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7/5월 이러쿵저러쿵] 농촌에 봄은 오는가?


봄이 되면 싹이 오래 걸려 나오는 씨앗들을 순서대로 심습니다. 씨를 심다가 시간나는 짬짬이 망태를 어깨에 하나씩 메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오릅니다. 망태는 ‘망탱이’ 라고 하는데, 지금 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과 비슷하지만 볏짚으로 만들어 무척 가볍지요.

깊은 산을 오를 때면 산짐승들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지만, 바로 그래서 여럿이 함께 갑니다. 여럿이 있음으로 해서 서로 의지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오르지만, 산을 오른 후엔 제각각이 되어 산나물이니 약초니 약재들을 뜯고 캐고 합니다. 한참을 정신없이 뜯고 캐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때면 ‘개똥이 엄마~’하고 크게 부르고 ‘내 부르나~’하는 답이 메아리쳐오는 걸 듣습니다.

다시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다 허기가 져서 하늘을 보면 해가 중천을 넘어가고, 함께 갔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 먼저 부릅니다. 개똥엄니, 순덕엄니, 숙자엄니, 남숙엄니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는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에 모입니다. 세수도 하고,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물을 한모금 마시고 밥상을 폅니다.

점심 메뉴는 무얼까요? 까만 봉다리 아니면 라면 봉지 같은 재활용 봉투에 담은 밥 한덩어리, 그리고 고추장 한 숟가락이 싸가지고 온 전부입니다. 허나 이분들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보기엔 잡초로 밖에 안보이는 것들도 이분들 눈에는 모두 약초이고, 고추장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훌륭한 반찬입니다. 그리하야 이분들 점심식사는 산신령의 점심식사와도 같은 셈이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고생해서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쳐 도시로 내보내건만, 자식들은 현대판 노예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곡식 심고 나물 뜯고 약초 캐면서는 살아갈 수조차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은 놈들은 누구입니까.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이 가져온, 그리고 앞으로 가져올 변화로 인해 지금 우리 농촌은 암흑 속에서 대혼란을 겪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 글을 쓰며 돌이켜 보니 만만년 지켜온 먹거리 중 ‘쌀’을 뺀 곡식들 중 무엇 하나 심어먹을 수 없이 빼앗겼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군요. 제가 알고 있는 곡식들만 해도 밭벼, 밀, 보리, 옥수수, 콩, 팥, 조, 참깨, 들깨, 수수, 고구마, 감자 등등 수십 가지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수백 가지일 겁니다. 이 수많은 곡식들은 우리 건강을 지켜온 종합 영양제나 다름 없는데, 이걸 남의 손에 넘겨 주고 안전하게 우리의 건강을 지켜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네요.

평생을 땀흘려 자연에 순응하며 국민의 먹거리와 건강을 지켜온 농민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FTA 속에서 말입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 농민 박 남 길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