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농민 단결하여 수입개방 막아내자!”
20여 년 전 철원에서 농민회를 시작할 때 서울에서 집회를 하면 외치던 구호였다. 그 천만이었던 농민들의 숫자가 요즘은 3백 4십만이란다. 20여 년 세월에 이미 6백만 명이 훨씬 넘는 농민들이 구조조정 되었고 정리해고 되었다.
그들은 정든 고향땅을 버리고 도시로 이주하여 저 비대해진 수도권 공화국을 건설해 내었고,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여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버리고 떠난 것은 정든 땅과 고향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니고 있던 생명의 고귀함도 함께 버리고 간 것 같은 생각이 늘 마음 속에 맴돌고 있다.
지난 가을 내가 살고 있는 철원에서도 농약 한 모금에 자신의 고귀한 삶을 버리고 떠난 농민들이 다섯 명이 넘는 걸로 기억하고, 올해 봄 농사를 짓기 위해 농기구를 다루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농민이 또한 다섯 명쯤 인걸로 기억한다. 무엇이 이들 농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수입개방이라는 파고를 넘어 힘들게 투쟁하던 농민들에게 듣도 보도 못한 우루과이 라운드, WTO, 한미 FTA 등이 날로 농민들의 삶을 옭아 매어오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더 이상의 구조조정도 정리해고도 농민에겐 무의미한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죽음뿐인 걸....
우리는 모두 땅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생명을 잉태하고 가꾸고 사랑하는 농민들이 더 이상 살아 갈수 없을 만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마지막 남은 사형선고와 같은 한미 FTA가 과연 농민만의 문제인가?
“조상님 제사상에 수입쌀이 웬 말인가?”라고 외치던 구호가 이젠 조상님의 젯상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를 만들어야할 자식들의 먹거리를 책임지지 못할 형편에 이르렀다. 옛날부터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놈들은 치도곤을 당하고도 시원찮았는데, 이젠 그 먹을 것을 가지고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단다.
우리 지역 철원에서 몇 년 전, 정부양곡보관창고에 우리 쌀은 한 톨도 없고, 수입쌀만 가득한 그 창고를 개방하라는 투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창고에 가득 차 있는 수입쌀에 치는 농약에 정부에서 인정하는 독극물 취급 인가를 가진 자만이 취급할 수 있다는 독극물을 사용하는걸 보았다.
그 수입쌀은 쥐도 벌레도 먹지 않은, 죽은 먹거리였다. 그 독극물에 쩔어있는 수입쌀을 가공하여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군납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먹이고, 학교급식용으로 아이들에게 먹이는 걸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된 먹거리를 먹고서 병이 생겨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할 것이고, 차라리 농약 한 모금에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농민들이 또 얼마나 늘어날까? 그 농민들의 자식인 노동자들은 또한 어떠할까? 이 땅에 노동자, 농민의 삶이 이럴진데 민족의 장래는 또한 어떠할까?
우리 농민들은 더 이상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
마지막 남은 사형선고와 같은 한미 FTA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농민의 삶 뿐만 아니라, 민족의 어머니로서 민족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중대한 역할을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민족의 생명줄은 끊어지고 말 것을....
우리 농민들에겐 행복해질 권리는 없는 것일까? 더 이상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농민이 없는 세상은 오지 않을까? 농기구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면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긴 오는 것일까?
농민의 삶을 노동자가 이해해주고 노동자의 삶을 농민이 이해하려 할 때, 분명 행복한 삶을 바라는 사람들이 편안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이젠 농민들의 구조조정도 정리해고도 다 끝났다.
이제 농민들에게 마지막 남은 사형선고 만큼은 꼭 막아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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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철희/철원군농민회 쌀 사업단장,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