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상보험을 둘러싼 그동안의 투쟁은 근본적인 관점의 대립이었다. 결국 노동자를 위한 제도인가, 아니면 자본가를 위한 제도인가가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산재보험이 시작된 역사를 놓고 볼 때, 산재보험은 자본가들의 위험분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본가를 위한 보험이다. 노동자에게 산재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길이지만, 철저히 자본가들의 제도가 되어버린 산재보험을 노동자 계급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본다.
현재 산재보상보험 제도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크게 산재승인과정에서의 문제, 요양과정에서의 문제, 재활복귀의 문제로 나누어 쟁점들을 열거하고, 그 대안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1. 산재 승인, 인정기준 관련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직업병에 대한 인정기준이 있다. 이러이러한 기준에 해당되면, 직업병으로 인정한다는 열거방식(list system)을 채택하고 있다. 사회보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독일, 프랑스도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고, 북유럽의 나라들도 이러한 열거방식과 포괄적 방식(그외 직업관련 질환을 포괄적으로 적용)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열거방식이 주를 이루는 이유는 직업병 인정에서 행정적 편이를 위한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기준에 해당되면, 특별한 조사를 하지 않고 바로 직업병이 인정 된다. 상당수의 직업병이 이에 해당이 되므로, 큰 논란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도 어찌보면, 이러한 열거방식(근로기준법, 산재보상보험법)과 포괄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인정되고 있는 직업병의 범위는 독일이나 프랑스보다는 훨씬 넓어 북유럽 나라들 정도의 수준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아직 상당수의 나라에서 요통, 뇌혈관질환 등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직업병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승인의 장벽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인정기준 자체의 문제보다는 승인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왜곡된 절차와 보장성이 낮은 건강보험 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또한 노동강도의 문제와 장시간노동을 강요하는 임금체계 등 기존 질병을 악화시키는 직업적인 요인을 방치하여 발생하는 직업병에 대한 인정기준의 갈등구조가 존재한다.
(1) 사업주 날인
산재노동자는 사업주 날인을 반드시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업주 날인을 받지 않은 산재노동자는 공단에 의해 더 많은 조사를 받게되고, 이로인해 인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게 된다. 이는 질병의 중증화와 연결된다. 또한 해고를 각오하고 산재신청을 해야 되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업주 날인이라는 제도는 산재환자의 조기 치료를 가로막는 가장 처음의 장벽이 되고 있다.
또한 산재보험은 사회보장의 하나로 사업주의 작은 과실은 묻지 않고, 사업주는 노동자의 잘못이 있더라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이러한 합의를 깨고 사업주로부터 노동자의 산재여부를 일차적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도구로 작동하는 사업주 날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근무여부만을 확인해주기 위해 만들어놓은 제도가 결국에는 업무관련성을 사업주가 인정하는 것으로 더 나아가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어 원천적인 신청 자체를 막고, 근로복지공단은 여기에 부응해 사업주 날인이 없으면 마치 업무관련성이 약한 것처럼 추가정밀 조사를 하고 사업주 날인이 있으면 업무관련성이 높은 것처럼 쉽게 넘어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업주 날인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더불어 건강보험과 같이 병원에서 산재신청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 사업주 날인은 당연히 불필요한 절차가 될 것이다.
(2) 자문의 제도
현재의 자문의 제도는 산재노동자의 제대로 된 보장을 도와주고 자문하는 기능보다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규정에 부합하여 산재노동자의 사회보장을 억압하는 기능을 주로 수행한다.
산재승인과 치료의 연장에 대한 판단은 주치의에게 맡기고, 현재의 자문의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다만, 적절한 치료방향에 대한 조언 및 요양기관에 대한 정도관리 및 기술지원 등의 목적이라면 충분히 자문의사의 기능이 존재한다고 본다.
