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노동부의 특수건강진단기관 일제점검 결과 발표 이후, 특수건강진단에 대한 각계의 입장과 행보가 가시화되고 있다.
가장 먼저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특수건강진단기관들이었다. 작년 이주노동자의 DMF 중독사망을 초래하여 특수건강진단 일제점검의 계기가 되었던 부산백병원은 일찌감치 부산지방노동청의 지정취소에 맞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2월 1일 부산백병원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것에 힘입어 2월 28일 전국의 특수건강진단기관들은 ‘합리성이 결여된 노동부의 조치에 대해 재검토하지 않으면 공동대처하겠다’라는 입장을 천명하였으며, 실제로 노동부의 조치에 맞선 행정소송 및 가처분 신청이 줄을 이었다.
민주노총은 2월 28일 금속노조의 긴급대응지침과 3월 6일 민주노총 기자회견, 3월 8일 민주노총 지침을 통해 ‘특수건강진단을 보류(중단)하고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 현장의견을 수렴, 조직’하는 것을 일차 대응 방향으로 삼았다. 그리고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전국의 노동안전보건운동단체들이 참여하는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공동사업추진위원회’(이하 공추위)는 이 문제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투쟁 결의를 모으기 위한 공개토론회를 4월 중에 열기로 결정하였다.
마침내 4월 10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특수건강진단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오간 주요 내용들을 주제에 따라 재구성하여 옮겨본다.
이슈1.
특수검진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특수검진은 집단적 건강 수준 평가여야”
임상혁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자문위원장(이하 민주노총 자문위)은 특수건강진단제도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우선 직업병을 확진하고 이에 따른 요양 등 보험급여를 받는 것은 집단 검진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며, 개인별로 특화된 개별 검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일부에서는 질병이 발견되었을 때 책임있게 의료 혜택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는 일반(성인병) 건강검진제도 개선으로 이루어질 문제라고 평했다. 따라서 특수건강진단이란 노동자 개인의 직업성 질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서 혹은 작업반의 집단적인 건강을 평가하고, 그에 따른 집단적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제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특수검진제도는 지금처럼 검진의 내용, 방법, 주기 등을 법으로 정해놓고 규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장별 건강문제에 따른 ‘맞춤형 평가’가 되어야 하며, 개별 노동자의 직업병 진단은 개별적으로 진단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의 검진처럼 유해 환경의 정도와 상관없이 검진의 내용, 방법, 검진의 주기가 정해져 있는 수혜적 검진이 아니라, 사업장의 문제를 발굴하는 검진이 되어야 한다. 검진의 내용, 방법, 검진의 주기 등이 사업장의 문제를 통해 정해져야 하며, 훨씬 다양한 건강 문제에 대해 훨씬 다양한 평가 방법을 사용되어야 한다. (중략) 직업병 진단 체계는 증상이 없을 때 집단 검진으로 조기 발견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초기 증상이 있을 때 개별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여 직업병이 조기에 진단되도록 하는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중소사업장에서는 불가능한 얘기” VS “정부가 주체로 나서야”
민주노총 자문위의 의견에 대해 강성규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보건국장(이하 산업안전공단)은 ‘집단 건강수준 평가’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불가능하며, 대다수의 노동자에게 특수검진은 사실상 개별적 건강평가일 수밖에 없다고 반박하였다.
“(민주노총의 주장은) 일면 옳은 측면이 있으나 우리나라 산업구조 전반을 고려하지 않고 민노총 소속의 대기업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생기는 주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근로자 건강을 평가하여 부서별로 공정별로 유해요인을 파악할 수 있는 규모의 집단, 즉 전체 사업장 수에 대한 300인 이상 대기업의 분율이 0.3%를 넘지 않는다. 95% 이상의 사업장에서 특정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근로자는 한두명을 넘지 않는다. 이들을 대상으로 ‘집단에 대한 건강 수준 평가’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집단적인 건강 수준 평가와 이에 따른 집단적 대책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산업안전공단의 견해는 집단적 관리는 특수건강진단이
아니라 사업장 내 보건관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여러 종류의 보건관리제도 중 하나인 건강진단에 대해 과도하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 자문위는 집단적 건강 평가를 중심으로 한 특수검진제도가 대기업만을 위해 구상된 것은 결코 아니며, 중소사업장에서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가 사업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답변했다.
