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비정규직, 늘어가는 비정규직
24살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굴삭기에 깔리는 사고로 죽었다. 두산메카텍의 사내 하청 노동자 두 명도 일하던 중 무너진 교량 상판에 깔려 사망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청소일을 하던 여성 노동자가 늘어난 업무량을 견디지 못해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 건설노동자들은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자본은 이런 죽음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노동 유연화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20일 노동부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시행령 개정안을 20일자로 입법예고하였다. 파견허용 업무가 종전 138개에서 187개로 확대되어 노동부 추산으로만 500만 명이 파견제의 대상이라고 한다. 1,500만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 파견 노동자인 끔찍한 현실이 눈앞에 당도한 것이다.
불안정 노동자는 사망률도 높고, 재해율도 높고, 병에 걸릴 확률도 높다. 비만도도 높고, 흡연율도 높고, 음주량도 많고 스트레스도 높다. 혈압도 높아지고, 허혈성 심질환도 많아지고, 근골격계 직업병도, 정신질환도 많다. 심지어는 이혼율도 높다고 한다.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 파견인, 전체 노동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병들어야 하는 걸까? 왜 불안정 노동자는 죽고, 다치고, 병드는 걸까?
사회적 배제, 문제의 시작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노동보건관련 법체계는 정규직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고용시장이 안정되어 있던 시기,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은 현재의 불안정한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 일례로 유해 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매년 받아야 하는 특수건강진단을 비정규 노동자는 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 사내하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고용주기가 건강검진 주기인 1년보다 짧아서 같은 장소에서 계속 같은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검진에서 누락되고 있다. 1998년 건강검진을 받은 2,077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중 다음해에도 검진을 받은 노동자는 62.5%인 1,298명이었으며 2000년까지 3개년 동안 전부 검진을 받은 노동자는 35.5%인 738명에 불과했다1).
비정규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의 특성을 살펴보면 고용형태별로는 파견·용역>일반·임시직>재택근로, 임시파트, 호출근로 순으로 가입비율이 낮다. 또한 파견·용역>임시직>특수고용(독립도급)은 시간이 흐를수록 적용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임시파트, 호출근로, 재택근로는 시간의 흐름과 관련 없는 들쑥날쑥한 변화양상을 보인다2).
문제는 불안정 노동자의 경우 이러한 법적인 배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재화와 서비스로부터의 배제, 사회적 생산으로부터의 배제(불법화)와 함께 사회적 소비가 어려운 경제적 배제를 함께 겪게 된다는 사실이다.
노동빈곤과 고용불안정, 문제의 심화
빈곤이 건강 불평등을 유발하는 주요원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최근, 노동시장에서의 고용불안정이 빈곤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2년도 보건사회연구원의 자활실태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 총소득이 최저생계비기준 미만이 절대빈곤율이 11.1%, 중위소득의 50%에 해당하는 상대빈곤이 13.8%로 나타났는데, 이중 비정규직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절대 빈곤가수의 42.6% 그리고 상대빈곤층의 46.5%가 비정규직가구였다. 반면, 정규직 가구는 2.7%만이 노동빈곤층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이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전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고용불안정이다. 고용불안정은 그 자체로 심리적 위험으로 작용한다. 영국의 결과를 보면 민영화 이전에도 민영화에 따른 고용불안(감)으로 노동자들의 심혈관계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부분적인 민영화를 경험한 경우에는 남아있는 노동자들이 다양한 질병에 걸리고 고용불안 속에서 만성 질병을 앓게 되고, 수면 양상에 변화가 생긴다3). 고용불안정은 매우 주요한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4).
빈곤과 불안정의 개별적인 효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빈곤과 고용불안정이 서로를 강화시키며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망라하여 98년 IMF이후 사회전체에 폭 넓게 퍼져있는 고용불안(감)과 저임금체계는 장시간 노동과 강화된 노동강도 속으로 ‘벌 수 있을 때 벌어야만 하는’ 노동자들을 몰아넣고 있고, 강화된 노동강도와 악화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은 신음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력의 약화, 문제의 주범
주지의 사실처럼 노동강도는 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과 정신질환과 같은 스트레스 관련성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그리고 작업시간의 증가는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이 늘어남으로써 물리적인 유해인자로 인한 건강 장해의 위험도 높아질 수 있고5), 병가율을 높이며6) 전반적 건강, 재해율, 당뇨와 심근경색, 고혈압과 임신지연, 조기분만 등의 위험과도 관련이 있었다7).
여기에 세계화가 동반하는 탈규제도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8). IMF 이후 규제완화라는 이름하에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들이 무시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직업병도 ‘규제’라는 이름으로 묶여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더 나아가 산재노동자를 자살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규제완화의 경향은 한미 FTA의 체결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와중에 진행되고 있는 노사협조주의적 관리 방식은 노동자들을 강화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자본의 경쟁력 혹은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고용 불안정은 당연한 조건으로 전제되고 노동자들은 당연하게도 병이 날 정도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리고 유연한 노동시장 속에서 병난 노동자는 건강한 노동자로 교체되면 그만이다. 노동자들이 현장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을 위한 부속으로 전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권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너무나 중요한 요구이다.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내는 순간 비정규 노동자들의 건강을 갉아 먹는 사회적 배제와 빈곤의 문제를 비롯하여 현장의 노동강도와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고 투쟁하는 것은 불안정 노동자를 얽어매고 있는 저임금과 고용 유연화라는 사슬을 끊고, 건강한 현장을 위한 현장 통제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건강의 문제는 노동자들의 불만과 불편을 발언하게 하고 이를 조직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건강권 투쟁은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산별의 입장에서도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는 주요한 조직화의 전술이자 현장 실천과 투쟁의 도구이다. 그렇다면 산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산별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불안정 노동자의 건강권 투쟁 이렇게 해보자.
