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이 42살이다.
사십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던가. 내게 불혹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가 염두에서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그 시기를 보냈다. 그렇게 보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30대 중반과 후반을 보낸 것이 된다.
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 느닷없이 목디스크가 찾아왔다. 어느 정도 치료 되는가 싶더니만 목디스크는 재발했고, 휴직(병가), 복직, 휴업(산재 인정), 복귀 등의 과정이 이제 만 6년 반이다.
내 인생에 있어 6년 반과 그 이전 35년은 뚜렷이 구분된다. 그 이전 35년은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실천덕목으로 알았고, 그렇게 살았다. 소속된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건강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는 격언을 몰랐었을까 마는 어려서부터 건강했고 여러가지 운동으로 건강이나 체력으로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에 일과 성취를 통한 인생만들기에 몰두했다. 깐깐하고 괴팍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들에게서 '정말 열심히 한다'는 칭찬과 신뢰를 받는 것은 작지 않은 기쁨이었다. 오랜 기간 그렇게 쌓은 내공이 반드시 결실을 볼 것이란 믿음까지 굳어져 갔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그런 상황을 오래 받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가 왔다.
목디스크 (경추 추간판탈출증)가 내게 찾아온 것이다.
목디스크의 통증은 처음엔 보름 정도 갔는데, 처음 며칠간의 통증은 톱에 어깻쭉지를 썰려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래도 결근 한 번 없이 근무를 했다. 곧 나아지겠지 하는 안이함과 무지 또는 확고한 근로자 의식으로 '극복'을 했다.
거의 통증을 느끼지 않고 생활할 만큼 호전되었다가 이런저런 사연이 연유가 되어 재발했고, 재발 후의 통증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재발 후에는 어깨와 목에 근막통증후군이 겹쳐졌다. 근막통증후군은 근육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에 근육이 달라 붙어 통증을 일으키는 증상이다. 인간의 몸은 크고 작은 근육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어느 한 부분이 원활하지 못하면 연쇄적으로 통증을 일으키며 계속 악화되어 간다. 적절한 치료가 없을 경우 갈수록 부위가 확대되고 통증은 심해진다. 사람의 진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한달에 20일 꼴로 밤낮없이 찾아오는 징그럽게 아픈 것을 어떻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짧게는 4~5일, 길게는 10일 이어지는 통증은 어깨와 목, 머리에 연결된 근육을 경직시키고 그에 따른 통증을 주었다. 심한 독감에 걸렸을 때 머리가 쪼개지는 느낌과 지독한 치통, 그리고 어깨와 목근육의 수축으로 인한 해당부위의 통증이 한꺼번에 몸을 감싸왔다.
병원에서 받는 약 말고도 '좀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진통제라고 알려진 것을 하룻밤새 16알까지 먹어보기도 했지만, 거의 도움이 되질 못했다. 그럴 때면 '좀 낫겠지' 하는 생각이 '끝이 보이지 않으니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변하기도 했다. 진을 빼는 통증에 지친 끝에 잠이 들고, 통증에 다시 잠이 깨고, 다시 통증에 시달리고....
심한 통증이 없는 몇 안되는 날들도 사는 게 쉬운 것이 결코 아니었다. 책 두 권의 무게도 들고 다니지 못한다. 배낭도 감당하지 못할 짐이다. 일상의 동작에서도 근육경직(쥐가 난 것과 같음)이 일어난다. 조금만 신경 쓰면 금새 피로해진다. 눈 뜨고 나서 20분이면 말할 수 없는 피로감에 시달린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통증으로 이어져 왔다. 보통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할인매장에 장보러 가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니지만 내게는 모험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이 뭐든지, 언제든지 아프다고 할 때 어느 누가 이해할까?
