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7/11월/기타] 쿠바 여행기

호세마르티 공항에서 의사국가고시를 두 달 앞두고

의사국가고시가 두어 달 남은 시점에서 예방의학과 교수님이 대학원 수업 뒷풀이 자리에서 쿠바에 간다고 했다. 그 동안 건강보장론이라는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고 있었던 터라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과 각 나라별 의료시스템들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쿠바에 대해서는 책에 없었고, 쿠바의 의료이야기는 최근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가 되었고, 관심도 많았던 터라 교수님의 이야기는 귀가 솔깃했다.

누구랑 가는지,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도 물어보지 않고, 다짜고짜 ‘나도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체 게바라와 쿠바혁명, 시가를 입에 문 자칭 좌파 헤밍웨이가 실컷 놀다간 나라, 쿠바음악을 빌보드 챠트에 올린 팝 가수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고향, 최강의 아마추어 야구, 쿠바음악과 춤, 최상품의 시가,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의 배경, 북한과 더불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하지만 북한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나라, 제법 괜찮은 쿠바의 의료시스템과 교육시스템, 유기농으로 도시농업을 하는 곳...... 쿠바에 대한 여러 인상들과 생각들은 꼭 가고 싶은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일단 가고보자. 가서 뭐라도 보고 오자는 심정이었다. 그 당시의 나의 상황은 500만원 정도의 대출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쿠바를 갔다 오는 시기가 2월 초․중순이라서 의사로서의 첫 출발인 종합병원 인턴으로 가기위한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였다. 만약 쿠바를 갔다 오게 되면 전기로 지원할 수 있는 병원에는 못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냥 쿠바만 갔다 왔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나를 쿠바방문단 명단에 올려놓고, 의사국가고시 불합격하면 안 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히도 겨우 합격은 하였고, 인턴지원은 후기지원을 할 수 있는 부산보훈병원으로 지원만 해 놓은 상태로 출발준비를 하였다.

시청에 가서 여권신청만 하면 쿠바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캐나다를 거쳐서 가야하기 때문에 비자신청도 필요 없었다. 쿠바에 관련된 책들과 20~22℃ 정도의 기온에 입을 수 있는 여름옷들과 쿠바에 관련된 책, 그리고 스페인어 회화책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아바나로

인천공항을 지나 벤쿠버를 거쳐서 쿠바 아바나와는 비행기로 3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토론토에 이틀 머물렀다. 쿠바로 가는 게 지연되었다기보다는 마이클 래클리스라는 공공의료를 연구하시는 캐나다 교수님의 극진한 배려로 캐나다의 의료기관도 방문하고, NDP라는 캐나다의 진보당도 방문했기에 이틀 정도 머무르게 되었다.

래클리스 할배요. 고맙소. 책도 주고, 구경도 시켜주고, 20$나 하던 NDP 정당 파티 티켓도 사주고 해서 정말 고맙소.

래클리스 할배의 극진한 대접을 뒤로하고, 토론토 공항에 갔다. 혹시나 토론토공항에서 쿠바로 가기위한 절차가 있지 않을까 하고 기다렸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기를 타게 되니까 승무원이 노란 종이를 주더니만 빈칸을 채우고, 아바나 가서 출입국 사무소에 제출하랜다.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쿠바여행의 목적을 적는 거였다. 쿠바로 가기위한 준비는 이게 전부였다. 여권 만드는 거랑 아바나행 비행기에서 노란종이에 영어로 기록하는 것~! 자기이름과 주소를 영어로 쓸 수 있으면 쿠바 갈 수 있다.


쿠바의 첫날

드디어 쿠바섬이 보이고, 말로만 듣던 호세마르티 공항이 보였다. 공항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간단한 질문 한마디만 하더니 보내줬다. 혹시나 영어로 길게 물어볼까봐 싶어서 긴장했었는데 “나는 대학생이고, 일주일동안 여행하러 왔다.”가 전부 다였다. 출입국 사무소 앞에는 주로 캐나다나 유럽에서 관광 온 사람들이 많았다.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자마자 담배피우는 곳을 찾았다. 그러나 찾을 필요가 없었다. 공항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담배를 피우면서 출입국 사무소 앞을 유유히 지나갔다. 여기 쿠바는 흡연가의 천국이구나~! 쿠바에 대한 기대도 많이 했는데 이유야 어떻든 나에게는 첫인상부터가 좋았다.

공항에는 필리페 이슬라라는 인상 좋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우리를 호텔로 안내했다. 젊었을 때 김일성 종합대학에 유학을 해서 한국말을 잘했다. KBS, MBC, SBS 뿐만 아니라 한겨레 기자들도 필리페 아저씨가 가이드 했다고 한다.
조그만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하면서 도로가에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히치하이커들이라고 했다. 경제봉쇄 이후에 석유가 부족하다보니 도로에 차가 많이 없댄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관광을 위한 렌터카나 외국회사의 개인소유차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히치하이커들을 태워줘야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트럭이고, 버스고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창문을 여니 어... 이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이란 책에서 나온 쿠바와는 다른 느낌의 냄새... ‘유연휘발유’ 냄새였다. 휘발유 냄새가 어찌나 독하던지 앞에 차가 있는 경우에는 창문을 열지를 못했다. 생태도시는 무슨 개뿔...
1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리니 초호화 호텔이 보였다. 한국에서도 호텔은 한 번도 가지 못했는데 쿠바에서 가보다니...
여기 초호화 호텔에서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공짜 칵테일에 취해서 잤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의 첫날은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앞으로의 쿠바이야기는 제가 쿠바를 여행한 순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기서 만났던 쿠바 사람들, 의료기관들, 감동적인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 기적의 작전을 펼친 Pando Ferrer 안과병원 등에 대해서 신변잡기적으로 기술하겠습니다.

1편 : 쿠바로 가기까지...
2편 : 쿠바의 의료기관 방문
3편 :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과 기적의 작전(Pando Ferrer 안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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