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7/8월/특집1] 재해감소 정책의 허와 실

들어가며

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2000년대 들어 감소추세를 지속하던 산재가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추세로 반전되어, 금년 5월 현재 산재관련 지표가 전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해자는 35,767명으로 전년동기 35,062명 대비 715명(2.0%)이 증가하였고, 재해율도 0.29%로 전년동기 0.27%에 비해 7.4% 증가하였다. 사망자는 1,025명으로 전년동기 947명 대비 68명(7.2%) 증가하였고, 사고성 사망자는 568명으로 전년동기 490명 대비 78명(15.9%)이나 대폭 증가하였다.
특히 금년 4월부터 6월까지 총 4건의 건설현장 대형사고로 14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하는 등 최근 들어 대형 사망재해가 끊이질 않고 있다.
80년대 재해율이 4%에 육박하던 것에 비하면 최근 재해율은 0.7-0.8%로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재해율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며 오히려 올라가기도 하는 것은 그간의 정부의 재해예방정책성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기 때문에 여전히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다치고 죽어가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재해를 줄이려고 하는’ 정부의 정책에 책임이 있다.

재해 줄이기 VS 재해 숨기기

‘재해감소’ 또는 ‘무재해’라는 구호는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재해율이 높은 사업장에는 관급 건설 공사를 맡기지 않고, 지방노동관서마다 재해율 감소에 따라 성적을 매기고, 직업병자가 발생하거나 직업성질환 유소견자가 발생한 사업장에는 특별히 감독을 실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러한 수단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일어나는 모든 재해가 다 보고되고 파악되고 있다’는 가정이다. 만약 그렇다면 재해율 감소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가 재해 감소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고되는 재해보다 감춰지는 재해가 훨씬 더 많고, 사업장에서는 아직도 산재처리보다는 공상을 종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숨길 수 없는 사망재해는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공상으로 처리하나 산재로 처리하나 치료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충분한 재활이나 재발에 따른 문제점은 둘째로 하더라도, 이러한 산재은폐는 예방의 기회를 차단시키기 때문에 같은 재해를 반복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단기적인 재해율 감소로 뭔가 성과를 내겠다는 발상은 곧 재해의 은폐로 이어지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근골격계 질환 및 뇌심혈관 질환이다. 정부는 최근 근골격계 질환자의 감소가 2003년부터 시행한 근골격계 질환 유해요인조사의 결과라고 발표하고, 뇌심혈관질환의 감소도 예방정책의 효과라고 주장하였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실효성 여부는 논외로 하고 실제 조사 결과가 작업장의 변화로 이어진 사업장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예방대책이 시행되어 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시행되더라도 그 결과는 수년 후에나 측정될 수 있다. 유해요인조사의 성과로 치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산재 감소 수치는 실제 산재예방을 위한 대책의 성과가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노력의 성과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직업병 발견하기 VS 직업병 숨기기

‘직업병 감시체계’라는 게 있다. 정부 돈을 들여 해마다 의과대학 교수들에게 연구 용역을 주어서 발견하기 어려운 직업병을 찾아내기 위한 제도이다. 외국에도 이 같은 제도가 있어서 산재 통계 이외의 직업병 통계로서 예방정책에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직업병이라는 것이 그 질병의 양태가 일반 질병과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눈을 크게 뜨고 발견하고자 애를 써야지 발견되는 것이 직업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직업병 감시체계가 사실 또 하나 있다. 바로 특수건강진단제도이다. 무려 177종이나 되는 유해물질을 취급하기만 하면 건강진단을 하게 되어 있으며, 매년 의무적으로 받게 되어 있는 건강진단제도이다. 이는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발생가능한 직업병이 다 보고될 수 있는 좋은 감시제도일 것이다. 허나 연간 100억원이나 되는 돈을 들여 65만명의 노동자들이 건강진단을 받지만, 소음성난청과 진폐를 제외하고 진단되는 직업병은 40건 내외이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직업병으로 산재인정을 받는 건수보다도 적은 건수이다. 이러니 노동자들의 불신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같은 정부의 정책인데 한쪽에서는 눈을 크게 뜨고 직업병을 발견하는데 돈을 쓰고, 한쪽에서는 직업병을 봐도 못 본척하게 하는데 돈을 쓰고 있다. 자칫 건강진단에서 직업병이 발견되거나 직업병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가 발견되기라도 하면, 우선 사업주는 정부의 감독대상이 되어 귀챦게 되고,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는 작업전환을 명령받거나 갈데가 없으면 고용불안에 시달려야하고, 지방관서 감독관은 재해율이 올라 성과가 낮아지는 것을 걱정해야 하고, 건강진단기관은 내년도 사업주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을 염려해야 한다. 고로 아무도 건강진단에서 직업병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문제는 수면밑에 가라앉아 해결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작년에 일어났던 DMF(디메틸포름아미드; 간독성이 매우 강한 세척제로 쓰이는 유기용제) 사망재해가 올해도 어김없이 또 일어났고, 최근에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

옛말에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 왜 우리 조상들이 이런 말을 만들었을까? 지금처럼 건강정보가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에 병을 자랑하다보면 병에 대해 경험과 기술이 있는 사람을 만나 해결될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병과 재해의 위험성은 자랑되어야 한다. 잘했다고 칭찬하자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데 회초리를 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환자가 병을 자랑하지 않고 숨어있다면 그 결과는 죽음으로 귀결된다.
현 시점에서 무재해 운동은 재해은폐운동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근골격계 인정투쟁에서 경험하였듯이 병을 묻어두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장애로 남게 되고, 결국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설 곳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무재해 운동이 아닌 위험찾기 운동을 할때

연일 주식이 상한가를 치다가 주춤한 상황이다. 주식투자처럼 앞을 알 수 없고 위험한 행위도 없을 것이다. 허나 자본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위험을 감내한다. 작업장도 마찬가지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온갖 위험을 감내할 것을 요구하는 곳이 작업장이다.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작업장에서 재해가 없을 수 있는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손가락 하나를 삐끗하던, 야간근무로 위장병이 생기든, 어디에선가 문제는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할일은 이러한 소소한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를 없는 일이 아니라 상존하는 일로 자랑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일상적으로 산재로 보고되지 않는 자잘한 질병이나 사고를 보고받고 기록하자. 이러한 노력이 쌓이면 우리 작업장의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나올 것이다. 문제를 알아야 해결책도 나온다. 우리 노동자들은 무재해운동에 재해찾기 ․ 위험찾기로 맞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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