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업 목적과 개요
이번 사업의 목적은 현장에 일상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판매, 남양연구소위원회 노동자의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를 어떻게 악화시키고 있으며, 그로 인해 노동자가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문제는 어떠한지 포괄적이고도 정확하게 실태를 파악하고, 개별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자본의 논리를 깨고 노동자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2007년에 진행된 1차 사업에서는 우선 직무스트레스 실태와 그 결과로서의 건강 실태를 조사하였다. 우선 기초면접 조사를 통해 업무 특성에 맞는 설문지를 만들었다. 설문조사는 2007년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전국의 400여 지점에 흩어져 일하는 판매위원회 노동자들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설문을 시행하여 총 1,586명(2007년 10월 현재 판매위원회 조합원 6,585명 중 24.1%)이 참여하였고, 남양연구소위원회 노동자들은 조합원 교육 시 교육위원의 안내 하에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총 2,746명(2007년 현재 남양연구소위원회 조합원 4,066명 대비 67.5%에 해당)이 참여하였다.
2. 판매위원회 주요 결과
1) 실적과 고객만족을 내세운 구조조정과 현장 통제
현대자동차 자본은 1998년 구조조정을 통해 직영 판매 노동자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고 그만큼의 규모로 대리점을 양성하였다. 차량 판매에 필요한 인력 규모는 그대로 유지한 채 절반 가량의 노동력을 외주화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했을 뿐 아니라, 판매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개인-개인, 지점-지점, 지점-대리점 등으로 중층 강화함으로써 높은 시장점유율을 달성한 것이다. 또한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글로비스 등 계열사들을 꾸준히 확장해가면서 자동차 판매와 관련된 금융, 보험, 중고차 유통 등의 사업들을 다각화해왔다. 최근에는 업무 통합과 실시간 관리를 가능케하는 ‘판매금융시스템’을 도입하고 신차 및 중고차 판매 ․ 금융 ․ 보험 ․ 정비 등을 통합하는 ‘블루서비스’, 그리고 이들 사업의 거점을 통합하여 대형화하는 ‘ONE-STOP 서비스’ 를 시도하는 등, 사업 다각화와 업무 통합을 위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판매는 자본의 지상 목표인 이윤을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며, 절대적인 판매량과 상대적인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판매 분야에서 자본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자본은 기본급보다는 실적에 따라 임금이 크게 좌우되는 임금 구조, 실적을 바탕으로 한 개인 포상과 승진, 실적이 높아야 받을 수 있는 각종 업무 지원 등 판매 분야의 모든 것을 실적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다. 또한 실적 중심의 구조에서 개별 노동자가 이탈하거나 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점 단위로 집단적인 실적을 평가하여 우수 지점에게는 집단적 지원과 포상을 주고, 실적이 낮은 노동자에게는 임금이나 업무 지원상의 상대적 불이익과 더불어, 동료들로부터의 고립과 장차 구조조정 대상의 될 수도 있다는 불안까지 떠안겨왔다.
이처럼 실적을 강조하면서도 기본적인 영업 활동을 위한 판촉물조차 노동자들이 사비를 털어 만들어야 할 정도로 업무에 대한 회사의 지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합리적인 지원은 고사하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강요하며, 그 부담과 책임을 판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선출고는 자본의 시장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허위 매출을 조장하고 그에 따른 부담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사업 다각화와 업무 통합의 결과로 파생된 중고차 판매나 대출, 보험, 카드 업무들도 모두 고스란히 판매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으로 더해졌다.