먼저, 건강의 문제를 주요한 조직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접근의 통로를 열어야 한다. 지역별 공개 상담과 대중 선전을 조직해야 한다. 산업재해 문제에 대한 상담소와 건강 상담을 정기적으로 지역의 공단에 배치하고, 노동자들의 치료권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매달 2일로 정해져 있는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날에는 지역의 활동가들이 공단 내 거점을 잡고 퇴근 선전전과 건강 상담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서 미조직 노동자들과의 접점을 넓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로 해고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은 노동자에 대한 사례를 발굴하고 지역차원의 실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둘째, 비정규 사업장에 대한 일상적 현장 접근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야 한다. 특수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과 같은 일상적 산업안전서비스에서 배제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부의 관리 감독을 요구하고 실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 산별 차원에서 지역 감시단을 꾸려서 조직된 현장뿐만이 아니라 미조직 현장에서 건강검진과 작업환경측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하여 현장에 접근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야한다. 또한 비정규노동자들의 산재 불승인률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여 불승인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고 지역 병원에 산재로 나가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조직화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2007년에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활용하여 접근의 면적을 넓혀야 한다. 즉, 유해요인조사에 대한 지역적 대응의 방식과 체계를 결정하고 각 단사의 유해요인조사 결과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산별에서 요구하고 미조직 사업장의 경우에도 공동의 선전물이나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지역의 다양한 교육 사업을 배치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주제로 한 다양한 교육 과정을 산별에서 설치하고 관심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이 교육에 결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선전해내어야 한다. 또한 조직되어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도 이러한 교육과 선전에 결합함으로써 노동자성에 대한 문제나 차별 철폐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건강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노동자 건강의 문제가 개별의 문제가 아닌 작업장의 그리고 노자관계의 문제임을 인식시키고 조직의 발판을 다져야할 것이다.
넷째, 정규직이 산별로 조직되어 있는 단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산별 노조로 조직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직화 대응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청소 용역이나 식당 여성 노동자들부터 사내하청 및 파견 노동자들을 산별의 틀로 묶어내기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조직의 과정은 일상적 노안활동이나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와 같은 계기를 통해 더 가속화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화두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기 위한 ‘바닥’부터의 현장 활동의 전통을 복원해야 한다. 자본이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마당에 노동자 내부의 ‘갈라치기’는 노동과 자본간의 전선을 노동자 내부로 돌리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지금의 구조에 대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별에서는 이미 조직되어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일상적 건강권 투쟁을 조직해야한다. 작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비정규지회에서는 사내 식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세척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 피부화상을 일으키는 강 알칼리제제와 유산과 같은 생식독성 및 재생불량성 빈혈과 같은 골수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부틸셀루솔브라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 것이었다. 식당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고 선전하면서 조합원들과 대안을 토론하고 세척제를 바꾸기 위한 현장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조직된 비정규노조의 일상 활동으로서 조합원의 건강권을 지키는 한편, 건강권을 소재로 일상 활동을 시도한 의의가 있다.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안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건강검진과 작업환경측정,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의 일상적 체계를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현장 실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경우에는 공동 투쟁을 조직해볼 필요도 있다. 또한 산재가 발생했을 경우 인정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산재불승인 및 산재은폐에 대한 폭로와 선전을 강화해서 비정규노동자들이 치료받을 권리를 되찾을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을 바탕으로 조직율을 높이고 현장의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산별 시대, 불안정 노동자들의 건강권 투쟁으로 돌파구를 찾자.
2007년을 산별 원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운동의 영역에서 ‘지역’에 대한 관심이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공동체가 모색되고 산별 시대, 지역에서의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산별의 조직 목표와 사업의 핵심은 비정규, 영세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라고 한다. 문제는 핵심이라는 말만 있을 뿐, 핵심으로 만들기 위한 기획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를 가지고 작은 수준에서라도 지역의 공동 실천을 조직해야 한다. 어떠한 주제여도 상관없다. 산재 불승인 문제면 그것을 가지고, 지역 내 사망사고나 안전사고의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산재 환자들이 많으면 거기서부터, 부실 검진이 이루어지고 있으면 그 문제를 가지고, 이도 저도 아니면 일상적인 건강 상담을 통한 조직화라도 시도해야 한다. 정 아무런 조건이 안 되면 개악된 파견법과 기간제법에 대한 지역의 선전과 실천 사업부터 시작해야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불안정 노동자의 건강권의 문제는 사회적 배제와 노동빈곤, 고용불안정을 기반으로 강화된 노동강도와 약화된 현장 통제력이 구조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따라서 건강권에 대한 접근은 노동유연화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접근의 경로가 될 수 있으며, 또한 현장 노동자들의 현장에 대한 목소리를 자신의 몸과 건강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은 노동자 건강권을 매개로한 다양한 공동 활동, 공동 실천의 경험을 축적하고 이 속에서의 조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사회, 고용 이데올로기에 전 노동계급이 위축되어 있는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권을 매개로 다양한 수준의 접점들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수준의 접점을 지역에서부터 형성해 나갈 때, 여러 개의 점들이 모여 커다란 원을 만들듯 비정규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권은 확보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너진 현장을 살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산별의 의미는 지역 공동 실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산별 노조가 지역의 조직화와 실천에 애를 쓰지 않는다면 지금의 산별은 그저 형식에 불과할 뿐이며 오히려 지역 투쟁을 억누르는 또 하나의 관리기제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산별이 그저 보기 좋은 독사과가 되어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을 관리하는 상급단체로서 작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현장 실천의 전술이 필요하고 노동자 건강권은 매우 유력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이윤보다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우선 가치에 두고, 불안정 노동자들의 건강권 투쟁을 통해 현재의 답답한 노동운동에 파열구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