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에서도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괴물>이 지난 7월 27일 개봉했다고 한다. 그 영화의 줄거리라는 사실 간단하다. 미군이 한강에 방출한 포름알데히드라는 독극물 때문에 물고기의 돌연변이가 생겨서 괴물이 되고, 그 괴물이 한강에 출몰해 사람들을 잡아먹고 그 중 잡아먹힐 뻔한 여중생의 가족들(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가 분한)이 결국 그 괴물에게 대항한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생각일지 몰라도 한미FTA투쟁이 2차 협상을 마무리한 이 마당에, 그 영화 <괴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협잡, 정부 관료들의 사기꾼 같은 행태, 그들을 충실히 받드는 경찰과 군인들의 폭력…. 그러나, 그 모든 걸 회고하기도 전에 우리는 뒤통수를 아주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복지부가 추진하려는 약제비적정화방안이 최대 고비라면서 한미FTA협상이 결렬되었다던 게 7월 14일. 불과 열흘만에 뒤통수를 때리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뒤통수를 치는 한국정부
재정경제부는 7월 24일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을 내놓았다. 경제자유구역법이 무엇인가? 인천 송도, 부산 광양 등 특정지역을 경제자유구역이라고 선정해놓고 그 지역에서는 모든 기업 활동을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걸 법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경제자유구역법이다.
경제자유구역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수많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제자유구역법이 기업의 이윤만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특히나 보건의료단체와 보건의료노동자들은 경제자유구역법이 외국병원 설립을 말하지만, 사실상 ‘병원 영리법인화 허용’으로 연결된다며 이를 반대해왔다. 국내에 진출하게 될 외국병원들은 대부분 영리를 목적으로 진출할 것이며, 이는 결국 전국적인 영리병원의 허용으로 직결된다는 것이었다.
돈만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신문에 ‘사회적 양극화’ 문제가 뜨는 마당에, 돈만 목적으로 하는 병원을 허용한다는건 공공의료를 아예 무너뜨리고 돈 없는 사람은 그냥 죽으라는 말밖에 안 된다. 이 때마다 정부는 외국병원에만 영리법인을 허용할 것이니 걱정 말라 했다.
하지만, 24일 발표된 정부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은 외국병원 설립을 할 수 있는 주체를 ‘외국인’으로 제한했던 조항을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투자한 국내법인’으로 확대해버렸다. 정부는 스스로 뱉은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외국인 투자지분이 10%이상만 돼도 외국인투자기업이 되는 게 한국의 현실. 삼성전자, 국민은행 등 우리나라의 알만한 기업들은 모두 외국자본 투자기업인데, 그렇다면 사실상 거의 알만한 기업들은 모두 경제자유구역 내에 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그토록 우려했던 본격적인 영리병원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 설치에 따른 의료시장 개방 기전
한미FTA 협상에서 영리법인을 다루지 않아도 한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의료기관 영리법인을 법제화한다면, 자연스럽게 이 문제는 협정 내용에 추가된다. 외국병원 설립 주체가 외국인에서 외국자본 투자기업으로 확대되었으니, 외국인 직접 투자 비율이 10%만 되면 버젓이 세제혜택을 받고 해외자본들은 경제자유구역에 위험한 투자를 하기보다, 앞으로 국내 기업 및 병원들을 끼고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2003년 경제자유구역법이 시행될 때부터 보건의료체계의 상업적 재편을 우려해왔다. (출처: 최용준, 임박한 의료시장개방 무엇이 문제인가? 진보평론 2003. 5)
미국식 의료체계를 부르는 한미FTA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 있다고 해서 한미FTA가 덜 중요한 사안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미FTA는 여전히 영리병원 허용과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얼마 전 열린 WTO협상이나 FTA에서 말하는 서비스개방, 그 중에서도 의료서비스개방 문제는 단순히 외국병원이 한두 개 한국으로 진출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미국대표부는 한미FTA 1차 예비협상에서 “투자부문에서 미국국내법의 한국적용”을 주장했고, 이는 한국 의료체계를 미국식으로 바꾸라는 말이다. 미국식 의료체계의 끔찍한 실상을 알고 있는가? 미국은 OECD국가 중 압도적으로 많은 비용을 의료비로 쓰면서도 건강만족도가 가장 낮은 층에 속한다. 지난 6월 26일 발표된 OECD자료(2004년 기준)를 보자. 1인당 의료비 지출이 가장 높은 미국은 6,102달러로 GDP대비 15.3%(OECD평균 8.9%)를 차지하지만, 국민건강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낮았다. 미국 전 국민의 14%인 4.800만 명이 아무런 의료보험이 없고, 개인파산의 절반이 의료비 때문인 나라가 미국의 현실이다.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한국 정부는 더욱 더 미국 병원자본과 보험자본의 입맛에 맞는 국내 무역환경(!)을 정비하게 되었고, 이는 9월로 예정된 한미FTA협상에서 자연스럽게 병원 영리법인화 허용,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위한 수순을 밟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한 공공성의 폐해는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최근 미국 메릴린치와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 베인캐피털이 공동으로 미국 최대의 병원 운영업체인 HCA를 인수합병(M&A)하게 되었다. 사모펀드들은 인수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채권(정크 본드)을 발행하여 이 돈으로 기업을 사들인 뒤 상장 폐지, 구조조정, 재상장 또는 매각을 통해 차익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마찬가지 방식으로 거대 수익을 챙겨 온 뉴브릿지캐피털, 칼라일그룹, CVC아시아퍼시픽, JP모건파트너스 등 국제 대형 펀드사들은 다음 공격대상은 보건의료분야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건강 잡아먹고 노동자 피땀 빼먹으니 말 그대로 괴물!
