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3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는 바로 그 시각.
국민연금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공노조/ 사회연대연금지부 조합원 3,400여명의 조합원을 포함하여 4~5천명의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국회 앞에서 1박2일 총 파업을 감행하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국민연금법 및 사학법 개악 규탄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국회가 국민연금법을 개악시켜도 국민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냉소적이었다.
노동자, 농민, 서민대중들에 있어 국민연금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이번 민주노총의 국민연금개악 저지 투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1. 서민대중에 있어 ‘국민연금’의 의미
인터넷에 게재된 네티즌들의 의견이나 일반 국민들의 대화 속에서 국민연금의 위상은 서민 대중을 혹사시키는 도구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연 국민연금이 서민대중에게 있어 ‘약(藥)’인지 ‘독(毒)’인지에 대한 정의는 감정적 판단보다는 이성적 인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공무원 등 특수직역 종사자들을 제외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의 어려움과 인식의 부족으로 인해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가입자 대부분이 보험혜택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에 대한 인식 부족과 사회보험제도의 특성상 강제적용으로 인한 불만 및 정부의 기금고갈에 대한 무책임한 여론호도까지 더해져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있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불신과 불만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연금제도는 서민들의 생계보장을 위한 국가적 보호 장치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은 고소득계층과 저소득계층간 보험료 납부 금액 대비 연금지급액을 비교했을 때 엄격한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2.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간략한 이해
○ 소득대체율 (납부보험료 대비 연금 지급률)과 소득재분배(하후상박의 원칙)의 의미
현행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는 40년 가입 시 보험료 9%, 소득대체율(지급률) 60%로 시행되고 있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국민연금 가입자 전체 평균소득을 200만원으로 가정했을 때, 월 소득 200만원인 가입자가 소득의 9%인 보험료를(매월 18만원) 40년을 가입했을 경우 노후에 매월 12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가입자 평균소득인 월 소득 200만원을 기준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연금지급률은 하락하고, 소득이 낮을수록 연금지급률이 상승하므로 국민연금의 지급구조는 명확하게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 불변(현재)가치의 보장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느 민간 생명보험회사의 연금보험 상품도 계약서상 인플레이션 등을 감안한 연금지급액의 불변가치(현재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 반면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20년 뒤 매월 ‘120만원’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 ‘120만원’이라는 액면 금액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120만원’이 가지는 화폐가치를 20년 뒤 그대로 보장해주겠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3. 『짝퉁 기초노령연금』의 폐해
○ ‘쓴 약 먹으라고 사탕 줬더니 사탕만 먹고 약사발은 엎어 버렸다 ?’
지난 4월 국회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모두 부결되고 기초노령연금법만 통과되자 연금법 개악의 선봉에 섰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언론을 통해 흘린 말이다.
사실 정확한 표현이다.
기초노령연금은 약이 아닌 이를 썩게 하고 건강에 좋지 못한 사탕과 같이 국민의 노후를 보장해야 할 국민연금을 썩게 할 수 있는 나쁜 제도라는 말이다. 단순히 짝퉁이 아니라 국민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제도인 것이다.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노인중 하위소득 60%에게만 월8만원 정도의 용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기존에 65세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지급되던 교통수당 3만원을 폐지하면서 못사는 노인들에게 수당을 주는 공적부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고도 공적연금제도가 없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신 어르신들에게 못사니까 준다는 수치심을 주면서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엄청나게 잘못된 생각이다.
○ 정부와 열린우리당의‘대한노인회’기망극(欺罔劇)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매월 지급되던 교통수당 3만원이 폐지되고 60만명의 노인들에게 월 3~5만원씩 지급되던 경로연금이 폐지되면서, 소득 하위 60%의 노인들에게 한달에 8만원씩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을 대한노인회가 알면서 찬성했을까? 그것도 국민연금을 지급받는 수급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되고 대상자 선정에 있어 재산을 포함한 소득인정액이 월 46만원을 초과하면 기초노령연금을 못 받는다는데...
이런 『짝퉁 기초노령연금법』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주도하여 지난 4월2일 대한노인회의 전폭적 지지 아래 법통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행 60%에서 40%로 대폭 축소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솔직히, 해도 너무한다...