“사업장별 보건관리 역시 실효성이 없는 주장”
한편 집단적인 관리는 특수검진이 아니라 사업장 내 보건관리주체들의 역할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산업안전공단의 의견에 대해 조성애 공공운수연맹 노동보건국장은 그 실효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산업안전공단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300인 이하 사업장이 전체의 95% 이상인데, 사내 보건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두지 않아도 되는 중소사업장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업장별 관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근로자 건강관리의 주체는 사업장내 보건관리자 또는 의사에게 돌리고, 건강진단은 보건관리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산업안전공단의 주장 역시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방안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산업안전공단은 ‘사업장 보건관리자를 꼭 의사가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업장 내부냐 외부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사업장 보건관리를 제대로 해야한다는 것’이라고 다소 애매한 대답으로 응수하였다.
이슈2.
특수검진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점 진단에는 전반적으로 동의”
민주노총 자문위는 현행 특수검진의 문제를 구조적인 문제와 기술적인 문제로 나누어 평가하였다.
먼저 구조적인 문제로는 (1)직업병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 (2)사후관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3)건강이상의 원인을 파악하여 해결방안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점, (4)보호되어야 할 취약계층의 노동자가 건강검진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기술적 문제로는 이번 노동부의 특검기관 일제점검 결과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무자격자에 의해, 정해진 방법을 무시하면서 검진을 수행하는 점, 사업주의 눈치를 보며 검진 결과를 왜곡하는 점, 검진비용을 할인해주는 덤핑 관행 등을 꼽으면서 특히 특검기관과 사업주의 유착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하였다.
여기에 토론자들은 전반적인 동의를 표명했다. 다만 한국노총, 산업안전공단, 노동부 등 일부 토론자들은 지금 특수건강진단이 아무런 의미 없는 관행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과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이런 진단이 자칫 ‘특수검진제도 무용론’으로 귀착되는 것을 경계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특히 노동부는 ‘우리나라 특수검진제도는 일본 것을 베껴와 제도는 꼭 같은데, 실제 특검으로 발견된 직업병의 규모는 일본이 훨씬 많다. 즉 지금의 특수검진제도는 직업병 조기진단이 충분히 가능한 제도지만 운영이 잘못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후안무치의 특수건강진단기관 성토”
토론회 현장에서는 특검제도의 문제점 중에서도 특히 사업을 실행하는 주체, 즉 특수건강진단기관들에 대해서는 매우 강력한 성토가 이어졌다. 가령 산업안전공단에서는 ‘명백한 법적 위반이나 산업의학적 오류에 대해서조차 반성은 고사하고 노동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는 기관의 산업의학 전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라면서 특검기관들의 뻔뻔함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막상 비난의 화살이 집중된 특수건강진단기관들의 대표적 기구인 한국특수건강진단협회은 이 토론회에 토론자로 정식 초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회 직전 불참을 선언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이슈3.
특수검진제도,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특검 개선을 위한 민주노총 자문위의 요구는 도입 기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누어 제시되었다.
* 지금 당장 실시하거나 1년 이내 도입되어야 할 개선안
① 노동자집단의 검진기관 선택 우선권
② 검진기관의 검진 계획서 및 검진결과 보고서 제출 의무화
③ 검진기관의 특검 결과 설명회 의무화
④ 사후관리 방안에 작업환경 개선 삽입
* 2년 이내 마련되어야 할 개선안
① 업종별 또는 사업장별 특성에 맞는 노동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건강 평가제도 마련
② 제 3자 지불방식의 도입
③ 특검기관의 질관리 실시
④ 특검기관의 기준 및 조건 등 확정
* 3년 이내 마련되어야 할 개선안
① 노동자 건강문제에 대한 감시체계 구축
② 노동자 건강문제에 대한 예방 및 보호체계 구축
③ 노동자 개인의 직업병 확진 제도 신설
토론자들은 특검제도의 문제점 진단에 대해 대체로 동의한 것처럼, 그 개선방향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개선 내용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특수검진 실행에 내실을 기하자”
현행 특수검진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검진 전 예비조사 및 검진 계획서 제출, 검진 후 집단적인 결과보고서 작성 및 설명회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노총 자문위의 견해였다. 한국노총 역시 같은 의견이었으며, 여기에 더하여 노동부가 검진 계획서 이행을 확인하고, 검진 결과를 자료화하여 노동자가 손쉽게 접하도록 할 것을 요구하였다. 산업의학회에서도 ‘사전준비(예방) 및 사후관리 방안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선이 이루어져야 특수건강진단제도가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하였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제출하지 않았다.
