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 들썩? 글쎄...
2007년이 밝았다. 2007년은 3년마다 실시하기로 ‘결정’ 되어 있는 유해요인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해이다. 필자는 최근 병원일로 만나는 사업장의 관리자들에게는 ‘올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처음 유해요인조사가 시행되었던 2004년의 혼란을 잊지 않고 있는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미리 미리 준비하고, 예산 계획도 제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반면, 노동보건운동 진영내의 술렁임은 적은 것 같다. 노동보건운동 단체들의 고민들은 살짝 엿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현장의 고민을 살피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근골격계 직업병의 규모가 근로복지공단의 발표처럼 실제로 줄어서일까? 아니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작업장의 노동강도가 완화되고, 작업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근골격계 직업병의 규모가 줄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노동강도가 완화되거나 작업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따라서 2007년 유해요인조사 대응에 대한 고민은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뀌지 않은 현장을 보여주는 조직 사업으로서의 유해요인조사
2004년 유해요인조사를 시행하고 많은 결과들이 쏟아졌다. 대공장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전문가들한테 의뢰를 하기도 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공동 조사단을 구성해서 조사를 하기도 했고,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사업장을 조사하기도 하였고, 미조직 사업장의 경우에는 관리자가 11개 부담 작업을 표시하는 수준에서 정리하기도 하였다.
조사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다양한 수준의 개선안이 제출되고 보고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보고’ 이후의 과정에 대한 평가이다. 유해요인조사와 관련된 법률에 근거하면 조사 이후에는 작업환경개선과 의학적 조치와 같은 사업주의 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한 사업주들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조치와 개선에 대해 사업주를 강제하고 조사의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운동진영의 노력도 적었다.
2004년 유해요인 조사는 노동강도와 인간공학적 요인, 그리고 현장 노동자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듣는데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대응을 했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조사는 조사 이후의 활동을 평가하고, 변화되지 않은 혹은 오히려 더 악화된 현장의 상황을 오롯이 드러내고, 이후 개선과 실천을 위한 일상 활동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이 개선된 게 하나도 없으니 신규 설비나 공정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하자는 사측의 도발에는 정기유해요인조사의 의미를 상기 시키고 오히려 ‘수시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2007년 정기 유해요인 조사의 내용은 전체 공정에 대한 재조사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다만 조사의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공학적 평가가 중심이 아니라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와 소규모 토론을 통한 문제 나누기를 내용의 핵심으로 가져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전 공정과 노동자에 대해서 실시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작업환경이 변한 게 없어도 매년 작업환경측정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정기유해요인조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 동안 방치되어왔던 ‘수시 유해요인조사’와 의학적 조치 및 작업환경개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작업환경과 오히려 강화된 노동강도, 그리고 통증이 심해진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고 이러한 불만과 상황을 가지고 현장을 조직할 수 있는 사업으로서 유해요인조사를 자리매김해야 한다.
개별 현장의 담을 뛰어 넘는 유해요인조사
유해요인조사의 내용으로서 전체 공정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난 다음의 질문은 “누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전문가들이 대리하는 것은 형식상의 한계뿐만이 아니라 내용상의 한계가 있으며, 특히 이후의 개선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지속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2004년 이후의 과정에서 이미 확인 하였다.
따라서 현장 노동자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여전히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새로이 완성되고 있는 ‘산별’의 구조를 활용한 개별 현장의 담장을 뛰어넘는 노안활동가 조직 사업으로서 유해요인조사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4년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지역 노안 활동가들의 재조직 틀로서의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하였고 이는 조직적 성과를 남겼다. 문제는 이후 3년의 과정 속에서 노동조합 임원이 바뀌고, 조건이 바뀌면서 다시 개별화되고 흩어졌다는 사실이다.
2004년의 성과를 되살려야 한다. 더군다나 일부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산별의 틀이 완성되어가는 2007년에는 개별 사업장을 뛰어넘는 일상적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조직이 필요하다. 이의 중요한 계기로서 유해요인조사를 상정하고 ‘조사’ 자체뿐만이 아니라 이후의 작업환경 개선과 의학적 조치를 일상적으로 점검하고 사측을 강제할 만한 ‘구조’로서의 노안활동가 단위를 구성해야 한다.
