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7/9월/이러쿵저러쿵] 두 젊은 기관사의 영정사진을 보며...

얼마 전 도시철도 노동조합 승무본부장이 되고나서, 회원으로서 활동도 많이 부족했던 나에게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글의 소재로 노조 선거과정에서 느낀 단상들을 특별히 주문받았는데, 선거이야기보다는 제가 요즘 느끼는 한 가지 단상을 동지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선거에 대해서는 솔직히 처음 선거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선거투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과 빡빡한 일정속에 묻혀있어 동지들과 함께 나눌만한 이야깃거리가 별로 떠오르질 않네요. 그래도 선거투쟁에서 새롭게 만난 조합원들의 지지와 응원의 말 한마디는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희 도시철도에서는 지난 2003년 8월에 두 분의 젋은 기관사가 신경정신질환으로 한분은 자신이 일하던 철로위에서, 한분은 자신의 고향바다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두 분 모두 산재가 인정되어 그나마 가족들이나 동료기관사들의 약간의 마음의 짐은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까지 3주기 추모식을 해왔으나 올해 4주기는 선거기간 속에서 그냥 지나갔고 아마 내년 5주기 추모식 때나 다시 조합원들의 기억 속에서 두 분을 다시 끄집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실은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추모식이야기는 아니구요. 이번 선거를 준비하면서 1년에 한번 할까말까한 제 차 정리를 하던 중 지난 3주기 추모식 끝나고 차에 실어 두었던 두 분의 영정사진과 분향도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 여기에 있었구나’, ‘그럼 1년 동안 나랑 계속 같이 있었네 그런데 일이 왜 이렇게 안 풀린거야’ 등등 짧은 생각들이 지나간 후, 제손에 쥐어진 그 사진들과 분향도구가 무척 낮설게느껴졌습니다. 그 만큼 그분들에 대한 저의 느낌이 멀어져 있었나 봅니다.

처음 일이 터져 투쟁할 때에는 사장이든 공사든 당장 다 끝장낼 듯이 투쟁을 외쳤는데 4년 뒤 마주한 두 분의 사진은 어색하고 낮설었습니다. 이후 사진과 분향도구는 제방에서 한 달을 뒹군뒤 저희 어머님의 조용한 협박으로 지금은 승무본부 사무실 한 쪽에 놓아두었습니다. 아마 내년 8월 5주기 추모식때나 또 만날 수 있을테지요. 그때까지 저는 또 제 일상속에서 살아있는 기관사들의 아픔을 풀기 위해 살아야겠지요.

대부분의 우리들은 일상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생각을 소통하고, 서로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저 또한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그런데 앞으로 저는 제 옆에 한자리를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지 못한 그분들의 자리를...
그렇게 그분들과 함께 생활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일상적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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