한편 민주노총 자문위는 사후관리내용 중 작업환경개선을 추가로 명시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산업안전공단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한편, 작업전환이 최선일 경우에는 이에 따른 손실을 법적으로 보전해주자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작업전환이라고 하기 전에 작업환경의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그리고 개선 후에 작업해도 좋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만일 작업전환이 최선의 방법이라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작업전환에 따른 손실보전을 해 주는 ‘작업전환보상’에 대한 규정을 검토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3자지불방식을 도입하자”
민주노총 자문위는 어떤 사업장에 있더라도 모든 노동자가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취약계층 노동자의 접근성 강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제3자 지불방식을 제안하였다.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조기홍 국장(이하 한국노총), 대한산업의학회 산업보건사업위원회 주영수 교수(이하 산업의학회), 그리고 노동부 환경안전팀 김정연 사무관(이하 노동부) 역시 제3자 지불방식을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단, 그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한국노총은 특수건강진단기관의 이윤추구를 막고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산업의학회는 검진기관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노동부는 사업주의 영향력을 줄이는 측면에서 각각 찬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자문위는 검진기관 선택권이 노동자에게 주어지지 않는 한, 지불방식을 어떻게 하더라도 사업주와 검진기관 사이의 유착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며, 다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지불방식 변경을 우선순위로 꼽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동자에게 검진기관 선택권을”
토론자들은 대부분 노동자의 검진기관 선택권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선택권의 수위 및 전제 조건에 대한 고민에는 토론자들마다 조금씩 편차를 보였다.
우선 민주노총 자문위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대한 법 규정에 ‘작업환경측정 및 건강진단에 관한 사항은 노동자대표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조항을 신설하여 선택권을 노동자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산업의학회에서는 ‘검진기관 선정 과정에 대한 참여’(현행 산안법 수준)를 언급하였을 뿐이었다. 한국노총도 산업의학회처럼 ‘선정 과정에 대한 참여’를 제안하였지만, 여기에 덧붙여 ‘노동조합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부가 검진기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특수검진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매년 실시하여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노동부는 사업주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기관 선정 과정을 비롯한 노동자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은 현실에서 중소사업장 및 미조직 노동자들의 경우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자문위에서는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지역별로 '안전보건대표자'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다시 노동부에서는 ‘노동자 선택권을 법으로 보장하더라도 사업주가 돈을 내는 한 사업주의 영향력을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비용 문제를 같이 바꾸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소규모 사업장 산업보건서비스는 지역 센터에서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특검기관과 사업주 사이의 유착을 끊자”
토론자들은 특검제도의 문제점 진단에 대해 대체로 동의한 것처럼, 그 개선방향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개선 내용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특검기관과 사업주의 유착, 혹은 사업주에 대한 특검기관의 눈치보기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끊어야 한다는 점에도 참석자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었다. 그 대안으로는 3자 지불방식의 도입 등 비용지불방식 개편, 노동자의 검진기관 선택권 부여, 노동부의 관리감독 및 처벌 강화 등이 제안, 토론되었다.