4. 국민들이 요구했던 국민연금 개혁 방안
○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연금법 개혁 요구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연금법 개악을 일방적으로 감행하고 있던 중 다행히도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안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정책적 공조를 이룸으로써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면서 합의점을 찾았던 것이다. 동 요구안을 담은 연금법 개정안이 지난 4월2일 국회 본회의시 표결에 부쳐졌지만 정부․여당의 개악안과 함께 부결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4월17일 개정안이 재발의 되어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다루어질 전망이었으나 사학법 개악을 둘러싼 한나라당은 검은 속내가 드러남으로써 결국 국민연금법을 개악시키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가입자단체들이 요구한 국민연금 개악안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도록 한다.
○ 공적연금 개혁의 시대적 요구
노인인구 중 70%가 공적소득 보장 사각지대에 방치. OECD국가들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10% 수준에 달하는 노인부양비에 비교되는 1%에 불과한 복지국가 대한민국의 현 주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올바른 국민연금 개혁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현재 어려운 노인은 물론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는 계층, 즉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 둘째, 후세대의 부담을 줄여주는 재정안정화. 셋째, 부족하더라도 용돈연금이 아닌 최소한의 노후소득보장 수준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국민들(양대 노총, 각 종 시민사회단체)의 국민연금 개혁 요구안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여성단체연합회, 전국농민회,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농업경영인협회 등은 성명을 내고 다음과 같은 국민연금 개혁안을 요구하였다.
첫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로 유지하여 국민누구나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함으로써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수용도가 제고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최소한 2018년까지 기초연금 10% 도입(월 18만원)을 전제로 현행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 60%에서 40%로 인하하는 방안이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이다.
셋째, 노인들의 공적소득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의 지급범위가 65세 이상 노인 중 재산과 소득조사를 거쳐 80%의 노인들에게는 지급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이중지급 및 기초연금 대상자 선정에 있어 국민연금 수령액은 소득인정액에서 제외되어야 현행의 국민연금의 올바른 성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장애기초연금 도입으로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준수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현행 국민연금(소득비례연금)과 기초연금은 같은 법 내에서 규정되어야만 양 제도가 균형을 이루며 올바른 공적연금의 체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기초연금의 재원은 직접세(부유세) 등을 통한 전액 국고로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고려치 않고 지난 4월2일 통과된 기초노령연금법 대로 시행된다면 전국적으로 통일되지 못한 기준의 적용 등으로 인해 지역적 불균형 및 지역이기주의 만연 등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
5. 국민연금 개악저지 (7/2 ~ 7/3)총파업 투쟁의 의미
세계적으로도 단 한번의 법개정으로 국민연금 급여액을 1/3씩이나 대폭 삭감한 예는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1995년 및 2003년에 연금액 삭감을 제시했다가 전국 공공부문 노동자 절반 이상이 총 파업에 돌입하는 등 사회적 대혼란을 겪기도 했으며 1995년 총파업 후 연금개악을 주도한 알랭 쥐페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어떤가?
연금노동자들이 총파업 투쟁을 벌이며 ‘기초연금’을 공약으로 내세운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예비후보인 이명박 캠프에 후보자의 입장을 듣기 위해 방문하였으나, 경찰력 투입으로 인해 개처럼 들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우리 정치인들은 아직도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간을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올해 비록 연금법이 개악되고 말았지만 사회적 환경은 국민연금의 대폭 삭감으로 인해 기초연금 도입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다. 위정자들은 국민들이 요구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한나라당이 요구한 사학법이 통과됨으로써 비리 사학재단의 배를 채우게 된 것도 그렇고, 열린우리당이 요구한 대로 국민연금법이 개악됨으로써 재벌 금융보험사들의 민간보험 확대가 그렇다.
연말에는 대선이 있고 내년 초에는 총선이 있다. 국민들은 두 눈 부릅뜨고 누가 국민들에게 주권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제대로 파악해서 투표에 임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이번 싸움에선 대다수 국민들이 동참하지 못해 우리들의 패배로 끝났지만 우리들의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정치권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반드시 승리할 싸움이기에 우리의 깃발은 더욱 높은 곳에서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