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환경과 노동자 :
철도 산업 편
한노보연 김재광
이번 시간에는 궤도산업 중에 철도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궤도산업을 구분하면 도시전철인 지하철과 지상을 주로 운행하는 철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철도 , 열차 등은 우리 시민들과 익숙한 교통수단입니다. 철도를 움직이게 하는 노동자는 기관사 만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할 텐데요. 철도에 종사하는 여러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망재해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 통계를 보면 모두 297명의 철도노동자가 노동재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마다 30명꼴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건데요, 매년 철도노동자 1만명 당 10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수치는 전체 노동자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다고 하겠습니다. 아주 위험할 것 같은 직업, 예를 들어 우리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소방관보다도 더 높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철도노동자의 작업환경은 화재 현장보다 더 위험하답니다. 불이 나면 당장 도망쳐 나와야 하는데, 철도노동자는 그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셈이죠. 특히 시설 직종은 철도에서도 가장 열악하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대책 없이 방치되는 노동 환경
침목을 점검하고, 철로를 수리․보수하는 ‘시설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시설노동자’들은 대부분 일근입니다. 그러니까 야근을 하는 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가장 사망률이 높습니다. 그만큼 일이 더 위험하다는 뜻이 되겠죠. 열차를 멈추고는 일을 하지 못니까 알아서 열차를 피해야 하고, 이러다 보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거나 대형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특히 1인 작업인 경우 위험을 알릴 동료가 없어 더욱 위험합니다.
열차의 차량은 자유자재로 이었다 붙였다 하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물량과 행선지에 따른 탄력적인 운행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노동자를 ‘수송노동자’라 합니다. 혹시 ‘비승비강/돌방’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비승비강’은 뛰어타고 뛰어내리기, ‘돌방’은 열차 멈추기 않고 연결 또는 분리하기를 의미하는 철도 노동자의 은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승비강’이나 ‘돌방’은 철도공사에서도 공식적으로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력감축으로 인해 사람이 없다 보니 이러한 위험한 작업방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수송노동자의 말에 의하면 공식 지침대로 근무하다가는 열차가 서울역에서 부산까지 그냥 서 있을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합니다.
기차가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고압의 전기의 힘을 이용하게 됩니다. 이것을 담당하는 노동자가 ‘전기노동자’입니다. 전기노동자의 경우 당연히 감전의 위협이 큽니다. 전기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전기를 ‘죽이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차를 멈출 수 없다는 현실속에서 ‘활선’, 즉 전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감전 사망 및 중대재해를 구조적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 기차가 제시간에 출발하고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차니까, 기차는 원래 그런 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해당 노동자에게는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생각인지 깨닫게 됩니다. 열차가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데서 그냥 일하고,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리고, 뛰어 타고, 전기를 끊지도 않고 전기 작업을 하죠, 이러니 철도 현장이 화재 현장보다 더 위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철도 같은 경우는 위에서 내려오는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명령 체계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 일을 직접 할 노동자가 보기에 아주 위험한 작업이면 그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있는데, 현장 노동자가 그런 권리를 행사하기가 아주 어려운 겁니다.
열차를 운전하는 ‘운전/운수노동자’도 사정은 어렵습니다. 운수노동자는 교대제 중 교번제라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번 출근 시간과 퇴근시간이 달라 교번표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자신의 출근 시간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노동자의 생활은 대단히 불규칙하고, 사회생활 역시 일반인과 같이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야간노동과 불규칙한 노동은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위장장애, 수면장애, 정신장애, 만성피로 등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인력감축 지하철/도시철도구조조정 이후 노동재해 사망률이 15%나 증가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과로사 비율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인력감축 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에 노동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살펴보면 60% 이상이 10년 이상 철도에서 일한 노동자라고 합니다. 입사한 지 6개월 미만의 초보자가 사망한 경우는 전체 사망자의 3%정도 밖에 안되구요. 그러니까 일에 미숙해서, 또는 작업장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일을 오래했고 아주 잘 알고 있는 노동자 역시 꼭 사고가 아니더라도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는 겁니다.
철도 노동자의 안전과 시민의 안전
누구나 열차는 정확하고, 빠르고,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열차는 저절로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도와 관련된 노동자들이 정확하고, 빠르고, 안전하게 일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정확하고, 빠른 것을 원한다면 그만큼 일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안전하길 바란다면 일하는 노동자가 안전해야만 된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철도의 노동자는 지속적인 인력감축 상황에 있으면서도 빠르고 정확하기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충분한 인력 없는 운영은 결국 철도를 안전하지 않게 만듭니다. 노동자의 목숨 값으로 시민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것은 야만이며, 결국 시민의 안전과 편의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열차가 제시간에 오는 것은 상식입니다. 상식적인 일은 상식적인 노동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상식을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극단적인 비상식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음호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