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7/9월/특집2] 87년 이후 20년, 무엇을 평가하고 전망할 것인가

20년 긴 세월이다!

20년 긴 세월이다. 당시 사회운동 지도부는 적게는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고, 행동대는 사십을 넘기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 이뿐 인가? 폭발적인 투쟁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세대의 입장에서는 87년 대투쟁, 96/97 총파업을 경험했으니 긴 세월이다. 또 어디 이뿐 인가? 민주화 열기로 사회주의 담론이 세상에 고개를 들 때, 소련을 필두로 동구 사회주의 국가는 붕괴되고, 잔치도 해보지 못했는데 잔치는 끝났다 하고, 군부독재 3당의 야합에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자유개혁세력의 사기는 10년이 넘었고, 노동당은 대권을 이야기하고, 노동당의 정체성이 논란이 되고,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라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또 어디 이뿐인가? 구속을 각오하고 회의 한번, 집회 한번 했던 전노협은 민주노총으로 양적 제도적 성장을 하였고, 집회장에서 흔하디 흔하게 휘날렸던 노동해방의 깃발은 온데간데 없고, 호헌찬성 성명으로, 임금가이드라인 노정 선언으로 그 생명을 재촉하던 한국노총은 어느새 또 다시 노사정의 주역이 되었고,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이 되었으니, 참 참 20년, 긴 세월이다.


노동안전보건투쟁, 20년간 무엇을 했나?

노동안전보건투쟁은 산재추방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도 ‘산재’나 ‘산재추방’이라는 용어는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87년 민주화 열기는 사회 모든 부문에 영향을 주었고, 무엇보다도 권리에 대한 자각과 부당함에 대한 저항을 일깨웠다. 안전보건 영역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안전하게 일하고 싶고, 재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요구가 개인의 바람을 넘어 권리와 저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부당함에 대한 적개심을, 저항의 연대를 촉발하였다. 익히 알고 있는 88년 문송면 수은 중독 사망에 관한 투쟁은 이러한 민주화의 열기와 죽음이라는 극단적 사건이 만난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산재추방운동, 노동안전보건투쟁의 시발이 되었다. 바로 뒤이은 원진레이온 투쟁은 직업병 투쟁의 전형을 만들었다. 안전보건투쟁은 노동조합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다양한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나 사업주의 안전보건의무를 확대하는 동시에 현장에서의 개입 즉, 검진, 작업환경측정 등에 있어서 참관, 참견, 주도 그리고 작업중지와 거부 등등 90년대 초 중반의 투쟁은 현재의 제도적 틀을 거의 완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90년대 중반까지 비록 민주노조운동이 대부분 법외에 머물러 있었고 동구의 몰락으로 사상적 혼란속에 있었기는 하였으나, 그 정당성과 투쟁의 열기는 사실상 한국 사회의 진보적 담론과 행동을 이끌고 있었고, 안전보건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나 96/97 총파업의 자신감은 조직적, 질적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97년 11월 금융외환위기로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정리해고로 대표되
는 ‘고용유연화=고용불안정화’는 기간의 권리 의식과 저항을 일시에 얼어붙게 만들었고,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공감’하면서 스스로 변화된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문에 빠져 들어갔다. 당연하게 안전보건영역에서 그 동안 축적하였던 제 권리는 문서상의 글자로 남게 되고,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갔다. 자본의 축적 전략과 스스로의 최면에 걸린 ‘동의’는 노동강도를 날로 강화하였고,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공공영역까지 파괴하였다. 산재보험의 실제적인 보장은 축소되었고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고통받는 노동자는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전체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는 그대로 노동안전보건의 위기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안전보건투쟁이 완전히 숨죽여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어려운 상황때문에 꾸준하고 질긴 투쟁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99년 봄부터 시작된 故 이상관투쟁은 근로복지공단의 재정절감대책으로 인한 피해를 세상에 알렸고, 이를 표면적으로는 철회하도록 만들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을 뜨겁게 달구던 근골격계직업병 투쟁은 ‘노동강도’, ‘근골격계’, ‘작업환경개선’, ‘노동안전보건’이라는 뜻과 용어를 적어도 금속현장 노동자에게 회자되게 하였다. 돌이켜보면 전체 노동운동 혹은 노동조합운동의 기복과 함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꾸준한 도모와 시도를 해 나갔던 것이 노동안전보건투쟁, 노동안전보건운동이기도 하였다.


현재의 노동안전보건투쟁의 상태는?

