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더운 날씨였습니다. 햇볕이 뜨거워서 자취방이 마치 찜질방처럼 후덥지근한 날들의 연속이었지요. 드디어 대학생활의 마지막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름방학은 2006 매듭과 함께 시작하였지요. 나의 평소 일상과는 아주 다른 매듭학생들과의 만남, 매듭이라는 공간과의 만남으로 뜨거운 여름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매듭의 내용부터가 나에게는 신선한 것들이었습니다. 인권놀이, HIV 감염인과의 만남, 성매매 여성관련 강연, 원자력 발전소 고리 1호기 수명연장반대와 같은 내용들은 평소 접해보기 어려운 내용들이었지요. ‘관심이 없었다’라고 하면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감동시킨 것은 이러한 내용들이 아니라 일정을 수행하는 동안에 매듭 구성원들이 각 일정에 대해 사전 논의를 하고, 토론을 하며,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강제성 없는 생활규약
예전에 농활을 갔을 때 생활규약을 미리 정했었습니다. ‘마을 어른들께 인사하기’‘어르신들 앞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기’‘누워있지 말기’ 등의 규약들이 있었는데 규약이란 것이 강제성을 띈 것이어서 지키지 않게 되면 괜히 동료 농활대원들에게 미안해지거나 누군가가 지키지 않게 되면 괜히 짜증이 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이런 규약들을 정할 때 왜 저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의가 없이 규약이 정해지곤 했었습니다. 2006 매듭에서는 생활규약을 첫 날 조별 토론을 통해 조별로 규약을 정하기도 하고, 전체 규약을 토론을 통해 만들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매듭의 생활규약들이란 게 너무나도 생소했습니다. ‘성역할 구분하지 않기’,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언행하지 않기’,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게 되면 상처받았다고 행동으로 표현하기’, 등은 한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규약들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이러한 생활규약들이 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매듭 구성원들에게 언급하였으나 오히려 과거 강제성 있었던 규약보다 더욱 더 잘 지켜진 것이었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진짜 자기 소개하기
보통 자기 소개할 때에는 ‘○○대학교 ○○학과 ○학년 홍길동’이라고 소개합니다. 나도 다른 학생들과 만나게 되면 ‘부산의대 본과 4학년 김대호입니다.’라고 소개를 하죠. 하지만 2006 매듭에서는 그렇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이렇게 불러달라고 먼저 이야기하고, 자신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였지요. 아무래도 학년과 나이가 공개가 되면 그 사이에 권력관계가 존재하게 되어 토론하거나 발표할 때도 권력관계에 따라 고학년 또는 나이 많은 사람의 의견이 존중시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만 매듭에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를 제외하고는(나이도 제일 많았고, 실제로 겉모습도 역시나 많아 보였답니다. 그냥 짐작으로 ‘고학년이겠구나. 나이가 많겠구나.’ 하고 있었더군요.) 서로의 나이나 학년을 몰랐답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왔는지 정도만 알았을까? 아마도 이러한 분위기가 일정이 끝날 때마다 지칠 줄 모르는 토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기획단에서 토론을 마치자고 하면 10분만 토론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습니다.)
즐거운 소통하기
매듭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주로 노동보건 활동의 기조에 따라 평소 보건의료활동 또는 노동보건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채식주의자, 여성주의자, 생태주의자들도 있었지요. 나는 그러한 관점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고, 생각도 못해본 내용들이라 생소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과 이야기 할 때 소통이 어렵지 않겠나 싶었는데 기우였습니다. 서로들 자기 생각들을 말하는데에 주저함이 없어서 자기는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을 들었습니다. 매듭 일정 속에 들어있는 내용자체가 워낙 자기화되지 않는 내용들이라 구체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약간은 관념적인 주장들이 오고가긴 했어도 서로의 생각을 듣고, 새롭게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데 무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활하다가 토론하다가 소통 중에 부딪히는 일이 있게 되면 그것을 순조롭게 풀어나가는 장치들이 자발적인 생활 규약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공간속에 자유롭게 드나들었지요.
새로운 시도
원자력 발전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반대를 위한 집회를 고리 (주)한국수력원자력발전 앞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집회 진행을 매듭학생들이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전날 학생들끼리 이 집회를 어떻게 할까 고민 좀 했습니다. 기존의 민중의례부터 시작하는 집회의 형식을 뒤집어보자는 발칙한(^_^;) 생각을 했습니다. 매듭학생들은 학습지 노조, 하이텍 연대 집회를 하면서 주체적인 집회를 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나봅니다. 우선은 우리가 왜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하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했지요.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는 자본에 의한 반대의 의미인지,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 때문인지,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생태를 말살하는 원자력을 반대하는 건지를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일단 피곤하고 긴 토론 끝에 공통분모는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반대’로 정리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매듭학생들의 공통된 결과들이 얻어진 후에는 우리가 만드는 집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집회는 어떤 것이어야 하고,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만들어봤습니다. 산과 들과 바다와 땅의 생명체들을 위한 묵념, 그런 생명체들의 연대발언(일종의 역할극 형식을 가져온 연대발언)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를 팔뚝질하며 부르기, (주)한수원측에서 매듭학생들에게 나눠준 수건을 묶어 ‘수명 3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떠나라’ 라는 의미로 서른 번의 줄넘기를 하고, 정문 앞에 던지고 왔지요.
2006 매듭 이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학습지 노조와의 간담회와 농성장에서의 하룻밤, 하이텍 알씨디 코리아의 5년에 걸친 장기간의 투쟁, 금속사업장에서의 현장체험,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노동자들의 1년간의 복직투쟁들을 간접적으로 지켜봤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지점들이 다양하긴 하지만 뭔가 감동을 주는 부분들이 저 뿐만 아니라 다들 있었나봅니다. 싸이월드 일촌맺기가 어찌나 활발하던지요, 이후에 ‘실타레’라고 하는 병원의 노동환경을 고민해보는 모임이 매듭에서 간호대학 학생들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뜨거운 책읽기 ‘부글부글(Bookle-Bookle)이란 모임도 만들어졌네요. 노동현장과의 일상적 연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저도 매듭활동 이후에 주변에서 활동하는 모습이나 말하기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더군요.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소통하는지, 어떻게 동의를 구하는지, 어떻게 배려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나 할까요? 호호~~^_^;
매듭과 즐거운 소통하실 분들~~ club.cyworld.com/2006knot 로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