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위기론과 함께 노동운동의 위기극복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산별노조이다.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노동자정당과 산별노조의 양 날개론을 펴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분명한 사실은 산별노조가 단순한 노조형태를 넘어 하나의 희망으로 군림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별노조는 정말 희망일까. 또 우리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다 진전시킬 수 있는 유력한 형식일까.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란, 그리고 산별 노조로 탈출은 가능한지
1987년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노동조합 설립에 이어 1998년 말 IMF경제위기까지 한국사회 노동조합은 기업별노조가 중심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공장,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임금인상, 단체협약 갱신은 하나의 사회적 지표를 형성했으며 전체 노동조합의 임금수준, 후생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다 IMF경제위기를 전후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급속한 환경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노동유연화는 노동자들의 고용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되고 제도적으로 정리해고․근로자파견제 등이 법제화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동유연화에 맞서 당시 현대자동차노조, 만도기계노조, 서울지하철노조 등 정리해고반대를 외치며 파업투쟁을 전개하였지만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정리해고는 현실에 안착화 되어 금융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 등으로 악용되었다. 한편, 노동운동 위기의 징후는 고용불안․구조조정만이 아니었다.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하게 된 비정규직의 계속된 증가도 또 다른 위기의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이처럼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의 변화와 고용불안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유연화정책은 갈수록 노동조합을 막다른 길목으로 몰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노동조합위기론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위기논쟁과 더불어 위기를 극복할 대안마련에 분주하게 되었는데 산별노조가 하나의 대안으로 노동운동진영에서 적극 추진되었던 것이다.
산별 노조가 대안인가?
산별노조는 노조조직형태 가운데 하나로 동일한 산업 내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한다. 산별노조의 장점은 비정규노동자, 미조직노동자들을 대거 조직할 수 있는 것으로 외국의 사례를 보면 미국의 경우 애초 AFL(미국노동총동맹)이라는 전국적인 직종별 노조가 존재했으나 1935년 대공황이후 CIO(산별노조협의회)가 건설되면서 그 동안 미조직대상이었던 비숙련노동자들을 대거 조직, 조직률을 배 이상 끌어올린 경험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산업화가 시작되고 산별노조가 만들어진 대부분의 나라에서의 경험이었다. 산별노조의 또 다른 장점은 단체협약의 적용에 있어 기업별노조는 단체협약이 기업 내 노동자에게만 적용되지만 산별협약은 전 산업의 노동자에 적용될 수 있어 노동자의 보편적 이익에 복무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줄이고 단결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산별협약이 비정규직에게도 적용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비정규직을 고용해도 비용절감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정부는 무분별한 비정규직 고용의 남용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별노조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현장활동이 강화되지 않으면 기업내부 상황에 걸 맞는 세밀한 대응이 어렵고 상층중심의 교섭과 활동으로 현장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재정 및 인력, 권한이 중앙으로 집중화됨에 따라 상층 지도부가 관료화 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보다 100여전부터 산별노조를 시작한 외국의 경험을 통해 이미 충분히 확인되기도 하였다. 즉 산별노조는 경우에 따라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짧은 산별 노조와 긴 기업별 노조, 그리고 다시 산별 노조로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처음부터 기업별노조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의 역사는 일제 식민지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지시대의 노동조합 형태는 주로 직종을 중심으로 한 직종별노조였다. 당시 신문배달, 철공, 인쇄 등 전국적인 수준의 직종별노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는데, 주로 노동자에 대한 계몽운동적인 성격과 계급적인 노동운동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식민지상황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적인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산별노조로 출발하게 된 것은 1945년 독립이후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전평은 우리나라 최초로 16개로 이루어진 산별노조의 중앙조직이었다. 그러나 전평이 사회주의 성향 및 미군정에 반대하는 정치투쟁을 전개하면서 당시 미군정에 의해 해산되었고 이로 인해 짧은 산별노조시대는 막을 내리고 그 이후부터는 기업별노조체계가 안착되었다. 이 과정에서 1960년 박정희정권은 형식적인 산별체계를 보장하였지만 이름만 산별노조였지, 내용적으로는 기업별노조와 다름이 없었다. 1980년 새롭게 등장한 전두환은 아예 기업별노조를 명문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발생하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 이어 1995년 민주노총이 창립, 한국노총과 더불어 복수노총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전노협과 민주노총은 창립부터 산별노조를 준비하는 조직적 목표를 갖고 활동하게 되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다 1998년 외환위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노동유연화 및 2007년 복수노조도입 등 외부적인 환경변화에 직면하여 보다 적극적인 산별노조를 추진하게 되었다.
한국의 산별 노조는 어디까지 와 있나? 제대로 가고는 있는 것인가?
