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와 무더위가 오락가락하는 6월 말, 광주 전남대병원 노동조합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노동조합 사무실은 정년퇴임식과 교섭 일정으로 분주했다. 인터뷰를 위해 노안부장, 교선부장 두분과 마주 앉았다.
활동 시간은 필수 조건이다
노동조합 집행간부 12명 중 전임자 5명, 이중 명예산업안전감독관까지 겸하고 있는 노안부장은 비전임이다. 노안부장 활동은 지난 집행부 때부터 해왔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다. 별도의 활동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니 그때그때 근무협조를 받거나 개인 휴가를 써서 활동을 해야 한다.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은 근무시간 틈틈히 처리하고는 한다. 참석자 서명용지만 채우고 땡! 해버리는 매월 정기안전보건교육 문제도 고쳐야하는데… 작업환경측정이나 건강검진을 병원 노동현장의 특성에 맞추어 제대로 해야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지난 1분기에 열지 못한 산보위도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직원 병실은 언제나 만원”
병원에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참 많다. 침대 바퀴에 발가락이 뭉개지거나, 주사바늘에 찔리거나, 환자를 들어 옮기면서 허리를 삐끗하는 따위의 사고들이다. 노안부장은 오늘 산재를 준비하고 있는 영양실 노동자와 상담을 하고 온 길이다. 워낙 시간이 없어서 산재 상담하기도 힘드시겠네요? 물었더니 상담이 그렇게 많지는 않단다. 현장에 아픈 노동자들은 많은데, ‘내 병은 내가 알아서 고친다’는 분위기가 많고, 덕분에(?) 산재상담 업무가 많지는 않다. 병원 직원들에게는 병실비를 할인해주는 제도가 있어서 굳이 산재 처리를 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꽉찬 직원 병실을 보면, 노동자 건강 문제는 늘 제자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여성 건강권 - 모성을 넘어 여성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이나 건강 문제는 흔히 ‘모성보호’ 차원에서 이야기된다. 거의 예외없이 익숙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밑바닥에는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을 수 없는 여성은 남성과 똑같다’라는 암묵적 가정이 흐른다. 전남대병원 노동자의 80%를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물었더니, 역시 출산휴가, 육아 휴직에 대한 얘기가 제일 먼저 나온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모성 말고 여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마음 속에 물음표를 던지면서 인터뷰를 이어갔다.
보건의료노조 단협에 의해 출산 휴가는 산전 산후 90일이 보장되어 있다. 육아 휴직(무급)은 아이 첫돌까지 보장되는데, 처음에는 누구도 쓸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노조 간부가 첫 시작을 열자 점점 이용이 늘어났다. 유산을 한 경우에도, 임신 몇주차에 유산되었는가에 따라 지정된 기간만큼 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다만 ‘통계는 없지만 유산이 은근히 많아요. 늘 서서 일하고, 스트레스에, 교대근무에, 약물 취급에…’라는 교선부장의 지적처럼 유산에 따른 휴가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그 원인을 밝히고 없애기까지는 아직도 먼 길을 가야한다.
생리 휴가는 교대근무자들은 대부분 꼬박꼬박 사용하고 있지만, 외래진료실이나 검사실에서 낮근무만 하는 통상근무자들은 생리 휴가를 거의 쓰지 않는다. 정 필요하면 연가를 사용한다. 생리 휴가 때는 기본급의 30분의 1(3만원)을 지급하지만, 연가를 쓰면 1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라면, 비단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 혼자 생리 휴가를 찾아 쓰겠다고 나서기란 퍽 어려운 일일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 - 간호인력등급
종합병원은 간호 인력 규모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는데, 간호사 1명당 병상 비율이 2.0 미만이면 1등급, 2.0~2.5미만이면 2등급, 2.5~3.0미만이면 3등급… 이런 식이다. 등급이 높을수록 간호사 한명이 돌보아야 하는 환자 수가 적어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병원은 더 많은 수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1, 2등급에 해당하는 병원은 단 4개. 나머지 대다수의 종합병원들은 수가 인상이 간호사를 늘리는 데 드는 인건비에 비해 적다는 핑계로 3, 4등급에 머무르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간호사 1명당 병상 수 3.0~3.5개로 4등급이다. 4등급이라도 간호사 한 사람이 서너 명의 환자를 간호하는 거라면 제법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막상 병동에 가보면 어째 간호사 수가 턱없이 모자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그럴까?
