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산업폐기물이 아니다’ 라는 구호는 진폐환자들이 집회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이야기할때마다 하는 한이 서려있는 구호다. 지난 10월 중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부근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재가 진폐환자들 500~600여명이 함께 모여 ‘치료권 확보와 생존권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가열차게 진행하였다.
이들은 지난 60-70년대 석탄산업이 호황일때, 전국곳곳 광산에서 석탄을 캤고 그곳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겨가며 살아왔던 백발이 성한 늙은 노동자들이다.
재가 진폐노동자들이 그동안에 치료도 제대로 못받고 생활조차 견디기 힘들정도로 어려웠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는 사람이 없어서 거리로 뛰쳐 나와 대정부요구를 하는 강력한 의지와 투쟁의 자리였다.
이날 집회에서 재가 진폐노동자들은 엉터리 진폐 판정기준으로 치료권을 박탈하지 말 것과 생존권이 쟁취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투쟁과 사생결사투쟁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한때는 국가로부터 ‘산업역군’, ‘산업전사’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고립과 침몰 등 전쟁터처럼 위험한 막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 댓가로 지금은 광산의 석탄가루로 인한 진폐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생계비 조차 없어 2중, 3중의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다.
진폐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탄광에서 일하다 석탄가루가 폐에 쌓여 발생하는 병으로 완치가 불가능한 대표적인 한국의 직업병이다.
진폐증환자는 의증(의심되는 환자)을 포함하여 약 3만 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고 실제는 더 많다는게 대다수 진폐노동자들의 판단이다
현행 진폐특별법에 의하면 진폐환자는 병원에 입원해야만 하는 급성기의 경우에만 휴업급여와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어 그러지 못한 만성기의 재가 진폐환자들은 급성기의 진폐환자와 다름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신들이 정한 9가지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휴업급여도 지급하지 않고 입원도 시키지 않은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 입원하지 못한 재가 진폐환자들은 이제 하나 둘씩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2001년 9월 15일 ‘진폐환자보호 종합대책마련’ 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안정적 생활보조금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부는 이렇다 할 언급없이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주무부서인 노동부는 재가 진폐환자의 종합대책마련에 대해 약속했던 바를 조속히 이행하여야 한다.
10월24일 재가 진폐노동자들은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앞에서 ‘진폐환자 생존권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고 릴레이 단식투쟁에 돌입을 하였다. 환자들이 평균 60~70대로 몸은 많이 힘들지만, 최소한의 치료받을 권리와 생계비 지원없이 굶어죽느니 차라리 대정부 투쟁이라도 하다가 죽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2차 투쟁을 기약 없이 무기한으로 진행하고 있다.
재가 진폐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그동안 지하 탄광 막장에서 적게는 20~30년 많게는 40년 동안 석탄을 캐다 진폐증에 걸려서 당연히 치료받을 권리를 달라는 것과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생계비라도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이미 많이 병들고 늙어버린 진폐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얼마남지않은 인생 편안하게 치료받고 고통없이 살고 싶다고.
지금 현재도 강원도 태백, 정선에서 춥고 어려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늙은 노동자들은 힘차게 투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