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나도 아이 둘에 결혼 5년차.. 이제는 결혼생활이라는 것, 며느리 또는 엄마라는 위치에 익숙해져 있을 만도 하건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오늘도 화들짝 놀란 것이 추석연휴 전 마지막 평일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아.. 또 추석 선물을 미리 준비 못했는데...
많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나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명절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미혼 때는 그저 전날 한두시간 전이나 좀 부치다가 명절 당일 날 가족들이랑 아침 같이 먹고, 그 다음 나머지 연휴엔 친구들이랑 놀러가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물론 연휴가 끝날 때마다 아쉽긴 했지만 그렇게 짧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연휴가 너무 짧다. 시댁과 친정 양쪽에 인사 가고 때에 따라 다른 친척집까지 들르고 나면 지친 몸으로 바로 출근해야 한다.
그나마 나는 운이 참 좋게도 굉장히 배려심 많으신 시어머니를 만나 직장생활에 대해 상당히 존중해주시고 집안일은 시어머니께서 도맡아 해 주시고 있다. 명절 때도 마찬가지여서 시댁에 가도 내가 하는 일은 음식 나르기나 단순한 일들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편할 순 없다. 시어머니께서 내내 엉덩이 한번 못 붙이고 뭔가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친정은 명절이나 가족 모임을 그다지 거창하게 하지 않는 데에 비해 시댁은 가족들끼리 뭉치고 같이 노는 것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이런 큰 명절날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놀라울 때가 있다. 시아버지 형제분들이 그 딸린 가족들을 대동하여 시댁에 들르기 시작하면 밤중까지 마루에 음식상이 접히는 때가 없다. 아침 상 거하게 차려서 먹고 다 먹었다 싶으면 전이나 다른 안주들과 함께 술상이 차려지고 그러다 보면 늦게 온 손님이 있어서 다시 식사가 차려지고 또 과일이나 식혜 등을 먹다보면 점심식사 시간이고 이런 사이클이 저녁까지 이어지고 내내 술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는 동안 여자들은 음식 내오기와 설거지를 끊임없이 계속 하는데 남자 어른들은 계속 앉아 있기 답답할 법도 하건만 아무도 부엌에 들어가는 분이 없다.
굉장히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도 감히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튀는 며느리로 찍히고 싶은 생각도 없거니와 너무나 오
랜 세월 몸에 밴 어른들의 생활방식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게 불가능해보이기도 하고 좀만 더 참으면 내 세대는 달라지겠지 하는 어쩌면 안이한 생각도 있고... 그저 이렇게 ‘이러쿵저러쿵’에 궁시렁 거려볼 뿐.
평등가정을 꿈꾸시는 남성동지들. 그럼에도 혹시 명절날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가고 있지는 않으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