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제주도에서는 한미FTA 4차 본 협상이 개최되었다. “평화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도. 하지만 “평화의 섬” 제주도와 “한미FTA”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사이임에 분명했다. 한미FTA 4차 본 협상 기간 동안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 아니라 "경찰의 섬", "계엄의 섬"이었다.
한미FTA 협상 기간 내내 제주도에는 50명 중의 1명이 경찰이었다. 협상장인 중문단지 부근을 중심으로 제주도를 시커멓게 뒤덮어버린 공권력의 숲은 시위대는 물론이고 제주시민 모두에게 커다란 재앙 그 자체였다. 고귀하신 협상단으로부터 시위대를 철저하게 격리시키려는 공권력의 과잉되고 무모한 욕망은 무차별적인 검문검색과 도로 통제는 물론이고 시위대에 대한 살인적인 폭력으로 표출됐다.
그리 길지 않은 5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 살벌한 공권력의 숲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별 볼일 없는 협상, 그러나 너무나도 위험한 죽음의 거래
한미FTA 4차 본 협상은 결과적으로 향후 본격적인 협상을 위한 예비단계 또는 지나가는 협상의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6차 협상을 내년 1월에 진행하기로 공식화하면서, 계속적으로 강조해왔던 한미FTA의 연내 타결에 대한 실질적인 실패를 인정하였다. 북핵 위기 등의 분위기 속에서 바짝 엎드린 한국측 협상단의 비굴함에도 불구하고 한미FTA 협상이 표면적으로는 일정 정도 교착 상태에 빠진 셈이다.
이번 4차 본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관세 양허안의 골격 마련”, “서비스/투자 유보안의 내용 및 상호 관심분야 명확화”, “가지치기 작업을 통해 5차 협상부터 핵심 쟁점 타결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 마련” 등을 주요 협상 목표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를 위해 이미 상품 분야 전반에 걸쳐 적극적인 개방안을 제출해 미국의 비위를 맞추었고, 협상 전체의 진전과 동시에 섬유 분야에서의 원사규정(얀 포워드)과 반덤핑 조항 등에서 구색 맞추기식 성과를 거둘 계획이었다.
한국측 협상단의 어설프고 비굴한 전략은 4차 본 협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미국측 협상단은 한국측의 기대와 달리 모든 협상에서 “공산품-농산물 연계” 전략을 내세우며 “미국 상품양허 vs 한국 농산물 양허”라는 구도를 형성하여 협상의 주도권을 쥐었다. 농산물 전반에 대한 완전 개방이라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나아가 미국측은 공기업(EBS, 한국방송광고공사, 인천공항공사, 부산항만공사, 한국항공공사), 도박서비스, 온라인콘텐츠 등에서 과도한 개방 요구를 서슴없이 보탬으로써, 한미FTA가 얼마나 굴욕적인 협상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미국측 협상단은 미국내 중간선거, TPA 법안 연장 등의 맥락에서 향후 5차, 6차 협상에 있어서도 자국내 여론과 국회를 의식하여 더욱 더 “강공협상”의 태도로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4차 협상의 표면적인 교착 상태가 아니라 현재의 협상 흐름 속에서는 정상적인 협상을 통한 한미FTA 체결이 불가능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이 비상식적인 한미FTA 체결을 맹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이 현재의 태도를 고집한다면, 실질적인 쟁점이라 할 수 있는 비관세장벽의 문제, 정치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쟁점 등이 고위급간의 밀실협상을 통해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한미FTA 체결은 협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권을 위한 “일방적인 퍼주기”, “비민주적인 협상독재”에 다름 아니다.
공권력의 숲을 가로지른 한미FTA 4차 본 협상 저지 투쟁
한편, 웬디 커틀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측 수석대표는 협상 기간 중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위대 때문에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둘러 볼 수 없어 아쉽다. 호텔에서 룸서비스만 받고 있어 심심하다”고 했다. 양국의 협상단이 특급 호텔에서 한국과 미국의 민중을 판돈삼아 죽음의 거래를 하며 심심해(?)하는 동안, 제주도 곳곳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시위대의 저지 투쟁이 협상기간 내내 진행되었다.
한미FTA 저지 제주도민운동본부와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원정투쟁단을 중심으로 진행된 한미FTA 4차 본 협상 저지 투쟁은 공권력의 가공할만한 폭력과 불법 연행 속에서 매일 매일 새벽부터 새벽까지 협상장과 경찰서 그리고 제주도 시내 곳곳을 오가며 계속되었다.
