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7/11월/기타] 10월 27일 ! 그날에...

10월 27일 !

가을이었던가요?
하늘은 높고, 푸르렇고,
노랗고, 빠알간 단풍잎들이 그저 바람에 날려 발 밑에 떨어지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겉옷이라도 하나 걸치면 그저 떠나고 싶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만큼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날,
전국에서 건설 동지들이 하나 둘 인천 갈산역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토끼같은 아이들, 여우같은 마누라와 함께 손잡고 뒷산 나들이라도 가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날, 초롱한 눈길로 쳐다보는 자식의, 아내의 마음을 모른 채 하고 모두들 인천 갈산역으로 나섰을 것입니다.
전라도에서 강원도에서 속속들이 모이는 동지들의 모습에 서로 힘을 받으며 갈산역 집회는 이루어졌습니다.
약식 집회 후, 길바닥에 주저앉아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공해 잔뜩 먹은 낙엽을 보면서 시커멓게 그을린, 노동에 피곤한 얼굴에 흰이를 드러내며 벙긋 웃는 얼굴로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날,
사랑하는 한 동지가 그리 인상도 좋고 마냥 착하고 유쾌했던 동지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몇 억을 손해봐도 좋다고 버티는 사장들,
우리 노동자들이 130일 버티는 것은 죽기를 각오했다는 것을 저들은 알지 못할 겁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겠지요.
우리 노동자들 너무 열심히 일해서 사장들의 배를 너무 불려놨습니다.
이세상 어느곳에 노동자 없는 사장이 존재할까요.
우리는 이제 우리것을,노동자의 것을 정당하게 찾아와야 합니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습니다.


너희들은 기어이 내 돈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자신하는 저 사장들!
노동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조차 아랑곳 하지 않는 저 사장들!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내 돈 앞에서 바로 개가 되라고 강요하는 저 개같은 사장들!

우리는 경찰과 싸우려고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영진 유해성의 개라도 된 양 겹겹이 영진을 에워싸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 노동자의 수보다 훨씬 많은 경찰과 닭장차로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진으로 가고자 했고 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동지가 불로 몸을 불사르며 노동자도 사람임을 외쳤습니다.
기필코 파업투쟁 승리해야겠다고!

2007년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가신지 40여년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아직도 몸에 불을 질러야 합니까?

전기원 노동자들 토요일 격주 휴무제 하자는 겁니다.
주 40시간도 아니고!, 주44시간 하자는 겁니다.
당연한 단체협약 체결하자는 겁니다.

이 무슨 죽을 죄이기에
130일을 넘는 파업까지 가야하고
기어이 노동자의 죽음까지 가게해야 합니까?

정해진 동지, 정해진 열사여!

기억하십니까?
한달 전 등산고리를 저에게 주신거...
저는 등산용구를 잘 모릅니다. 보라색 동그란 고리에 어찌 누르니 칼이 나오는...
그래서 사과를 좋아하는 제가 사과 깎는데 쓰겠다고 억지를 부리며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허허 하면서 특별히 주겠다고 하던 넉넉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예쁜 보랏빛이 나는 그 고리가 동지의 유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동지여 고이 가소서...
동지가 사랑한 전기원들, 그리고 이 땅의 노동자들은 동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기필코 승리하여 동지 앞에 술 잔을 올리겠습니다.


심00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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