‘조사단’이라는 한시적인 구조의 한계를 뛰어넘은 지역의 일상적 노안활동가 단위로서의 ‘지역 실천단'을 구성하고 이들의 활동시간 보장을 위한 투쟁과 역할에 대한 고민과 나누기, 조직을 시작해야 한다.
사내관리프로그램의 현실 폭로
2003년의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을 거치며 제도화된 2004년의 유해요인조사는 대공장을 중심으로 사내에서 진행되는 의학적 예방관리프로그램으로 수렴되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은 근골격계 인정기준 및 요양지침을 통해 승인과 요양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칼을 겨누었고 도덕적 해이로 노동자들을 밀어 붙이면서 산재보험 운영의 효율성을 꾀했다. 그 결과 승인의 벽은 높아졌고,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복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노동부의 산재보험을 통한 근골격계 승인 건수가 줄었다. 노동부는 ‘예방관리프로그램의 성과’로 근골격계 직업병이 감소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문제는 예방관리프로그램 때문에 실제로 예방이 되어서 준 것이 아니라 사내치료,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산재가 은폐되고 있기 때문에 줄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유해요인조사는 실행되고 있는 예방관리프로그램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상자료를 분석하여 은폐되고 있는 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사내 물리치료실이나 운동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픈 것을 참아가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실제 의학적 관리프로그램이 노동자들의 병을 치료해주고 건강하게 일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 내는지를 묻고 확인해야 한다.
확장을 꾀하는 유해요인조사
사실 2004년의 유해요인조사는 금속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금속을 제외한 제조업, 사무직, 서비스업, 공공 부문 등에 대한 노동보건운동 차원의 대응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의 극복을 위한 단초를 마련해야한다.
먼저, 기 조직되어 있는 총연맹의 노동안전보건위원회 구조를 활용하여 각 업종에 맞는 유해요인조사의 지침이 작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존재하고 있는 11개 근골격계 부담작업의 허구를 드러내고 현장에 부족한 노안활동가를 구성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노동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부담 작업의 개선이 아니라 11개 부담 작업의 폐기를 목표로 한 공동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그저 전문가에게 혹은 관리자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장의 문제를 아주 적더라도 확인하고 개선하는 한편 노동보건활동에 대한 현장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수준의 개입 방법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해요인조사의 내용과 영역을 금속을 중심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3년 만의 기회로 만들기 위하여
사실 2007년의 유해요인조사는 최근까지 실시가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였다. 경총에서 적극적으로 유해요인조사 폐기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총은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폐기를 주장해왔으며 실제로 ‘폐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일단, 2007년까지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올해가 마지막 유해요인조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따라서, 2007년의 유해요인조사는 폐기를 위한 자본의 공격을 막아내고 집단요양투쟁의 성과인 유해요인조사를 일상적 노동보건 현장 활동을 위한 구조로서 자리매김해야 하는 시기이다. 여기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투쟁의 성과를 고스란히 사장시키게 될 것이다.
전 공정에 대해 현장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하여 현장 분위기의 재반전을 꾀하고, 3년간 은폐되어 왔던 근골격계 직업병 환자들을 밝혀냄으로써 근로복지공단의 각종 지침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사내 프로그램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노사협조주의적 또는 전문주의적 관리의 틀을 깨고, 지역 공동 실천단의 구성을 통해 지속적인 지역 활동을 모색하고, 업종의 확장을 통해 내용적 확장과 주체 확장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유해요인조사만 잘 한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지금의 노동보건운동의 역량 속에서 제안된 것들을 다 소화하기도 힘든 일이다. 특히 올해는 산재보험법 개악 투쟁만으로도 벅찬 한 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해요인 조사를 3년에 한 번씩 하는 의례적인 행사가 아닌 근골격계 직업병과 노동강도라는 노동자의 일상을 개선할 수 있는 일상활동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은 지금의 조건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다. 문제는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우리의 기획과 실천의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