90년대 중후반까지 노동안전보건영역에서의 전문주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전문주의’라는 것은 해당 영역의 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해당 대중과 현장활동가는 부수적 역할로 규정되는 운동 흐름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그러한 논란은 없다(‘없다’라고 해서 전문주의가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전문주의를 굳이 논할 이유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운동의 주도권이 분명히 노동조합 정확히 말하면 노동조합 간부에게로 넘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대중운동체로서의 ‘노동조합’을 강화하려는 전체운동의 전략과 긴밀히 연관하고 있으며, 실제 노동대중이 생활하고 있는 현장의 공식조직인 노동조합이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노동조합 주도권 또는 노동조합 간부의 주도권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상태가 문제다. 한국의 특성상 노동조합에 대부분 의존한 운동은 노동조합의 변화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조합 본래의 특성이 제도권적일 수 밖에 없음은 큰 딜레마이다. 제도화라는 것은 한편으로 안정적이고, 공식화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제도기관으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의 요구, 즉 법치성, 절차성, 공식성 등의 수용으로 인해 역동성, 비정형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야수성의 격화로 인해 오히려 생산현장은 법치성, 절차성, 공식성 등으로는 극복될 수 없는데, 노동자 조직인 노동조합은 이러한 경향이 짙어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예기치 않은 투쟁, 공식성 없는 요구와 투쟁, 통제되지 않는 투쟁은 노동조합 간부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투쟁이 되고, 조합원에 입장에서는 ‘불안’한 투쟁이 되어 심심하지만 ‘안전’한 투쟁을 선호하게 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현재 안전보건에 관한 제도는 90년 초중반에 대부분 그 틀을 만들었고, (자본의 끊임없는 개악의 시도가 상존하더라도) 노동조합은 거꾸로 그 틀을 깨고자 하지 않으며, 활용에 있어서도 그닥 활발하지 않다. 예컨대 한때 집단요양투쟁하면 조합 망한다는 흉칙한 악담이 횡횡한 적이 있다. 집단요양투쟁하면 조합이 ‘올인’해야 하는데 조합이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집단요양투쟁 전술이 모든 국면에서 다 옳다 할 수 없는 얘기지만, 현재의 노동조합 상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불가분의 관계인 노동안전보건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깊숙한 철학적인 문제이며, 사상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도대체 노동조합운동은 왜 하는 것인지, 안전보건투쟁은 왜 하는 것인지, 매년 임단협을 왜 체결하려하는 것인지, 왜 노동력 거래의 전제 없는 ‘건강권’만을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긍정적 변화는 어디로부터 올 것인가?

지난 20년간 적지 않은 성과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의 공세를 차치하더라도 우리 노동운동은 자신이 성장시킨 도구로 인해 스스로 어려움에 빠져있다. 사실상 노동조합 만능론이나, 정당과 노동조합의 양날개론은 다를 바가 없다. 왜냐하면 둘 다 극단적인 제도적 힘에 의존하거나, 역할로 한정하여 제도적인 틀을 고정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역동적 변화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안전보건투쟁은 처음에는 ‘인간으로의 권리인 건강권, 생명권’으로부터 출발했는지 모르지만, 투쟁을 통해 ‘노동력 매매를 통한 필연적 모순인 건강권, 생명권’으로 확대되었고, 이로 인해 산재추방운동은 노동안전보건투쟁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계급 모순으로 깨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 노동자 건강권이고, 현재의 조직틀에만 의존하여서는 가능하지 않는 것이다. 부정과 부정의 변증법적 성장의 시기를 목도하고 있다.

노파심에서 독자의 오해를 줄이고자 구구절절 이야기하자면, 필자는 노동조합의 유용성을 부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화된 노동조합으로 만족하고 이 틀에서 도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산별의 논의가 한창이고, 실제화되고 있다. 그러나 산별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본 바가 없다. 산별을 추진했던 자들이 모두 문제가 있었단 말인가? 제도화의 가속화는 누구도 막을 재간이 없다. 문제는 현장의 역동성을 기존의 틀로는 활성화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산별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산별은 산별로 역할을 할 뿐이다. 혁신을 이야기 한다면 인식의 혁신 뿐 아니라 행동의 혁신이 필요하다.

기간의 노동안전보건투쟁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체 정세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꾸준한 투쟁과 문제제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추상적인 건강권이 아니라, ‘노동력 매매’를 전제로 한 계급해방으로서의 건강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확대․심화하는 것이 이후 운동의 관건이며, 20년 투쟁을 상승․발전시키는 고리인 것이다.

99년 전국산재추방운동연합이 결성되었을 때, 87년 이후 10년의 성과를 모아 전국산추련을 만든다 하였다.(2000년에 해산하였다) 이때 3인의 공동대표가 있었다. 전문가, 현장활동가, 재해노동자 이렇게 상징성을 담아 추대되었다. 현재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전문가 대표는 통합민주신당의 최고위원이 되었고, 현장활동가는 우여곡절 끝에 해고자가 되었고, 재해노동자는 직업병의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그 당시 10년의 성과는 어디 있는가? 다시 한번 강조 하건데 노동계급해방으로의 건강권투쟁이 더욱 더 필요하며, 제도틀에서가 아닌 이것을 넘는 사상으로 노동조합주의적 운동이 아닌 노동운동으로 다시금 서야 미래를 움켜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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