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7/4월/칼럼] 4월 단상

봄이 되었다는데 한동안 쌀쌀하다가 따뜻해 질려니 뿌연 황사로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호흡기 계통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짜증을 넘어 고통이다. 눈도 뻑뻑하니 앞이 흐리다. 기실 어디 꼭 황사 때문에 4월이 고통스럽고 흐리기만 한 걸까?

4월... 4․3제주 민중항쟁, 4․19혁명 돌이키고, 기념할 날은 많은데, 이날도 어느덧 노동자민중의 것이 아니라 소위 ‘자유평화개혁’ 세력의 것으로 넘어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관변 행사와 그들의 역사마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들이 그들의 정치 이해와 연관하여 역사를 편취하였다면, 거꾸로 우리는 질기고 우직하게 역사를 지키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어디 제대로 지키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이것뿐인가 마는 4월이 되었으니 노동안전보건운동 어쩌네 하는 필자의 처지에서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따지면 우리 운동 진영에서 어떤 달을 통째로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실천을 설정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수년째 이달 4월을 통으로 주제를 설정하고 실천을 도모하였다는 것은 그 동안의 운동의 성과임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투쟁의 실천이 활성화된다기 보다는 대중조직 차원에서 잊혀지거나, 형식화되거나, 아님 실무책임자 입장에서는 참 부담스러운 달이 되어가고 있다. 굳이 7월에서 4월로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이 옮겨진 이유가 한해 투쟁을 결의하고, 대중조직의 임단투와 맞물려 진행할 것을 의도한 것인데 말이다.

자본은 정말 끝임 없이 상징을 만들고 조작하여 노동자를 동원하고, 교육하고, 이를 통해 다시 확대 재생 하는데 우리는 상징조차 만들기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그나마 있는 상징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니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런데 통증만 호소하고 말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디 특정한 자만의 문제이겠는가? 통증을 해결할 주체는 바로 우리 아닌가.

그렇다면 4월이 그냥저냥 4월이 되어가는 것이 못 마땅하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대한 톱니를 움직이려면 그전에 작고 작은 톱니들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현재의 국면은 거대한 톱니가 멈추어있거나,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형상이다. 전국적인 무엇을 도모한다는 것이 말은 좋지만 허망하기 그지없고, 전국적인 집결의 파괴력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욱 더 단위 현장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실천과 도모가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몇 해동안 지긋지긋하게 단위 현장과 지역의 실천을 주장하고 있고, 지금 역시 주장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을 해결의 실마리로 삼지 않는다면 이도 저도 될 수 없다.

어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이라는 상징이 4월만 잘해보자고 하는 것이겠는가. 산재보험 개악은 코앞에 와 있고, 유해요인조사는 3년이 지나 다시금 우리 앞에 와 있고(그나마 근골투쟁의 성과를 자본은 끊임없이 조사자체를 없애거나, 있으나 마나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특수건강검진은 모두 엉터리라 도대체 그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목도하고 하고 있는 이 시기에 어디 4월만 잘해보자고 하는 것이겠는가 말이다.

4월을 맞이하여 화끈하지 못하더라도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는 계기를 마련해보자. 현장의 선전/선동을 점검하고, 지역의 공동 횡보를 위한 고민 자리를 만들어 보자. 작은 톱니마저 멈추면 기계는 멈출 수 밖에 없다.

자본의 횡포가 한 없을 것 같은 이시기 우리가 우리의 투쟁과 역사를 끝없이 상징하고 움켜 쥐어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때문에 오히려 더욱 더 기를 쓰고 지켜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의 철학 그리고 실천이 오롯이 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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