현재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송도에 진출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한 NYP병원을 보자. 이 병원은 500명의 전문의 중 10-15%를 미국 현지에서 공급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의사 연봉 50만불, 한국의사 15만불을 주고, 500병상 규모의 병원 신출비용이 6천억원을 상회하며, 진료비는 국내병원의 5배 정도로 논의되고 있으며, 관리·운영은 철저하게 미국식으로 하겠다고 한다.
이렇듯 미국식 의료체계는 미국과 똑같이, 한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엄청나게 폭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비 폭등은 환자본인부담금의 상승으로,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의 고갈로 귀결되며 지금도 모자라기만 한 보험혜택이 더 작아지는 것을 뜻한다. 국내법을 정비해 영리병원이 허용되고, 영리병원들은 건강보험과의 계약을 거부하며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진료수가도 자율적으로 책정하고 민간의료보험과 계약을 맺으려 할 것이다. 한국 보건의료제도에서 그나마 공공성을 담보하는 규제인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와 ‘건강보험의무가입제’를 폐지하라는 주장은 건강보험 가입환자보다 민간보험 가입환자들을 위한 병원만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혹시라도 미국식 의료제도에 기반해서 ‘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주장에 솔깃하다면, 그야말로 허구임을 상기하자. 위에서 말했듯이, 철저히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보험자본과 병원자본은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이고 이 와중에 늘어나는 것은 제대로 된 일자리보다 비정규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이로 인해 질적으로 떨어지게 될 의료서비스 뿐이다. 한미 FTA가 요구하는 미국식 보건의료체계는 결국 의료비를 폭등시키면서도 국민의 건강은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양산으로 노동자의 기본권마저 위협하고 만다. 누가 이 최악의 현실을 감당할 것인가?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이라는 짝패 괴물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기업을 포함한 비의료인도 자유롭게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운영할 수 있다. 의사들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초반부터 의사들이 임-노동관계에 편입되어 고소득 노동자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민간보험과 공급자 네트워크가 통합된 미국식 보험제도(HMO)가 시장을 지배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민간보험에 잘 보여야 의사들도 먹고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을 통한 의료시설 자본투자 비용조달 방식도 합법화된다. 기존 병원들도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면, 자본시장을 통해 의료시설에 대한 자본투자비용을 보다 쉽게 조달할 수 있다. 현재 재원조달이 쉽지 않은 대학병원과 일부 대형병원들이 이 경로를 통해 규모를 확장하고 고급화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소규모 단과 전문병원들의 경우에도 영리병원을 통해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이다. 더구나 금융계 입장에서는 영리병원 설립 합법화가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이건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개업자금 대출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금은 복지부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병원들을 평가하지만, 앞으로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그 병원의 역량과 서비스 질을 논하는 시대로 변화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필연적으로 민간보험이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물론, 초기에는 민간보험과 건강보험이 경쟁하는 체제가 되겠지만, 전문가들은 보험회사와 서비스 공급자가 결합된 미국식 관리의료(managed care)가 도입되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들 말한다. 예를 들면, 삼성생명과 전국적 삼성의료원 네트워크가 결합된 것과 같은 형태를 상상해보자. 이들 네트워크에는 삼성의료원에서부터 전국에 소재한 의원의 일부까지 모두 포함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개인가입뿐만 아니라 소속직장을 통한 단체가입도 포함된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내가 가입된 보험과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병원을 이용할 때 보험적용을 못 받는 건 물론이다.
괴물을 처단하는 우리의 저항
협상 마지막 날, 한미FTA협상이 결렬되었다던 소식은 모두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가 약제비 절감정책인 일명 ‘포지티브리스트’정책을 끝까지 포기 못한다 했고,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결렬됐다던 협상은 사실은 합의된 것으로 판명난 것이다. 연합뉴스를 통해 폭로된 이 소식을 복지부는 부정하고, 외교통상부는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생쇼도 이런 생쇼가 없고 뒤통수도 정말 연달아 치고 있는 한국정부다.
한미FTA라는 괴물이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짝패괴물을 불러오고 이 괴물들이 노동자민중의 건강권을 잡아먹고 생존을 노리고 있다는 말은 유치하다며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의료비폭등, 비정규직 양산, 고용불안 등 국민들의 희생이 뻔히 예상되는 이 국면에서 한국정부와 관료, 경찰들이 보이는 행태는 영화 <괴물>의 그것과 빼다 박은 듯하다. 송강호로 분했던 박강두 가족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저항했듯이, 우리들의 저항도 다시금 정비하고 재조직되어야 한다. “끝장을 봐야 한다”던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의 저항 또한 끝장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건강과 목숨이 끝장날 밖에 없지 않은가.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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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 병원노동자희망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