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얘기 들어보니깐 회사가 먼저 약속을 위반한 거더라구”
바로 얼마 전 헤드라인으로 때려대던 현대차 성과급 파업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연일 귀족노조의 배부른 욕심이라고 떠들어대는 언론보도에 대해 ‘다른뉴스’를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뉴스에 대한 내용보다는 어디서 ‘다른뉴스’를 듣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물론 남편은 학창시절에 과학생회장도 역임했었고 나름 열린생각도 가지고 있는데 졸업이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마 내 생각에는 ‘다른뉴스’는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곳’에서만 한정적으로 소통되는 내용이라고 비좁게 생각되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 소식통은 점심식사 후 업무로 짜증나는 나른한 오후 회사 동료들끼리 세상사 돌아가는 근심걱정 속 가십거리 중 하나였다.
정말 활동의 중심에서 열정적이었는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던가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전 나는 전업활동을 하는 활동가였다. 웬 사설이 긴가 싶겠지만 활동견습생이 아니라 ‘활동가’였어야 했다는 생각에 붙이는 말이다.
어쨌거나 일년이 넘게 휴직하고 귀여운 딸아이의 엄마이자 알콩달콩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내로서 나는 정말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아줌마들 틈에서 밥 잘 먹고 수다스러운 언니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 기간을 나는 휴가 또는 그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평범한 삶 살기(그렇다고 비범 특출이란게 아니고) 어쩌면 그냥 이렇게 살고 싶었던 나를 중심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도란도란 살아가기 그렇지만 또 다른 이름으로는 ‘공백’ ‘단절’ 돌이킬 수 없거나 혹은 현실의 갖가지 제약을 인정하고 한계속에서 싸우거나 비좁혀져야 할 처지....아니 최소한 그러한 결정을 조만간 내려야 하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머릿속을 비벼가며 보내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한 가정을 꾸려가는 것에는 그간 우리가 이야기 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와 모순 그로인한 아픔들을 고스란히 내재하고 있다. 이 무슨 당연하고 또 “그래~내 말이” 할 만큼 우리가 늘 해 왔던 바로 그 이야기인데 나는 이제야 새삼 그렇게 보이니 그렇지 아니하길 바랬건만 참으로 경직되고 협소한 활동을 사고해 왔었나보다. 현대자동차에 대한 ‘다른뉴스’는 나의 경직된 사고에서 봤을 때 '어떻게...?‘ 라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니깐 동지가 주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자고 말했던 나의 말은 그냥 말이 된 허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상화시킨 모습은 사실 나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왔다. 그러니 이제 혼자가 아니라 엄마가 된 여성활동가로서 그 ‘다른조건’을 대상화시켜 ‘활동’과 ‘달라진 나의 삶’을 저울질 하며 선택하려고만 해왔던 것이다. 아이가 잠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조금 생각해볼 여유가 생겨도 이내 머릿속이 비빔밥처럼 범벅이 되어 ‘아..골치야..담번에 좀 더 차분히 생각해보자’며 미루고 미루어 왔다. 그러니 새로운 삶의 시작이 아니라 포기하거나 희생시켜야 할 것으로 보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 왔던 것이다.
이러한 내안의 단절! 우리의 활동이 현실에 발딪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살아가면서 실천해 가는 진짜 일상활동은 어떻게 마련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나의 활동을 달라진 조건 위에서 새롭게 복원 시켜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나자 ‘활동’이라는 것도 좀 더 새롭게 보이고 무겁게 나를 눌러왔던 지난 활동의 자책과 무거움도 조금 사라져 부드러워 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몸 바쳐 혼신을 다해야 할 것 같은 그렇지만 어쩌면 ‘나’는 사라져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신해 나를 소진시켜버리고, 어쩔 땐 민중을 계몽시켜야 할 얼치기 전위활동가로 전념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과 책임은 주변에 전가시키는 자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다짐해 본다.
여러면에서 심신의 안정과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진작 했어야 했는데 미련스럽게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외적인 조건에 의해 이제야 겨우 시작된 고민이 앞으로 나의 새로운 삶과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격리시키고 있는 생각과 활동. 한계를 두고 있는 나에 반해 오히려 그것을 제기하고 지원해 주는 남편의 격려에 늘 감사하면서 앞으로 펼쳐나갈 또 다른 삶을 스스로에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