(3) 치료의 지연문제 -선보상 후판정 도입
산재보험도 건강보험에서 적용하는 일반질환처럼 선보상(아프면 먼저 치료하는)이 해결되어야 한다. 직업병이 인정되기까지 짧게는 1달, 길게는 6개월 이상씩 걸리는 지금의 산재보험 절차는 질병 치료의 기본 원칙인 조기치료를 방해하고, 질병의 중증화를 가져와 사회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가져오는 제도이다. 그러나 선보상이 이루어지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은 휴업급여 등이 보장되지 않는 등 보장성이 낮고, 본인부담금의 비율이 높은 건강보험과 관련이 있다.
현재의 산재보험제도 아래에서 선보상을 한다는 것은 논란의 시기를 보상판정 전에서 보상판정후로 미뤄놓는 것이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즉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산재보험 수준으로 높아져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선보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물론 재해성 사고나 일부 확실한 직업병의 경우, 제도적으로 이를 보장해준다면,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간편한 절차를 통해 질병의 조기치료가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보자!
1. 재해, 일부 직업병에 대한 선보상 후판정 제도 도입
2.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3. 병원에서 산재보상신청
4. 사업주 날인 폐지
5. 자문의제도 폐지, 자문의 역할 변경(산재노동자 치료방법 자문, 재활지도 등)
2. 요양과정의 문제
요양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은 승인의 과정 못지않은 중요한 문제이다. 요양과정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가장 부각이 되고 있는 문제이고, 산재노동자를 도덕적해이의 주요 대상으로 내몰고 있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요양과정 문제에 있어서의 핵심은 제대로된 치료 시스템과 내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에는 조기 치료가 가능하게하는 것과 의료, 심리, 그리고 사회적재활 등 다양하고 포괄적인 요양이 포함되어야 한다.
(1) 휴업급여의 적절성
그동안 휴업급여는 요양 장기화의 주요 원인으로 공격받아왔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평균임금의 70%지급 외에 30%를 보존해 주고 있다. 기타 개인보험 가입 등을 해놓았다면, 일을 하고 있을때 보다 더 많은 돈을 받게 되고, 이러한 현상이 장기요양을 부추긴다고 보는 것이다. 일부나라에서는 휴업급여에 대하여 100%를 지급하기도 하고 60%를 지급하는 나라도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휴업급여를 100%지급하는 일부나라는 요양기간이 우리보다 훨씬 길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산재요양기간이 길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는 치료가 조기에 이루어지지 않아 중증상태에서 치료를 시작해 치료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며, 둘째는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고, 꼭 필요한 재활과 작업복귀를 위한 의학적, 사회적, 정신적 재활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일부 산재환자의 경우, 휴업급여 및 개인보험을 타기위해 질병상태를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과도한 보험급여를 지급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명백한 사기행위이며, 제대로된 제도 정착을 위해 이러한 행위는 없어져야한다. 그러나 산재노동자에게만, 도덕적 해이의 짐을 덮어씌우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요양장기화의 원인은 적절한 요양 및 재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이며, 이를 이용해 병원 수익을 올리려하는 병원자본의 협잡 때문이다.
(2) 요양기관의 부적격, 환자에 대한 방치
“공황장애로 산재요양을 받고 있던 산재환자들은 요양승인이 된 후 18개월이 지나서야, 공황장애에 가장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인지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깨관절 수술을 한 어느 산재환자는 2달간 입원치료를 했다. 걸어다닐 수 있는데 왜 입원을 했는지 본인도 이유를 모른다. 이후 허리 통증이 악화되어, 요즈음은 요통치료도 병행하고 있다. 18개월동안 요추부 추간판 탈출증으로 요양을 받던 어느 산재환자는 의사로부터 운동하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어떻게 어떤 운동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요양기관을 2번 바꿨는데, 이번에 입원한 병원에서는 2달 입원기간동안 의사얼굴을 입원할 때 딱 한번 봤다.”
모든 산재노동자는 가능한 빨리 치료하고, 건강한 몸으로 빨리 작업장에 돌아가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제대로 된 치료를 하고 있는 요양기관은 거의 없다. 설사 몇가지 수술적 방법으로 치료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후 신체재활 및 사회, 심리 재활등의 과정은 개별적 노력에 맡기고 있다.