수술 후에야 통증은 좀 수그러들었다. 그래봐야 정도만 약해졌을 뿐이다. 간혹 심상찮은 증상이 있을 때면 아주 예민해진다. 한 번 아파봤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알게 49
된다. 불행하게도 내 몸의 병은 현대의학이 지워주지 못한다. '평생' 잘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게는 여섯 살 된 아이가 하나 있다. 아기 때부터 안아주는 것은 큰 맘을 먹어야 했다.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빠에게 아이는 여간해서는 안아달라고 하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 안아달라고 할 50
때 "아빠는 목과 어깨가 아파."라는 말을 하는 '믿지 못할 아빠'가 된다. 내 상황이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책임이 된 것이다.
조금만 서둘러도 피로감에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다. 보통의 건강한 사람에 비해 형편없이 집중 가능한 시간이 떨어진다. 나는 지금도 한 여름에도 찬물로 샤워하지 못한다. 한 여름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처음엔 좋지만, 1분쯤 가면 느끼는 ‘얼어붙는 느낌’ 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몇 년을 사는 동안 '착하게 살면 언젠가 반드시 복 받는다'는 말이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말 잘 듣고 열심히 일만 하다가, 버려지면 버려지는 것조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자본주의의 비정상적인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이 땅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과 선배들과 거의 전부의 사람들과 직장에서 전해준 그 말을 이제부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대신 '똑똑하게 살아야 복 받는다'는 말을 주변에 전한다. 우선 알아야 하고,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냉정하고 단호한 결정과 실천이 복(삶)을 지켜낼 것임을 알게 되었다.
구구절절 자잘한 것들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것은 이 땅에서 1년에 2천5백 명이 넘는 많은 노동자가 생명을 잃어가고, 무려 3만 명의 노동자가 신체의 손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과 그분들의 가족들이 흘리는 눈물의 뜻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노동자에게 건강이란 무엇일까? 건강 없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몸이 피로할 때 인간은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휴식을 취하면 회복된다. 그러나 더 심해지면 회복이 되질 않는다. 노동력이 떨어지고, 결국 상실되면 삶이 어찌될까?
지난 10년간 이 땅의 노동자는 사고성 재해와 누적성 재해에 점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신자유주의의 쓰나미가 이 땅을 아예 휩쓸어버릴 현재 상황에서 그동안 그나마 버텨준 자신의 몸, `소중한 몸`은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지킬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면 정말로 건강한 몸이라고 자부할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특히 지난 10년간 노동자의 몸은 삭아져왔다. 쓰나미를 '개인기'로 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사악한 자본과 함께 놀아나는 이 땅의 반민중적, 반역사적 파쇼정권은 산재법 개악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과 몸을 폐기하려 한다. 정권과 자본은 '당신’의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게다가 미국은 한미FTA를 통해 이 땅의 제도와 법체계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경제 전체의 궤멸적 재앙 속에서 노동자는 더 가혹한 노동과 산재사고 앞에 설 것이고, 지금도 열악하기만 한 산재제도 자체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우리는 산재제도가 노동자의 피가 굳어 만들어져 왔으며, 노동자의 몸이 불살라지며 그 재가 모여 하나하나 구축된 것임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한다.
노동자는 알려내야 한다. '안전한 노동'과 '제대로 된 치료'가 자본의 이윤에 앞선 것임을. 그리고 자본이 '조금 덜' 가져갈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존재에 대해 제대로 된 고민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노동자는 가족의 삶을 파괴할 노동을 하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일 뿐이다. 당하고 나서도 어쩔 줄 모르거나, 그 때서야 법과 제도에 대한 투쟁을 아쉬워할 '멍부'일 뿐이다.
" 왜 우리 애들이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애들 생각하면 ‘내가 강해져야지’ 하다가도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 뇌사 경찰관의 아내는 절규하듯 외쳤다.
나는 이 말을 정확히 이해한다. 아파 본 사람으로서 그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절규를 진심으로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가족의 삶을 지킬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이 땅 노동자를 지켜낼 유일한 희망이다.
피노키오는 더 이상 나무인형이 아니다.
<인간>이다.
나이 사십 불혹이 말하는 것처럼,
이제는 인간으로 흔들림 없이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