3자 지불방식과 노동자의 기관 선택권 각각에 대해서는 앞에서 소개한대로 여러 토론주체들이 조금씩 다른 이유를 들면서도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또한 사업주와 특검기관의 유착을 끊기 위해 무엇이 더 핵심인가에 대해 민주노총은 기관 선택권을, 노동부는 비용지불을 더 중요하게 꼽았지만, 결국 두가지 모두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한편 한국노총은 그동안 노동부가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부실검진 및 이를 요구한 사업주에 대한 지도감독을 소홀히 해왔다고 비판하면서, 앞으로 이를 철저히 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공공운수연맹 노동보건국장은 ‘기업활동규제완화에관한 특별조치법(이하 특조법) 때문에 현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라고 진단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노동부의 방안이 있는지를 추궁하였다. 그러나 노동부의 답변은 특조법 문제가 이 자리에서 다루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여 지금 대답하긴 어려우며, 아마도 노동부가 독자적으로 풀 수는 없을 것이므로 ‘노동계에서 풀어줘야 하지 않겠나’라는데 그쳤다.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이주노동자 등의 접근성을 높이자”
발제를 통해 민주노총 자문위는 ‘전기, 가스, 수도업의 10%를 제외하고 광업과 제조업 이외의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5%미만이 특수검진을 받고 있다’ 라면서 특히 산업재해가 많은 건설업에서 불과 2%의 노동자만이 특수검진을 받고 있는 현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검진 대상에서 계속 누락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한 민주노총 자문위의 대책은 ‘정부주도의 접근’으로, 3자 지불방식을 비롯하여 검진 실행과 사후관리를 정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을 늘리고 모기업의 연대책임을 강화하며, 필요시 민간검진기관이 아닌 공공기관에서 특수검진을 시행하는 것도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질의 응답 시간에 김병훈 금속 경남지부 지역금속지회 산안부장 역시 중소영세사업장의 안전보건은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직업병에 걸려도 원인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을 성토하면서 이에 대한 노동부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동부는 ‘중소영세사업장 문제는 노동부나 산업안전공단 정책의 중심이며, 최근 노동부는 산재기금에서 예방사업에 돈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여 중소영세사업장에 쓰려고 노력 중’이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사업주가 해야 할 일에 왜 공적 자금을 가져다 쓰냐는 반발이 있어 결과는 아직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질관리와 전문성 강화”
지금까지는 특검기관과 인력의 질 관리가 전무하였으며, 이번 노동부 일제점검이 부족하나마 사상 최초의 관리 시도였다는 진단에 많은 토론자들이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이번 일제점검 역시 단지 기술적 점검에 불과할 뿐, 보다 상세한 질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민주노총 자문위의 의견으로 제출되었다.
“물론 이런 기술적 점검도 필요하지만 검진기관이 특수검진의 원칙에 맞는 검진이 되었는지, 그리고 앞서 기술된 검진의 과정이 타당성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질관리는 주기적으로 반복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모든 검진기관의 점검이 어려울 경우 무작위로 검진기관을 선택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검진기관의 점검에 노동자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한국노총도 현행 특수건강진단기관의 정도관리가 청력, 진폐, 분석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마저도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총체적인 질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동부 역시 특검기관의 질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실력없는 인력들을 가려내어 축출할 공식적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아직 노동부 감독관들의 수준과 권한에 한계가 있어 실효성 있는 질 관리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신중론을 펼쳤다.
이와 관련하여 산업의학회에서는 질 관리란 능력이 되는 전문 학회에 맡겨야 한다면서 질 관리의 공식적 책임은 산업의학회에서 맡되, 평점이 미달인 인력에 대해서는 노동부에서 행정적 처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산업의학회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질 관리 방안은 각 기관들에 대하여 4~5개 정도 등급을 매기고 등급별 관리 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하되,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행정 담당자’와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전문가’를 함께 관리팀으로 구성하여 비리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산업의학회는 검진의사 자격 조건을 강화하여 산업의학 전문의 제도를 도입한 초기 경과 규정으로 임시 자격을 허용하였던 비 전문
의들에 대하여, 일정 기한을 두고 이들의 자격조건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검진에서 질병 유소견자나 의심자로 밝혀져 추가 정밀검사가 필요한 이들은 지역별로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으로 의뢰 또는 전원하도록 공식화하여 1, 2, 3차 의료기관들의 역할 분담, 즉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가야 하며, 그 재정은 산재보험에서 충당하자는 견해를 밝혔다.
이슈4.
무엇부터 해야 하나
“민주노총은 특검 거부 자제해 달라” VS.“노동부 역시 규탄받아 마땅하다”
산업안전공단은 이번 노동부의 행정조치가 유례없이 용감한 행동이었으며, 민주노총은 노동부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자칫 노동부를 고립시킬 수 있는 ‘특검거부’는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만일 이런 문제로 노동부의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면 ‘앞으로는 노동부도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려고 하는 용기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민주노총 자문위 역시 ‘노동부가 이번에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오해말기를 바란다’ 라고 동의를 표했다. 그러나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들은 ‘노동부에게 상이라도 주어야 하지 않는가. 특검거부를 자제해 달라’ 는 산업안전공단의 견해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쏟아내었다.
