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 맞교대 논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는 2.5톤 이상의 중대형 버스와 트럭, 특장차 등 상용차를 만들어 낸다. 이 중 버스부의 수출 물량이 늘어나자 회사는 주간 근무만 해오던 버스부 노동자들에게 주간 10시간, 야간 10시간의 맞교대 근무를 요구하고 나섰다. 생산속도를 올리고 잔업/특근으로 생산시간을 늘려도 모자라니 야간에도 공장을 가동하자는 말이었다.
2006년 5월, 이 문제에 대한 노사공동위원회가 꾸려졌다. 전주공장 노동조합은 ‘주야맞교대안은 절대 불가. 임금저하없는 노동조건으로 생산방식 변경’이라는 입장을 세웠다. 이를 기초로 10월 말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완전월급제를 전제로 한 주간연속2교대제’로 요구안을 확정했다.
이후 노사공동위에서는 노측 8시간 주간연속2교대안과 사측 10시간 주야맞교대안이 대립했다. 사측은 주야 맞교대 입장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 지역의 온갖 관변단체들과 보수 언론을 동원하여 노동조합을 압박했다. 그들은 신규채용을 늘려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양보하라며 자본의 앵무새 노릇에 나섰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해도 마찬가지로 신규채용이 늘어난다는 상식조차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자본의 노림수
12월 27일, 마침내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어이없게도 9시간 주야 맞교대안이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연내에 문제를 종결할 수밖에 없었으며, 비록 주야 맞교대를 수용했지만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노동시간 양보를 끌어내고, 월급제를 포기했지만 특근 보장과 교대근무 수당을 통해 임금을 보전했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정작 회사에서 양보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9시간 근무는 한낱 글귀에 지나지 않을 뿐, 자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 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지만 실제로는 잔업과 특근이 일상화 되어있는 현실 아닌가. 또한 이처럼 노동자들의 저항 없이 마음껏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는 토대가 바로 ‘기본급으로는 먹고 살 수 없는’ 임금 체계니, 그걸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성과급이건 수당이건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자본이다. 생산량이 늘면 그만큼 노동시간과 임금을 늘렸다가, 생산량이 줄면 또 그만큼 줄이는 것, 이것이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기본 아니었던가.
결국 수출 물량을 잔뜩 마련해 둔 현대자동차 자본으로서는 정취 노동시간을 얼마로 할지, 임금 보전을 위해 얼마를 내놓을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주야 맞교대를 도입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었다.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설비를 늘리기 보다는 기왕의 설비들을 한순간도 놀리지 않고 가동시키는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치를 댓가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누가 치르게 될까? 바로 교대근무를 하게 될 노동자들이다.
교대근무는 하루 주기의 리듬을 따라 변화하는 체온, 전해질의 균형, 호르몬 농도, 심혈관계 기능, 소화효소 분비, 혈액 성분, 근력, 각성도, 감정, 기억력 등을 교란시킨다. 천식, 협심증, 뇌경색, 심근경색, 간질 등 여러 질환들의 증상을 악화시키고, 각종 약물이나 독성물질에 대한 생리적 반응에 혼란을 초래한다.
그 결과 노동자는 수면장애, 위장병, 심혈관계 질환, 저체중아 출산이나 조산 등 숱한 문제들로 고통받는다. 기존 질환이 잘 치료되지 않고 악화되며, 수명은 평균 13년 단축된다. 만성적인 수면장애로 안전사고가 늘어나고,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가정과 사회 생활이 고립된다. 어떤 형태의 교대제도 안전하지 않다. ‘좋은’ 교대제란 없다. 특히 야간 노동을 포함하는 교대제는 말 그대로 백해무익하다. 오죽하면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야간노동을 하면서 건강을 해치지 않을 방법은 없다’라고 못박았겠는가.
문제의 성격
교대제를 통해 자본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일,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일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교대근무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 훼손을 수당 몇 푼과 바꿀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따라서 현대차 전주공장의 교대제 도입은 단순히 어떻게 근무 형태를 변경할 것인지를 협상할 문제가 아니라, 노동유연화를 관철시키기 위한 구조조정 싸움이다. 이윤에 눈먼 자본의 야간 노동 강요로 현장이 골병과 과로사의 지뢰밭으로 전락하느냐 마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다. 노동조합은 노동강도 강화를 막기 위해 물량 증가에 걸맞는 설비 투자와 인원 확충을 요구하고, 구조조정에 맞설 현장 실천력을 조직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길을 잃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대응은 노사공동위원회의 협상 테이블에서 머뭇거렸다. 협상기간 내내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총고용 보장’을 핵심으로 내걸었지만, 그 결과는 주야 맞교대 수용이었다. 이 잠정합의안은 55%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한달 만에 2차 잠정합의안이 나왔지만, 실천력을 조직하지 못한 협상에 힘이 실릴 리 만무했다. 200명 해외견학과 50만원 어치 상품권 지급이라는 떡고물을 얹어 10시간 주야 맞교대로 더 후퇴해버린 것이다. 조합원들은 더 높은 반대로(63%) 이를 부결시켰다.
이번 문제에 대응하면서 노동조합은 고용불안이라는 함정에 걸려 길을 잃었다. 과연 주야 맞교대를 수용하면서 합의안에 덧붙인 ‘고용보장 확약서’나 ‘물량보장 확약서’로 고용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윤에 혈안이 된 자본에게 확약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현대차 노사는 이미 2000년도에 ‘완전고용 합의서’를 체결해 두었지만 여전히 자본은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심야노동 철폐를 위한 단협도 유효한 상태지만, 주야 맞교대 강요를 서슴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지금 전주공장은 수년 동안 물량이 넘쳐나 쩔쩔매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용불안을 염려한다니, 물량이 늘어도 고용불안, 물량이 모자라도 고용불안, 도대체 노동자의 고용은 언제 안정된다는 말인가?
다시, 길 찾기
비록 노동조합이 고용불안과 협상 테이블 언저리에서 길을 잃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두 번의 합의안이 모두 부결되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금, 현대차 자본은 전주공장의 수출 물량을 중국으로 빼낼지 모른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머지 않아 이 문제를 놓고 2차전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라도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목표와 기준을 세워 또다시 ‘고용안정(을 써 넣은 종이조각)을 위해 모든 것 희생하기’라는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용은 합의서 쪼가리로 보장받을 수 없다. 협상력은 현장의 실천과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 한 키울 수 없다. 교대제 도입은 단순한 근무 형태 변경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노동유연화의 이빨과 발톱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싸움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