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6/8월/현장의 목소리] 충청지역노동건강협의회

“내부 활동가들 사이의 관계맺기가 우선”

내게 대전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상이 있었다. 잘 뚫리고 서울보다 덜 막히는 길, 비교적 깨끗한 공기와 전국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통의 편리성 등... 왠지 대전은 살기에 참 좋아 보이는 동네이다.

그리고 이런 특징 때문인지 이 지역 동지들은 손님 치르기에 익숙하다. 전국에서 소집되는 각종 회의 및 수련회 장소 제공을 비롯해 온갖 행사의 주인장 역할뿐만 아니라 뒷풀이 후 숙소 제공까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 온 것이 이 동네 동지들이다. 그렇게 푸근하고 여유로운 충청지역노동건강협의회(이하 충노건협) 동지들을 만났다.

뜨거운 토론으로 시작한 인터뷰

동지들을 만나러 간 날은 마침 노동보건정세 교육에서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던 ‘주간연속2교대제 쟁취와 심야노동철폐’라는 투쟁의제에 대한 보충교육이 잡혀있는 날이었다. 교대제와 심야노동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후 역시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자본의 이윤율과 생산성을 꿰뚫는 노동시간에 대한 고찰과 인식부터 ‘왜 이것이 주요 실천의제가 되어야 하는지’, ‘지금 노동보건운동의 과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와 같은 다양한 고민들이 토론되었다. 뜨겁게 토론을 진행하면서 ‘인터뷰가 만만치는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열정과 고민이 많은 동지들이었다.

현재, 충노건협은 대표 체계가 아니라 운영위원회 체계이다.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연희 동지, 그리고 얼마 전까지 상근을 했던 사무국장 이강철 동지와 술자리에서 마주 앉았다. ‘뒷풀이와 함께하는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될까’했던 나의 우려는 인터뷰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 옆자리에서 다른 동지들이 열심히 술을 마시는 사이, 그리고 참다못해 자리를 끌어당길 때까지 ‘할 말이 없다’는 이야기로 시작된 인터뷰는 한시간에 가까운 시간동안 진지하게 이어졌다.

지역과의 접점 만들기

첫 질문은 “요즈음 어떠시냐?”는 굉장히 모호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외적으로는’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철도 정비창 노안국장과 노안담당자 교육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산재신청 방법 등 기초 교육을 시작하고 있는데 강사 역할을 할 동지들을 조직하는게 어렵다고 한다. 현장에서 노안활동을 한 경험이 많은 동지들이 회원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사의 노안활동가의 역할을 뛰어넘기가 쉽지가 않다고 한다.

‘내부적으로’는 회원 월례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5월 노동보건정세를 시작으로 해서 6월 한미 FTA, 그리고 7월 교대제와 야간노동에 대한 교육과 토론을 진행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을 때 드디어(!) 김연희 동지의 말문이 터졌다. 지역본부와의 일상적 노안활동 강화를 위한 사업을 모색중이라고 했다. 지역본부차원에서도 노동보건활동이 많지 않았는데 ‘4월 노동자건강권 쟁취의 달’과 같은 대중사업들을 잡아가면서 공동활동을 진행해 보려고 만남의 물꼬를 틔우고 있고 지역본부 노안담당자의 회원가입도 조직했다.

한편 노동운동단위뿐만이 아니라 지역보건의료운동단위들과의 연대도 강화하기 위해 충노건협의 이름으로 대전충남보건의료단체연대회의에 참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지역의 보건의료인들과 연대하며 노동자건강권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할 말이 없는’ 아니, ‘고민이 많은’ 충노건협

‘할 말이 없다’며 시작했지만 이는 ‘고민이 많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 같았다. 지역의 노동보건운동 단위로서의 역할을 찾기 위한 지역동지들과의 접점 확장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내부에 대한 내용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현재 13명인 충노건협 회원의 절반이상은 현장의 활동가들이다. 민주노총 지역본부, 금속노조의 지역지부, 그리고 단위사업장의 노안담당자와 관련 활동가들까지, 충노건협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현장회원들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는 이들 현장회원의 대다수가 단위 사업장의 노안간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활동가들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것이 장점이 되기에는 많은 과제가 있다고 한다. 이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현장이나 지역을 뛰어넘는 활동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임간부가 아닌 상황에서 지역 운동을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 날의 교육에는 현장활동가 대부분이 불참했다. 철도 정비창 교육도 강사진을 구성하기가 어려워 일부 강의는 한노보연 동지들에게 부탁해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지역 및 전체 운동의 노안활동에 대한 인식에도 한계가 있다. 금속을 제외하고는 단위 현장에서 노안사업이 있는 단위가 없다. 지역본부의 경우에도 올해야 겨우 담당자가 생긴 상황이며, 심지어 전임자도 아니다.

