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7/7월/이러쿵저러쿵] 바쁘다 바빠!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지금 뭘 하고 있나?’ 돌아봤을 때, 이미 난 저녁 반찬거리와 아이를 위해 고민하는 전형적인 전업주부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아이 기르고, 집안일 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이니 나도 그럭저럭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별다른 준비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평소 아침에 출근하지 않고 시간에 쫒기지 않아도 되는 좋은 점만 생각해서일까? 직장생활에 익숙했던 내가 밥하기, 빨래하기, 청소하기, 아이 키우기를 매일 반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는 이웃 한 명 없는 낯선 곳에서 말이다.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이야
집에 있으면 출근하지 않은 휴일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울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었다. 그러나 지난 8개월 동안 이것이 얼마나 판단착오였는지 절감하고 있다.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뿐 전업주부의 일은 눈 뜨면서 바로 시작되기에 직장에 출근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일찍 시작된다. 출근하는 남편과 아침 먹고, 아이 기저귀 갈고, 이유식 먹이고 나면 10시가 훌쩍 넘는다. 아이와 놀아주면서 청소하다보면 12시가 다 된다. 이제 점심 먹어야 한다. 혹시 아이가 잠들어버리면 청소기를 돌릴 수 없으므로 대신 빨래를 한다. 오후 2시-5시 정도에 아이가 잔다면 모처럼 생기는 휴식시간이다. 이 시간엔 주로 인터넷으로 물품구매와 육아정보 등을 본다. 5시 이후엔 저녁거리 준비, 빨래 정리를 한다. 저녁 식사 후 아이 목욕을 시킨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다.
이렇게 집안일에 쫒기고, 늘 아이와 함께 생활하여야 하기 때문에 신체가 자유롭지 못하다. 어쩔 땐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문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아이 때문에 볼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올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처럼 더운 날엔 하루 일과 마친 저녁시간에 편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는 풍경이 부럽다.

전업주부라서 느끼는 감동 VS 허탈감
젖을 먹으며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어-엄-마 엄마 엄마’ 하며 처음 날 불러줬을 때 감동은 평생에서 잊을 수 없는 일 중에 하나다. 누워있던 아이가 뒤집고 기고 서고 원하는 책을 내 앞에 가지고 오는 등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발견하고 볼 수 있는 기쁨은 직장생활을 했다면 이만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로서, 남편에게 아내로서 마음껏 희생과 봉사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텅 비어져만 가는 것 같아 허탈하기도 하다. 스스로를 위해 사색하고, 개발하고, 가꿀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육아와 가사노동이 직장생활에서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극히 일부 직업에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업주부 생활이 길어질수록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또한 늘 머릿 속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전업주부의 근무시간은 남편 직장 근무시간과 비례한다
이러한 답답함은 늦은 시간 갈증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모유수유로 맥주를 못 마시는 나는 시원한 매실차를 마시는 새로운 습관이 생겨버렸다. 휴일 가사노동은 대부분 도맡아서 하고, 아침을 챙겨먹고 출근할 정도로 가사노동 분담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열심인 남편이지만, 평일엔 새벽에 출근 해 밤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전업주부인 나도 시간적 여유를 갖기가 힘들다. 그래서 쌓여만 가는 불만과 원망은 여과없이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쏟아진다. 원죄는 남편을 쥐어짜는 **자본에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조금 있으면 아이 돌이다. 자기 또래를 보면 먼저 다가가는 아이를 보면서 이젠 친구가 필요함을 느낀다. 아이 생일 챙겨주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상품화되어서 돈을 아끼려면 직접 시간을 투자해서 준비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만 바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숨통이 트일 시간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나를 다시 찾은 시간이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전업주부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한노보연 회원, 전업주부 정 경 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