협상 하루 전인 22일 제주공항의 대표단 기자회견과 제주도 경찰청 앞의 규탄집회로 시작된 이번 투쟁은 협상 첫 날인 23일 아침부터 본격적인 협상 저지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협상장 진입 투쟁은 거대한 공권력의 폭력을 뚫고 협상장인 신라호텔 앞까지 농민 120여명이 진입하여 규탄 시위를 하는 등 거세게 진행되었다. 같은 날 오후 제주도 컨벤션센터 앞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는 제주도민과 원정투쟁단이 함께 협상장 진입 투쟁을 전개하며 한미FTA에 대한 민중들의 거대한 분노를 표출하였다. 공권력은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들과 시멘트 블록 등을 겹겹이 쌓아 시위대의 협상장 진입을 막으려 했으나, 한미FTA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는 공권력의 상상력을 뛰어 넘어 버렸다. 시위대는 컨테이너 박스 너머의 협상장 쪽으로 물로켓을 쏘아 올리며 항의했고, 협상장 앞 바다에서는 어민들의 선박시위가 진행되었다. 동시에 수많은 시위대들은 협상장 진입을 위해 산을 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특히 농민들이 “No! FTA"라는 깃발을 손에 든 채 바다로 뛰어 들어, 방파제와 방파제 사이를 헤엄쳐 건너 중문 해수욕장 진입에 성공하면서 협상장 저지 투쟁은 정점에 이르렀다. 협상장 근처 해안가 곳곳에서 시위대들이 협상장 쪽 바닷가로 헤엄치고, 담벼락을 넘으며 진입하기 시작했고, 당황한 공권력의 무리한 진압과 연행이 시작되었다. 열정적인 투쟁과 잔혹한 폭력 진압이 뒤섞이면서 협상장 일대는 너무나 처절하였고, 그 처절함의 반복은 어느 순간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웠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제주도의 하늘, 바다 그리고 석양 속에서 노란색 깃발을 들고 바다를 헤치며 협상장 쪽으로 나아가는 농민들... 그 어떤 사진이나 영화보다도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의 애달프고 처절한 삶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제주도 협상 저지 투쟁은 둘째 날도 식을 줄을 몰랐다. 오전부터 원정투쟁단은 중문단지 천제연 폭포 앞에서 컨테이너를 밧줄로 끌어내면서 적극적인 협상장 진입 투쟁을 진행하였고, 공권력은 그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놀라울 정도의 폭력 진압을 시작했다. 물대포로 시작된 진압은 결국 시위대의 방송 차량을 사람이 탄 채로 때려 부셨고,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 몸으로 한미FTA의 반대를 외치던 시위대들을 방패와 곤봉으로 집단 구타했다. 그 순간에서만 8명의 시위대가 병원으로 후송을 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차별적인 공격 진압에 부상을 당했다. 신라호텔 앞까지 들어가 현수막을 펼치고, 한미FTA 반대를 외치던 시위대를 과잉 진압하여 연행했고, 폭력 진압과 평화시위를 요구하며 항의하던 사람들에게 또 다시 폭력으로 대답했다.
공권력의 살인적인 폭력은 계속되었지만 제주도민과 원정투쟁단의 한미FTA 반대 투쟁은 마지막 날 보고대회로 마무리될 때까지 지속적이고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제주농민들의 차량 및 농기계 시위, 경찰 폭력과 불법 연행에 항의하는 경찰서 앞 규탄 집회, 제주도 곳곳의 선전전, 서귀포 도심의 삼보일배, 매일 저녁 촛불 집회, 민주노총의 삭발 투쟁과 소비자들의 대규모 집회 등 제주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 속에서 한미FTA 반대 투쟁은 그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제주도 협상 저지 투쟁에서 시위대들이 가장 많이 남긴 말은 “제주도에서 한미FTA 저지 투쟁의 희망을 보았다!”이다. 제주도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 특히 제주도 운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은 장기화되고 있는 한미FTA 투쟁에 새로운 열기를 불어 넣었다.
물론 제주도 협상 저지 투쟁이 많은 한계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의 투쟁은 협상 자체를 중단시킬 정도로 진화하지 못했으며, 한미FTA 반대 운동의 사회적 확산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구체화 역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한미FTA 반대 운동이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운동 주체들의 높은 참여와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올 초 급작스럽게 한미FTA 협상 개시가 일방적으로 선언되었을 때의 당혹함을 회상한다면, 당시 팽배했던 패배주의적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한미FTA 반대 운동은 한미FTA의 저지를 향해 한 발자국씩 전진하고 있다.
또한 한미FTA 반대 운동이 한미FTA 저지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폭력에 전면적으로 저항하고 대안적인 사회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점에서, 한미FTA 저지 투쟁은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 정권과 자본은 한미FTA의 연내 타결을 포기했지만, 우리는 한미FTA를 올 해 안에 반드시 폐기처분해야 할 것이다. 11월 노동자 총파업, 민중 총궐기를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