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한노보연 상근활동가 ‘콩’
벌써 3월이다. 올해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은,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데모 한번 제대로 해볼 수 있을까? 매년 5월과 11월이면 큰 집회들이 있지만, 어딘지 점점 옛날 학창 시절 애국조회처럼 형식적인 행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집회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꼭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문득, 2년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서 당시 일기를 찾아보았다.
2006년 11월, 노동자대회를 마친 뒤에 적은 일기였다. 그 해 노동자대회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총궐기 투쟁 속에 열렸다. 연구소는 하이텍 공대위와 함께 노동자대회를 치렀다. 전야제에서는 하이텍 공대위 연대주점을 했고, 본 대회에서는 공대위가 함께 가판대를 차려놓고 선전을 했다. 한미FTA, 비정규악법, 노사관계로드맵, 산재보험 개악 등 총파업 총궐기 투쟁 4대 의제에 대해, 그리고 산재로 해고당하여 자살한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손창현 동지의 일에 대해 알리고 나누려 했다.
우리는 열심히 준비했고, 신명나게 임했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 아쉬움도 많이 남았던 것 같다. 내가 직접 뭔가 할 만한게 있는 데모, 자발적으로 나서는 데모, 재미있고 신명나는 데모, 절망과 분노를 확 터뜨릴 수 있는 데모,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임을 느끼고 즐기는 데모, 우리의 꿈과 우리의 현실에 대해 우리 자신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하는 데모, 그렇게 “생난리”나 “야단법석”을 만드는 데모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 2006년 11월 13일의 일기
# 서울에서 열린 집회고, 회원들 집중하자고 공지도 했는데, 서울회원은 꼭 다섯명이 참석했다. 자기 사업장이나 소속 단위가 따로 모이는 회원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일요일 낮시간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열린 '평화적 집회'에서 우리 회원들과 단 몇시간을 함께 하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렇다고, 평화적 집회라서 안온건 아니잖아!!) 함께 하는 것, 함께 보는 것, 함께 느끼는 건 정말 중요하다. 오죽하면 성경에도 '모이기에 힘쓰라'고 했을까. 모이는 건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시청 앞에 가판대를 준비하고 서있는데 저 쪽에서 하이텍 지회장과 부지회장이 큼지막한 박스를 낑낑거리며 들고왔다. 공대위 식구들 점심을 먹이겠다고 도시락 20인분을 둘이서 들고 온 거다. 지난 주 내내 일본원정투쟁, 서울지부 순회투쟁, 남부지역 총력결의대회, 재판, 전야제 주점 등의 일정으로 단 하루도 푹 쉬어본 적 없을텐데, 왠 오바질이야!!! 그 마음이 너무 좋다. 이들 역시 도처에 있는 내 스승들에 속한다.
#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딱 삼일만 우리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짱짱하게 연설하시던 이소선 어머님은 이제 단상에 올라 세월을 걱정하고 노동자를 염려하신다. 걱정이 많아지시는 건 비단 당신께서 늙어가시기 때문만은 아닐 터...
# 조준호 위원장의 총파업 지침 1호는 말의 높낮이마저 미리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총파업 선언에 따라 내지르는 함성 소리는 '이쯤에서 함성을 질러줘야겠군'하고 작위적으로 내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몇년 전, 모사업장 최초로 파업에 돌입하던 날 밤,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던 위원장의 떨리던 목소리와, 막힌 숨을 터뜨리듯 '이야호~'하고 환성을 지르며 종이를 던져올리던 노동자들의 함성이 떠올랐다. 그 파업은 비록 몇시간만에 끝났지만, 추운 겨울 밤 공기를 흔들던 '진짜 함성'의 감동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거다. 그런 함성, 꼭 다시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언젠가부터 대규모 집회는 지인들과 인사나 나누는 사교장으로 전락하거나, 집회 자체와 거리를 둔 채 삼삼오오 모여 주최 측을 씹어대는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시위에 참여한다는 건 뭐냐'를 슬슬 되짚어가는 중이고, 작은 종이 한장이라도 써서 나가는 것, 몸벽보나 스티커 하나라도 붙이고 나가는 것, 내가 무엇을 주장하러 이곳에 나왔는지를 알리는 'demonstration'의 본래 취지를 살리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생각중이다.
물론 총파업을 꼭 하자고 선전물을 내걸고 서있는다고 총파업이 조직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게 총파업 투쟁에 대한 바람과 주장을 표현하는 일의 가치마저 깎아내릴 수는 없을게다.
다행히 연구소 재정이 썩 궁하지 않아, 십수만원을 들여서 현수막도 만들고 쟁반도 만들고 우드보드에 비닐도 씌울 수 있었고. 다행히 함께 상근하는 동지랑 죽이 맞는 편이라 같이 가위질 풀질을 하면서 선전물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제 관건은 그걸 같이 들고 나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번 대회처럼 큰 자리에서, 여러 회원들이 왁자하게 모일 수 있다면, 광장을 가득 메운 이들 속에서 우리의 주장을 좀더 힘차게 떠들 수 있겠다 싶었다. 행사를 구경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직접 집회와 시위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제법 근사한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직접/스스로/재미있게/쌩난리를 벌이는 우리 만의 집회 문화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단상위와 단상아래의 구분을 허물고, 선봉대와 '일반대오'의 구분을 허무는 것, 그것 역시 거창하게 말로 떠들 게 아니라 직접 하나씩 해보면서 바꾸어 가는 거라 믿는다.
이번에는 거기까지 못갔다. 사람이 없었다. 다음에는 꼭 그렇게 해보고 싶다. 왠지 그건 연구소 "밖"의 사람들과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하여튼, 그래서 난 다음을 기약하며 눈 부릅!! 주먹 불끈!! 해본다.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