 아래 놓여 있던 보건/의료/복지/기간산업 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 - 교원평가를 밀어붙이는 정부도 속 다르고 겉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공교육의 질 향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교원평가 하나 도입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공교육의 질이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정부 관계자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간간이 흘러나온 정부 측 자료나 교육개발원 등의 위탁연구 결과는 교원평가의 목적이 전혀 다른 데 있음을 말해준다. 말로는 “평가결과는 본인에게만 통보해서 자기계발의 자료로 삼게 하겠다.”고 하지만, 정부 측 문서는 평가 결과를 장기적으로 보수와 인사에 연계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저 출산 사회의 도래로 인한 학생 수 감소에 맞추기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를 크게 줄이지 않는 한 교원의 감원이나 퇴출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제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뒤 선택과목이 대폭 늘어나면서 ‘교원노동의 유연화’에 대한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자치 확대’가 가시화되어 교육재정 부담이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갈 경우, 가뜩이나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이 당장 인건비 절감에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만약 당신이 도지사라면, 수업은 적게 하고 월급은 많이 챙겨가는 원로교사를 쓰겠는가, 아니면 시간수당 조금 주고 마음대로 부리다가 언제든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 기간제 교원을 여러 명 쓰겠는가? 신규교원 채용은 중지될 것이고, 고령교사나 ‘무능교사’로 찍힌 교원에 대해서는 퇴출압력이 집중될 것이다.
교원평가는 결국 ‘교원노동의 유연화’를 위한 ‘교원 서열화’ 작업이고, 그 결과는 장기적으로 교원에 대한 새로운 유형의 강력한 통제수단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거짓말까지 해 가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교원평가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교원평가가 가지고 있는 이런 ‘이점’ 때문이다. 교육부문에 시장논리를 전면 도입하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교원평가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사항’이다.
이쯤 되고 보면 교원평가를 바라보는 각계각층의 시각은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교원평가의 본질이 ‘교원에 대한 시장적 통제’인데도, 정부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보수언론은 이심전심으로 뻔히 알고 있으면서 ‘철밥통론’을 들고 나와 교원의 반발을 무력화하고 있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원래 그렇다 치고, 정작 딱하게 된 것은 학부모들이다. 처음엔 단순히 ‘무능한 선생 혼내주기’ 정도로 생각하고 덜컥 지지했지만, 그 깊은 속사정까지야 알 수 없는 노릇이라, 지금 와서는 정부와 보수언론에 실컷 이용만 당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