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를 부탁받은 후 제일 먼저 떠올려 본 것은 4년 전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던 월드컵을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선명한 것은, 우리 아버지께서 16강 이태리전이 끝난 다음 날 퇴근하시면서 축구협회의 국가대표 유니폼 상의 레플리카 한 장을 사가지고 들어오신 일이었다. 운동경기 관전이라고는 담을 쌓고 지내시던 양반이 이게 이쩐 일인가 싶어 여쭤보았더니, 남들이 모두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다녀서 당신도 입어보려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우리나라는 다시한번 월드컵의 거대한 흡인력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할인점의 판촉 증정물에는 이미 축구응원용 헤어밴드와 타월이 자리를 잡았고, 공중파 뿐만 아니라 각종 유선방송 매체들은 4년 전의 월드컵 방송을 정말 '지겨울'만큼 계속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디어들은 한결같이 우리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오로지 축구뿐인 양 '우리는 축구로 하나됩니다'류의 멘트를 아무 생각없이 지금도 쏘아올리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별종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4년 전 그렇게 발광(?)을 할 때에도 난 한 번도 '우리가 축구로 하나되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을 뿐더러 국가대표팀에 그렇게 열광하면서도 프로축구 경기장은 썰렁한 관중석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으니...(개인적으로 축구란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어서...)
월드컵이 우리를 하나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어서 고단한 우리의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마취제 역할일 뿐이다. 그리고 잠시나마 현실을 은폐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코오롱의 정리해고투쟁과 까르푸의 고용안정투쟁은 월드컵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계속될 것이며, 주류 미디어가 주야장창 축구 얘기로 고달픈 노동자들의 외로운 투쟁을 외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투쟁이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업장의 경우 백화점에서 아울렛으로의 업태변경 이후 영업시간이 늘어나고 이에 비례하여 외형매출도 상승하였지만 반면 객단가(고객 1명당 쇼핑하는 평균금액)는 떨어졌다. 이는 계산대에서 근무하는 캐셔들의 노동강도 증가로 고스란히 이어져 여러 점포에서 손가락, 손목,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는 조합원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랜드는 광고 카피로 '뉴코아 모든 가족들이 축구대표팀을 응원합니다'는 초대형 현수막을 강남 본점에 걸어놓았을 뿐 직업병과 관련하여 어떠한 대응책도 내놓고 있지 못하다. 결국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은 방송사, 기업체의 자사 이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 정작 진심으로 우러나는 응원을 펼치는 근로 대중은 여지없이 뒷자리로 밀려나 있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혹자는 "에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리 흥분하고 난리야. 월드컵은 월드컵일 뿐, 그리고 우리 같은 서민들도 그런 걸로 스트레스 해소하고 하는 거지 뭐, 신경 꺼"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로 대중의 억압 기제로 작용할 수 있는 언론 미디어가 현실을 호도하는 도가 해도 너무 지나치며, 월드컵을 개최하는 FIFA역시 기본적으로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속성을 버릴 수 없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문호는 계속 넓어지고 있으며, 월드컵은 아마도 상업광고와 프로선수들의 출전을 가장 먼저 허용한 국제대회로 알고 있다. 다국적 자본의 브랜드를 달고 소비되는 축구공과 축구화, 유니폼은 또 어느 개발도상 국가의 아동과 여성노동을 착취해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월드컵은 지역감정과 계급간의 갈등으로 아웅다웅하는 우리 나라의 현실 속에서 잠시 문제들을 덮고 넘어가자며 자본이 내미는 약한 독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힘없는 민초들은 슈팅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6월의 짧은 밤과 새벽을 가로질러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잔을 부어넘기겠지.....이건 아닌데......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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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 / 한노보연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