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기대를 갖게 하는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서는
동시에 의문과 바램도 함께 생깁니다.
이번 <비폭력 대화>에 대한
강의를 듣고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비폭력 대화: 기린언어>라고 해서
새로 나온 학설 같은 것인가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전에 약간의 정보를 얻긴 했지만
좀 어렵게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학문적 지식을 쌓게 되리라는
설렘과 기대를 품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어렵게 생각했던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금새 알게 되었습니다.
강사님을 따라 연습을 해보며
학문적 지식의 습득에 대한 필요성만큼이나
내 욕구에 충실하여 그것을 실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뇌리에 가장 깊이 자리잡은 단어가 있었습니다.
“욕구”라는 단어.
제가 강의를 듣고 받은 느낌은
결국 자신의 “욕구”에 솔직해 지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비폭력대화를 사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끊임없이 생각들이 이어졌습니다.
“욕구”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강조되어지고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일까..
모든 “욕구”는 다 충족되어야 하는 것일까..
“욕구”에도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일까..
“욕구”에도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일까..
인간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공허한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좀 우습기도 합니다.
사전적 정의가 궁금한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인간은..
제 개인의 삶을 돌이켜 보며
난 욕구에 얼마나 충실하며 살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는
신체적 양육-휴식 에 대한 욕구가 가장 큽니다.
내일의 근무를 위해서는 가장 우선시 되는 욕구입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54
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폭력 대화>법의 의사소통 모델을 통해 제 자신과 소통해 봅니다.
결국 휴식에 대한 욕구보다
자기구현에 대한 욕구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적 상호의존이라는 욕구와 함께..
그래서 스스로에게 부탁합니다.
더 큰 욕구에 충실하라고.
어제는 병원노조의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사측의 무시하는 태도에 노조집행부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매년 노조투쟁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용자들의 노동자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들은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그들의 욕구까지 파악하고 궁금해 해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요.
그들도 이해받아야 하는 사람들일까요.
노사협상에서도
비폭력대화는 효과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용자는 노동자와 유대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마도 효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바램이 생겼습니다.
노사관계에서도 <비폭력 대화>가 유효해 지는 것.
그런 날이 오면
저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상호의존의 욕구가 충족될 것 같습니다.다함께 바라보던 세상이 있던 때가 지나갔는데, 공유하는 전망이 없고 그래서 방황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