2006년도 12월 말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가입형태를 살펴보면 총 742개 노조 중에서 산별노조가 34곳으로, 조합원 수는 49만 6천397명으로 전체 조합원 수 대비 65%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최근 금속연맹 산하 주요 자동차산업 관련 노동조합이 대거 금속노조로의 산별전환을 완료함으로써 산별전환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최근 공공운수 4개 조직이 공공운수통합연맹에 이어 공공서비스노조와 운수노조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민주노총의 주요연맹인 금속, 공공이 산별노조로 전환됨에 따라 이에 앞으로 산별노조 전환속도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국노총의 산별전환은 민주노총에 비해 부진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노동부가 집계한 ‘조직현황’에 따르면, 한국노총 산하 산별노조는 금융과 택시, 체신, 전력, 담배인삼노조 등 5개 노조 16만,8,351명에 머물고 있으며 이는 전체 조합원 약 78만 명 대비 21.6%에 이르는 수치다. 그러나 금융노조와 택시노조를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산별노조라기보다는 단일기업으로 이루어진 노조라는 점에서 산별노조로써의 의미가 축소된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은 60년간의 기업별노조를 마감하고 산별노조시대를 향해 분주히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산별노조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 결론은 ‘아직은 아니다’이다. 모든 것은 차치하고 산별교섭의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단체교섭과 단체협약만을 살펴보더라도 전교조,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정도만이 정부 혹은 사용자단체와 단체교섭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의 경우 사용자단체와의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사용자들이 산별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단체협약 적용의 경우도 동일산업 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어야 함이 정당하지만 아직 어떠한 곳도 산별협약의 광범위한 적용을 쟁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진단
현실운동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확보는 어디까지 전진해 있을까. 사회적 인식으로는 노동자들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사용자들은 법규범을 원칙적으로 준수해야 하며, 정부는 노동력의 원활한 재생산과 생산력보전을 위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아프거나 다치면 충분히 치료해 주어야 하는 것이 보편타당한 것임에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2006년 우리 노동자는 한 해 동안 어김없이 3000여명이 현장에서 무참히 죽었다. 그것보다 더 많은, 미처 셀 수조차 없는 노동자들은 아파서 고통 받고 있다. 유일한 생존수단인 몸이 망가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해마다 빠짐없이 발생한다. 사용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조합, 노동보건단체들은 사용자를 압박하고 근로복지공단에 항의하고 노동부, 노사정위, 정부를 향해 노동자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하지만, 우리의 힘은 여전히 파편적이며 소위 ‘밀리고’있다. 그러는 동안 사용자들은 근골격계 대책을 만들었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인정기준, 요양업무관리규정, 과격집단민원 대응지침 등을 만들었다. 더불어 정부는 산재보험을 개악,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하려고 하고 있다.
산별 노조시대, 노동안전보건운동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산별노조는 제대로만 건설, 운영된다면 현실의 노동운동의 위기를 일정부분 보완할 수 있는 유력한 구조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산별노조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는 노동보건운동을 어떻게 준비하고 추진해야 할까.
우선, 산별노조는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광범위하게 조직할 수 있는 노조형태이다. 따라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노동자건강권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했던 영세비정규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쟁점화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시대 노동안전보건활동은 그 동안 정규직노동자에게 지나치게 쏠려 있었다면 이제는 정규직만이 아닌 비정규직, 영세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산별노조는 기본적으로 지역조직을 골간체계로 하는 형태로 개별기업의 지역연대를 넘어 강고한 지역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구조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의 지역체계를 잘 활용한다면 현재 취약한 부분인 중소사업장의 산재사고나 유해업무의 시정, 폭넓은 시민건강권 등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고 나아가 산별노조의 지역체계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를 통해 보다 강력한 문제제기 가능한 것이다.
셋째, 노동안전보건활동가의 체계적인 양성, 교육 및 이를 통한 중소규모 사업장의 지지․지원을 보다 강화할 수 있다. 현재 노동조합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유명무실하거나 취약한 상태로,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을 경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안정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산별노조의 경우 재정과 인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만큼,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보다 과감한 재정투여와 노안활동가재생산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중앙차원의 체계적인 노안활동가의 양성을 통해 현장까지 감시와 투쟁이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일반적으로 기업별노조체계에서는 유해환경이 있더라도 사측이 은폐하기 쉽고 노조가 투쟁을 하더라도 사회적 쟁점화에 실패하기 일쑤다. 산별노조의 경우 동일산업을 조직대상으로 하여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산업내의 유해한 작업환경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 개선방향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 따라서 산별노조시대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은 산재예방, 노동환경개선을 위한 정책연구 및 사회적 문제제기를 보다 활발하게 제기할 필요가 있다.
정작 중요한 것!
지금까지 기본적인 산별노조의 장단점, 우리나라 산별노조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산별노조시대에 걸 맞는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무엇인지를 대략 살펴보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산별노조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진행 중인 상태로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산별노조를 미리 경험한 나라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갈 뿐이다. 노동안전보건활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별노조가 제대로 기능하고 산별노조의 문제점인 현장의 공동화, 중앙의 관료화, 탈계급성 등을 극복한다면 노동안전보건활동 역시 보다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헤쳐모여식의 산별노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산별노조로는 공격받는 노동자건강권이 지켜질리 만무할 것이다. 이것이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는 산별노조에 대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정작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