산재요양기관의 질을 높이고, 이들의 도덕적해이를 감시, 지도할 수 있는 역할을 근로복지공단이 해야 한다. 이를 수행하지 않고, 산재노동자의 도덕적해이를 논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3) 산재환자 요양지원 프로그램 부재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수행하는 “찾아가는 서비스”는 외국의 case manager(환례 관리자)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원래 산재환자가 요양을 시작하면, 가장 적절한 요양기관을 찾아주고, 그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고, 산재환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요양과 재활, 복귀의 과정을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그러나 현재 찾아가는 서비스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환자 감시 업무이다. 환자가 병실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자는지...
제대로된 치료방향을 알려주고 지원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산재환자를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죄인 취급 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이다.
(4) 요양기관의 전원, 산재요양기관 강제지정
현재 환자들은 산재요양기관을 옮기고자 할때 여러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대병원들은 산재요양기관이 아니다. 심지어 국내 최고의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도 산재요양기관이 아니다. 강제지정제를 시행하고 있는 건강보험 요양기관처럼 산재요양기관 역시 강제 지정을 해야 한다. 또한 산재노동자의 치료 선택권 보장을 위해 치료를 위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절차의 문제를 간소화하여 전원이 손쉽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보자!
1. 산재요양기관 질 향상을 위한 노력, 부실기관 퇴출
2. 산재환자 치료지원 제도 개선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
3. 산재요양기관 강제 지정
4. 주요 직업병에 대한 치료지침 마련 (요양기관 질향상을 위한 방안, 강제종결을 위한 지침 경계)
3. 재활, 작업복귀 문제
현재 산재환자에게 재활 및 치료과정으로서 작업복귀라는 개념은 없다. 어제까지는 산재환자고, 오늘부터는 12시간 맞교대하는 노동자다. 신체, 사회, 정신 재활은 요양의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작업복귀를 위한 프로그램 과정에서 직업재활도 논의되어야 한다.
(1) 재활급여
재활급여를 신설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노사정위 안에도 재활급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현재 의료재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의료재활의 내용에 원직장 복귀를 전제로 한 심리적 재활 혹은 치료, 신체적 재활, 치료적 작업복귀와 같은 구체적 급여내용이 제시되어야 한다. 또한 재활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 안이 없다.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는 것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의료재활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재활의 내용을 마련하고 이를 제안해야 한다.
(2) 치료적 작업복귀
작업복귀의 핵심적인 프로그램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치료적 작업복귀이다. 달리 표현하면 단계적 작업복귀이다. 예를들어 충분한 신체적 재활의 과정을 밟은 노동자의 경우, 신체적 재활의 과정중에 심리적, 사회적 재활과 함께, 치료 및 재활의 과정으로 단계적으로 작업을 수행한다. 이때 작업장은 치료의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첫주에는 2시간 근무만 하고, 2-3주에는 4시간, 마지막 4주때는 8시간 근무를 하며,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건강상태와 업무수행의 적합성을 평가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치료 과정으로서 휴업급여를 지급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운영 평가할 수 있는 전문기관을 육성한다.
(3) 재활 및 복귀의 인프라
현재, 재활 및 작업복귀를 제대로 수행할 만한 인력 및 기관이 많지 않다. 이러한 인력 및 기관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4) 원직장 복귀
재활 및 작업복귀의 전제는 자신이 일했던 원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가능한 자신이 일했던 공정에 계속 일을 해도 문제가 없도록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 재활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복귀해야 하고, 아무리 재활이 잘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전의 작업내용을 수행할 수 없을때는 어떠한 시설을 보조받거나, 작업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통해 이전 작업내용을 수행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 이도 어려울 경우, 동일한 직장내의 다른 업무로 작업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때 임금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장애보상을 통해 이를 보존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보자!
1. 신체재활, 심리재활, 사회적 재활, 직업재활 등이 포함된 재활의 구체적 내용을 명시하고 보장한다.
2. 치료적 작업복귀, 단계적 작업복귀를 보장한다.
3. 재활 복귀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라.
4. 원직장 복귀를 의무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