전남대병원에서 실제 가동되는 병상 수는 1,032개에 달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약 800개로 친다. 4등급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간호사 수를 계산할 때 실 가동 병상을 기준으로 하면 295명(1032÷3.5)에서 344명(1032÷3.0) 정도가 된다. 하지만 800병상을 기준으로 하면 228명(800÷3.5)에서 267명(800÷3.0) 정도가 된다. 이렇게 ‘공식적인’ 병상 수를 줄이니 수십 명에서 백여 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등급 기준에서 고작 서너 명을 넘길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인원을 유지하는 신기한 재주를 부리고 있다. 가령 등급 심사를 하기 전에 퇴사하려는 노동자들을 억지로 붙잡아두었다가, 심사가 끝나면 퇴사 처리를 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 출산휴가, 육아휴직, 생리휴가 및 각종 연월차로 생기는 결원까지 있으니, 실제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수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미션 임파서블 - 인원 최소화와 서비스 극대화?
사람 수가 부족한 것은 입원 병동의 문제만이 아니다.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간호인력등급에도 불구하고 전남대병원은 정원 2,529명 중 182명이 부족한 상태다. 부족 인원 중 절반은 인건비가 비싼 의사 인력이다. 의사 수가 모자라다 보니, 의사 한명이 맡고 있는 외래와 입원 환자 수가 너무 많다. 게다가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에게도 여파가 미친다. 외래 업무를 맡고 있는 간호사와 조무사들은 점심을 제때 챙겨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병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도대체 의사는 언제 오는 거냐’라는 환자와 보호자의 항의에 시달리느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검사실이나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들 역시 사람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부서에서는 하계휴가를 다 쓰지 못하고 나와서 일합니다. 얼마 전에는 연가를 썼다가 사람이 없어서 도로 나와 일하기도 했어요’라는 노안부장의 얘기가 어디 이곳만의 문제랴.
전남대병원은 지역사회의 몇 안되는 대학병원인만큼, 큰병깨나 걸렸다 싶은 환자들이 다 모인다. 그러다보니 “전대병원 일반 환자는 다른 병원 중환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환자가 많고, 당연히 환자에게 필요한 서비스의 질, 환자가 요구하는 서비스의 수준도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병원은 의료시장 개방이니 경쟁력이니 하면서 ‘환자권리장전’, ‘친절운동’, ‘3CS운동(change, care, communication, smile, speed, security)', '4I's 운동’, ‘한번 더하기 운동’ 따위의 구호를 앞세워 서비스 강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턱없이 부족한 인원으로는 환자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기는커녕, 최소한을 제공하는 것조차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미션 임파서블’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비결 - 노동시간 연장
그런데도 병원이 돌아가는 걸 보면, 무언가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비결이 있을 것이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자본의 비급과 비결들을 어찌 다 알랴마는, 인터뷰를 통해 찾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비공식적인 노동시간 연장이다. 일은 많은데 사람이 모자랄 때 자본이 제일 먼저 찾는 해법, ‘더 오래 일하게 하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더 오래 일을 시키되 돈은 들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다.
전남대병원에는 ‘출퇴근 시차제’라는 것이 있다. 접수 업무를 예로 들면, 접수 창구의 노동자는 부족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많으니, 창구 노동자 일부는 8시에 출근해서 접수를 시작한다. 접수가 끝날 무렵이 되면 업무가 줄어드니 일찍 출근한 사람들은 한시간 먼저 퇴근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탄력적 근무시간 운영의 효과는 몇달 가지 못했다. 9시에 접수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환자들이 8시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이제 8시에 접수를 시작하니 7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검사실이나 전산실에는 ‘점심 당직제’라는 것도 있다. ‘환자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점심 시간을 쪼개어 한사람씩 밥을 먹고 한사람은 계속 일을 한다. 고객 만족을 위해 근무 중 유일한 휴식시간인 점심시간마저 반토막이 난다.
각종 회의와 교육, 팀별 과제도 비공식 노동시간을 늘리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한다. 병원은 현장을 팀제로 재편하고, 업무 개선 및 자기 개발을 내세워 팀별 과제를 내준다. 이를 위한 회의나 교육은 대개 공식 근무시간을 마친 뒤 이루어진다.