“특검을 거부하지 말라니, 이번에 걸리지 않은 1개 기관에 가서 검진을 받으라는 건가? 아니면 문제 있는 걸 알면서 그냥 받으라는 건가? 노동자의 절박함을 모르는 소리다. 노동부 개선대책을 기다리라 하는데, 이미 노동부는 특검기관들을 포함한 지난 3월 7일 회의를 끝으로 대충 수습하려 들지 않았는가. 각 지방노동청에서는 특검기관들의 '이행계획서'를 받고 대충 무마하려 하고, 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오늘 이 자리에서도 노동부는 행정소송을 치르느라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지 않았는가. 노동자보고 어쩌라는 거냐.” (금속노조 노동안전실)
“노동부와 특검기관 사이에도 유착관계가 있다고 본다. 지정취소해야 할 문제를 시정조치로 낮추지 않았나. 강력히 처벌했어야 한다. 현장에서는 특검 한두번 못받아도 상관없다고 할 만큼 신뢰가 떨어져있다. 결국 노동부가 제대로 못한 것 아닌가. 뭘 믿고 특검을 받으라는 건가.” (마창산추련)
이와 관련하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특검제도 개선은 지금의 문제를 제대로 확인하고 관련 주체들의 자성과 신뢰 회복부터 시작해야 한다’ 라고 의견을 밝히고 ‘지역별로 공동감사구조를 만들어 최소 지난 5년간의 특검 과정에 대해 다시 조사하자’라고 제안하였다.
“특검개선을 위한 TF를 꾸리자”
발제를 맡은 민주노총 자문위는 ‘현재 노동부는 특검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민주노총에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라면서, 이를 위해 약 3년의 시한을 가지는 가칭 ‘특검제도개선위원회’를 정부 안에 만들어 특검의 원칙과 내용을 만들어 낼 것을 노동부에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은 특별한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으며, 노동부 역시 지난 3월 13일 노동부 장관과 민주노총, 한국노총과의 면담을 통하여 TFT를 구성하기로 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그 약속을 한 뒤 벌써 한달이 지났는데 일정조차 잡고 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금속노조의 질책에 대해서는 뚜렷한 계획과 일정을 밝히지 못하고 ‘노동부 내부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 가능하면 빨리 추진하겠다’ 라는 정도로 답하여 참가자들의 빈축을 샀다.
“TFT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한편 특검개선을 위한 TFT에 관하여 이날 토론회에서 나타난 쟁점은 구성과 과제에 대한 것이었다. TFT의 구성에 대한 문제란 특수건강진단기관의 참여 여부에 대한 이견을 말하는데, 이는 단순히 누구를 참여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의 차원이 아니라 TFT가 무엇부터Focus | 포커스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특검기관 참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선 발제를 맡은 민주노총 자문위는 특수건강진단기관의 참여를 반대하다고 밝히고,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나 정말로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해당사자가 참여한다면 올바른 내용이 만들어지기 힘들다’라는 이유를 밝혔다. 앞서 소개한 대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가칭 ‘특검제도개선위원회’를 정부 안에 만들고 약 3년의 시한을 두고 운영하여, 특검의 원칙과 내용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한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특검에서 말하는 의학적 조치란 결국 현장을 바꾸기 위한 수단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산업안전공단을 비롯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의학적 조치라는 수단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라고 우려를 표명하면서 ‘지금은 특검의 전문성이나 질 관리에 대해 전문가들이 한발 앞서 고민해나갈 수 있으나, 현장 노동자들의 참여와 공유를 넓혀 이들이 주체로 서게 하려는 노력을 축적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대상화되고 말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맥락에서 특검기관들도 공식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TFT 참여를 막지 말자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노동자 참여란 무엇인가”
전체 토론 시간에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특검대책 TFT에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할 방안은 무엇인가?’라고 노동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해 노동부는 ‘현재 노동부 내 우리 부서에서 생각하는 주요 파트너쉽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다. 양대 노총의 담당자가 참여하면 “노동계가 참여했다”라고 보는 수준’이라고 답변하였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이날 제안된 특수검진제도 개선 방향에서 노동자 참여가 사후적이라는 문제를 지적하였다. 민주노총 자문위원이 참여한다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그 결과를 사후에 받아볼 뿐이며, 사전에 노동자의 요구와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없이 전문가들이 대리하는 참여는 하나마나가 아니겠냐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특검개선을 위한 TFT 역시, 민주노총 자문위원단이 참여하여 신속하게 개선안을 내놓는데 연연할 것이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장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요구를 모아내는 과정을 차분히 밟아갈 것을 요구했다.
