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황유미를 죽였나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 황유미 님께 드리는 詩
시인 송경동
당신의 영전에 나는
무슨 말을 바쳐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꽃을 놓아야 할지
어떤 향을 피워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꽃의 향기가 아닌 바람의 향기가 아닌
밤낮없이 실험실의 모르모트처럼
독성화학물질만을 흡입하며 살다가
혼탁해진 당신의 피를, 얽혀버린 당신 영혼의 회로를
나는 어떤 진혼의 세정제에 넣어
원한없이 맑게, 아픔없이 밝게
세척해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세척액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곳이 차라리 어느 막장 진폐의 어둔 터널이었다면
진시황릉의 수은이었다면
히로시마와 체르노빌의 방사능이었다면
원진레이온의 중금속이었다면
한국타이어의 돌연사였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당신은 단지 방독면을 쓰고 들어가야 하는
어느 밝은 클린룸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채
죽음의 용액에 반도체를 씻어내며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그런 당신 영전에
나는 어떤 소망의 만장을 걸어주어야 할까
어떤 사랑의 만가를 불러주어야 할까
누구를 불러 곡하게 해야 할까
어떤 찬서리가 그대를 꽃봉오리 영글기도 전에
말려 죽였다고 해야 할까
어떤 보이지 않는 비수가
당신의 코와 입과 눈과 귀를 뚫고 들어갔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사회의 생동하는 기운을 좀먹고
일어나는 정신들을 질식시키며
우리 사회를 천천히 죽여가는
저 삼성의 악질 자본 일가라고 얘기하기엔
너무 사실적이어서 안돼,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심드렁해. 나는 누가
스물 셋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을 죽였다고
저 하늘 저 땅에게 고해야 할까
가르쳐다오. 못 다 피어 사그러진 사람이여
당신은 어떤 꿈의 메모리
당신은 어떤 희망의 키판
당신은 어떤 사랑과 연대의 위대한 본체였나
당신은 어떤 더러운 세상을 깨끗이 씻어주고자 한
맑은 세정제였고, 착한 세척자였나
누가 당신을 그렇게 더럽혀지도록 쓰고
함부로 버렸나
말해다오.
지워지지 않는 하얀 피의 상처로 떠나 간 사람이여
전세계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적혈구로
자본의 욕망에 따른 일상적 살인에 다름 아닌
산재 철폐의 투사로 다시 살아오는 사람이여
오늘은 어느 밤하늘 은하수에서
돛대도 삿대도 없이
꿈의 그네를 타고 있나
영면하소서
이제 그만
고통을 내려놓고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