사실 이러한 현장활동가들과 지역의 상황은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노보연의 경우에도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금속 외 다른 연맹과의 사업을 기획하거나 서울이나 부산의 지역 활동을 고민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장활동가들의 연구소 결합력 강화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겹쳐졌다. 그리고 충노건협의 현재 활동의 어려움의 주요 원인도 이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충노건협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인 고리를 유지해야 해요

그래서 ‘현재 충노건협의 활동이 정체 되어 있다고 평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조금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처음 대답은 지역 및 현장의 객관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노안활동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역본부와의 일상적 소통과 대중사업을 통해 확장을 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역시 핵심은 내부 역량의 문제이다. 충노건협은 올해 사업계획을 잡으면서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소박하게(!)’ 월례 교육을 진행하는 것과 정기적인 회원 수련회나 엠티를 추진하는 것을 중심으로 잡았다. 월례교육은 어렵게 어렵게 진행하고 있지만, 수련회나 엠티는 다들 날짜를 잡기 어려워 아직 한 번도 진행되지 못했다. 엠티 한번 가기도 쉽지 않은 지역활동가들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금은 조직 상황에 맞게 내부를 추스르는 것부터 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운영위원장을 맡은 김연희 동지는 휴면 회원들이나 개인적 어려움이 있는 회원들과 미팅을 진행하고 그 상황을 공유하면서 내부를 단단히 하기위해 움직이는 것이 현재까지의 주요한 활동이었다. 노동조합 활동의 경험이 있는 약사라는 독특한 이력의 김연희 동지는 조직활동가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내부 정리가 안 되면 아무 일도 못할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활동이 빛을 발하면서 휴면회원이었던 현장동지가 내년부터 활동 복귀를 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한편으로 현장 회원이 아닌 충노건협의 주요한 한 축은 보건의료인 회원들이다. 의사와 약사인 회원들은 다른 보건의료단체에 속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랜 세월 운동을 해온 동지들이기에 속해 있는 단체에서 하는 일도, 요구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충노건협의 동지들은 이를 부담으로 느끼기보다 기회로 느끼고 있었다. 회원 월례모임이나 교육에 다른 단체의 동지들을 초청하기도 하고 충노건협의 후원회원으로 가입을 시키기도 하면서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관심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었다.

김연희 동지는 ‘인간적인 고리를 유지하고 결속하는 것이 활동하는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라며 반문을 한다. 인간적인 문제들 때문에 오히려 활동이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다시 인간적인 고민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활동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희망이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녹녹치 않다. 5월부터는 상근자도 없는 상황이라 회원들과의 일상적인 소통을 하기도 회의준비를 하기도 쉽지도 않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역에서 사업이나 현재 활동들의 후속사업을 기획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의 고리와 확장점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지역에서 노동보건운동하기, 현장활동가들의 축적된 활동이 필요하다.

지역 활동의 어려움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특히, 노안 활동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금속을 제외하고는 접점을 넓힐만한 담당자를 확인하는 것조차 힘들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노안간부를 하다가 현장으로 내려가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 밖에 없다. 한노보연도 마찬가지이지만 회원 개인의 일상 공간과 활동 공간이 유기적 연관을 가지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지역 주체들과 공동의 사업을 기획하거나 일상적 소통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회원들의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김연희 동지가 힘주어 이야기한다. 충노건협뿐 아니라 지역의 노안 활동가들은 처음에는 조합원으로 그리고 단위노조 간부로 활동을 한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면 현장으로 내려오고 활동의 고리는 놓아버리게 된다.

회원들과 현장활동가들이 개인의 활동 또는 노안이라는 주제에 갇히는 활동이 아니라 노동운동가로 재조직되는 과정에 충노건협이 역할을 해야 한다. 회원들이 단위노조와 충노건협을 통한 지역활동의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을 겪어가며 노동운동가로 거듭나고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활동의 지평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서 희망 만들기

지역활동을 하는 동지들과의 대화는 어떤 형태로든 쉽지 않다. 지역의 상황이 그리고 전체 운동의 상황에서 노동자건강권이 주도적인 관심을 받거나 주요하게 자리매김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2002년 근골격계 요양을 처음 시작한 지역이었고 2005년에는 지역에서 조사단을 꾸려 현장 동지들이 직접 유해요인 조사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대전충청지역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조합의 부침에 따라 지역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단체의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기에도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지역의 단체들은 활동가를 조직하는 역할이 아니라 산재 상담을 하기에도 벅찬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의 해결은 결국 여기,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단절된 실천의 경험들을 다시 한번 복원하고 잊혀진 사업들의 후속사업을 기획하고, 지역의 대중조직들을 만나 작은 접점들을 형성하며 접촉면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충노건협 동지들의 인식에 동의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극복의 지점은 확인을 했지만 ‘지역에서 누가 극복의 주체로 설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결국 그 주체는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내부의 활동가들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면서 남들을 조직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내부 활동가들 사이의 관계 맺기’ 그리고 현재의 지점에서 가능한 실천들을 조직하기, 여기부터 지역활동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는 고민을 하면서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고 있는 충노건협 동지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꼼지락거리는 작은 움직임이 큰 회오리로 몰아칠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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