“노동부는 TFT를 서둘러 구성하거나 빨리 해결하려 할 때가 아니다. 오늘 같은 토론회만 하더라도 노동부가 아니라 민주노총과 4월 공추위가 추진한 것 아닌가. 우리에게 인력이나 재정이 많아서 이런 자리를 연 게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노동부는 양대노총의 상층 담당자들을 만나는게 아니라, 현장에서 이런 저런 고민과 경험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의 견해를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몇년이 걸리더라도 좋다. 지역별로 쫓아다니면서 의견을 묻고, 큰 방향을 만든 뒤 구체적인 대안을 논의해가도록 해야 한다.”
나오며...
토론회를 마친 뒤, 같은 장소에서 민주노총의 대응방향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서 제안된 의견들은 ‘특검거부투쟁’과 ‘특검결과에 대한 노동자의 감사’를 보다 대중적으로 힘차게 전개하자는 것이었다. 현장 발언 속기록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지역에서는 특검 거부에 대한 조합원 서명과, 개인 검진 결과에 대한 위임장을 받으려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렇게 선전과 실천을 해보자.” (금속노조 경남지부)
“노동부 점검결과에 대한 정보공개요청을 하자. 특검 거부를 지지한다. 한사람당 의사 면담시간이 1-2분에 불과한 특검은 받을 필요가 없다. 산업의학 의사로서 하루에 백, 이백명씩 진찰하는 검진을 왜 하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 식의 특검은 한두번 못받더라도 상관없다.특검을 보이코트하면서, 그런 걸 바꾸도록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 자문위원)
“우리 사업장에서는 90년대에 문제를 발굴하고 언론화까지 했지만 공염불로 끝났다. 민주노총이 이번에는 노동자를 위해 가능한 방안을 총동원해달라. 이번만은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민주노총의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줄 문제는 아니다. 경남지역에서 제안한 것처럼 '권리선언'을 한명한명 조직하면서 특검 문제를 대중적으로 알려내고 실천을 조직하자. 아주 기본적인 법적 권리들부터라도 되찾자. 지역별로, 혹은 가능한 사업장에서라도 과거 특검결과를 모아 철저히 파헤치고 드러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대중의 요구와 실천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하자
4월 10일 토론회는 그 준비과정에서 특검 문제에 대해 입장과 제안을 제출했던 노동보건운동주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특검 문제에 대해 노동부나 전문가 집단 뿐 아니라 노동운동 내부에서조차 근 십여년 만에 열린 자리로서의 의미는 여전히 중요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날 토론회에서 특검 문제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없었을 뿐더러, 제기된 몇가지 이슈들에 대해 확정된 결론에 이를 수도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일차 과제는 특수건강진단 문제에 대한 현장 노동자의 이해를 높이고 요구와 실천을 조직하는 것이다. 당장 다음 특수건강진단부터, 일단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수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부터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무엇을 할 필요도 없이 담당자들과 전문가들이 알아서 척척 만들어주는 제도 개선이 아니라, 노동자가 아는 문제부터 시작하고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국가 산업보건제도 전체 판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로 모아나가기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
토론회 3일 뒤인 4월 13일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동부가 비공개 회의를 갖고 노동부의 제도개선안을 함께 검토한 뒤 중장기적 제도개선 TF 구성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제 이 기구를 꾸리기 위해 노력한 것보다 수백배 힘을 기울여, 이 기구를 통해 주장할 대중의 요구와 실천을 모으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