업무 교대를 위한 인수인계 시간이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교대를 마치고 퇴근하려다가도, 후임자들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면 퇴근을 늦추고 한두 시간 더 일하다가 가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정규 근무를 마치고 정당한 휴식을 위해 퇴근하는 순간,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로 내몰리지 않을 수 없다. 여유있게 일하고 충분히 쉴 수 있는 권리를 빼앗은 것은 자본이지만, 정작 현실에서 그 권리를 사이에 둔 다툼과 갈등은 노동자들 사이로 슬쩍 자리를 바꾸고, 그 와중에 최소의 인원으로 서비스와 이윤을 극대화하는 ‘불가능한 미션’이 가능해진다.
호시탐탐, 일상적 구조조정
정규직이 이런 지경이니 비정규직은 오죽하랴. 비정규직 얘기를 꺼냈더니 교선부장의 입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기막힌 이야기들. 안그래도 이번 노사협의회에서 광주병원 전화교환실을 도급화하자는 사측 안이 나왔단다. 2004년에 뒤늦게 개원한 화순병원(전남대병원은 광주와 화순에 각각 있다)은 이미 간호조무사, 원무과 창구직, 교환실 등이 모두 외주화되어있는데, 이제 광주병원까지 그렇게 바꾸어버리려는 것이다.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줄일 수 없으면 비정규직으로 바꾸어 버리려는 자본의 시도는 그야말로 호시탐탐, 조그마한 틈새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정문 경비 업무, 병원 안내 업무, 순찰 업무 등은 기존 근무자들이 자연퇴사한 뒤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원을 줄이고 있다. 병원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건물을 지어올리는 기회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2001년 응급의료센터를 새로 개원하면서 기존 응급실에서 일하던 청원경찰과 식당을 외주화했다. 작은 틈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자본의 구조조정. 거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역시 일상의 작은 고충들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야 한다.
한숨이 목숨으로 이어지는 현실
현장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장 순회에 힘을 쏟고 있다는 교선부장은 노동자들이 ‘한숨을 쉬어가면서’ 일하고 있다고 전한다. ‘현장을 부지런히 쫓아다니지 않고서야 그 한숨소리를 미처 들을 수도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었다.
작년 11월과 올해 4월, 화순병원 수술실에서 일하던 두 명의 간호사가 자살했다. 두 죽음은 극도의 긴장 속에 일해야 하는 수술실의 업무 부담에 더하여, 간호사들 사이에 순위를 매겨 경쟁적 분위기를 조장해온 중간관리자의 압력, 게다가 폭력적 언사를 일삼는 의사들에게 인격을 짓밟혀온 일상의 노동조건이 ‘죽느니만 못한 것’임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에 수술실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간호사들은 자발적으로 ‘애도기간’을 정하여 출근을 거부하고 파업으로 두 죽음을 기렸다. 수술실 간호사들의 인권 문제를 조사해보자면서 스스로 설문지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의 대응 역시 기민했다. 병원은 독자적으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중간관리자를 전환배치하고 ‘병원 문화를 개선하겠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처리과정에 협조하겠다’라는 공허한 약속으로 한달만에 사건종결을 선언하였다. 그 사이에 자발적으로 파업을 결의하고 후속 과제를 준비하던 현장의 시도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노안부장과 교선부장은 ‘추모리본 패용지침조차 지키지 못할 만큼 현장통제나 개인주의가 만연해있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 답답함은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잠시 마주앉은 자리에 막막함이 흘렀다. 하지만, 그 막막함이란 게, 한스럽게 죽어간 목숨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그 슬픔과 충격을 진정으로 극복하려 고민하고 노력했으나,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해서 또다른 한숨이 깊어가는 현장에 비할 수 있을까.
문득 2003년 8월, 두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은 뒤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서울도시철도 승무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수십 명의 정신질환 환자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건 개선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로지 환자들을 ‘처리’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사측. 그에 비하여 노동자의 단결은 얼마나 약하고 쉽게 흔들리는가. 현장의 자발적 투쟁과 실천을 노동조합이 묶어세우지 못할 때 일상의 ‘한숨’은 얼마나 깊어지며, 한많은 ‘목숨’은 얼마나 싼값에 처리되고 마는가.
결국 관건은 일상의 작은 고충과 한숨에 귀기울이는 것을 넘어 ‘어떻게’ 파고드느냐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