실적과 함께 판매 노동자에게 강조되는 것은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이다. 고객만족은 사업 다각화와 업무 통합의 명분으로 사용되는 한편, 생산 현장에서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강조하며 자본의 논리에 노동자를 포섭하고 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판매 노동자들을 실적 중심의 구조와 자본의 논리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실적중심의 구조를 바꿔야만 한다. 그래야 판매노동자 개개인이 겪는 판매하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나아가 파업을 하게 될 경우 판매하중이 더 커져서 파업을 반대하거나 꺼려하는 양상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 강화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요인 평가 도구를 이용한 조사 결과, 현대자동차 판매 노동자들의 주요 직무스트레스 요인은 조직체계 요인, 직무 불안정 요인, 관계갈등 요인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직장문화에 따른 직무스트레스 요인도 다른 업종 노동자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조직체계 요인은 실적과 고객만족을 강조하면서도 이에 따른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비합리적인 운영 구조와 관행이 원인이며, 직무 불안정 요인은 과거 대대적인 정리해고 이후 일상적으로 진행 중인 업무 및 거점 통폐합의 위협에서 비롯된 것이고, 노동자 사이의 갈등과 고립을 뜻하는 관계갈등 요인 역시 지점과 대리점, 지점과 지점, 노동자와 노동자를 분할하고 경쟁시키는 구조 때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조직체계와 직무불안정, 관계갈등 이외에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요인 평가 도구로 조사한 나머지 직무스트레스 요인들은 언뜻 표면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요인 평가 도구만으로는 판매 노동자들 고유의 업무 특성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일 뿐이다. 가령 이들이 심각한 업무 부담 증가(직무요구에 따른 스트레스 증가)를 겪고 있음을 다른 지표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육체적인 노동강도를 평가하는 보그 지수 평균은 12.9로 ‘힘듬’수준이며, 현재 자신의 노동강도가 적절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44%에 불과하다. 업무를 마칠 때 느끼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호소하는 노동자는 각각 79%와 44%에 달하고 있다. 판매 노동자들은 심각한 피로를 느끼지 않으려면 현재 업무량의 37.4%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재량권과 결정권이 부족함을 뜻하는 직무자율 요인도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요인 평가만으로는 그 현실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현대자동차 판매 노동자들은 다른 산업의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기 업무에 대한 재량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재량권에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판매 노동자들에게 고도의 재량권을 부여하는 데에는, 업무에 따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극심한 경쟁 속에서 업무를 개별화하여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미 판매 노동자들이 자기 월급을 털어 업무에 사용하거나 여가시간마저 고객 관리를 위해 써버리는 등 판매 실적을 중심으로 한 질서에 순응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에게 주어진 재량권은 곧 ‘자발적인 노동강도 강화’로 귀결되기도 한다.
3) 훼손된 노동자의 건강과 일상
평균 연령 39.4세인 판매 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판매 노동자의 약 77%는 중등도 이상의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들의 피로 원인은 대개 일과 관련된 것이다. 만병의 연구소리포트근원이 되는 만성 피로 뿐 아니라 실제 건강 지표 또한 심각하다. 일반 인구에 비하여 주관적 건강 인식 수준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위궤양 ․ 고지혈증 ․ 치질 ․ 부비동염 ․ 알레르기성 비염 등 노동조건이나 스트레스와 관련이 높은 만성 질환들의 유병률도 높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의 증상자 31%를 포함하여 약 70%가 근골격계 증상을 경험하였으며, 이 중 84%는 증상이 업무와 관련된 것임을 자각하고 있다. 정신 건강의 위험을 뜻하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측정 결과, 건강군은 1.65%에 불과한 반면 약 44%가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울 수준을 측정해보니, 27% 가량의 판매 노동자들이 중등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갖고 있다.
판매 노동자들의 건강 관련 생활 습관 또한 상당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판매 노동자들 중 40%가 출근하지 않는 날 스포츠나 레저를 즐긴다고 했지만, 건강을 위해 정기적인 운동을 하는 경우는 30%도 되지 못한다. 즉, 휴일에 즐기는 스포츠나 레저는 본인의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고객을 찾고 관리하는 영업 업무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비용 부담과 피로 때문에 TV보기나 밀린 잠 자기 이외에 별다른 여가를 즐길 수 없는 판매 노동자들에게서 흡연율이 46%를 넘는다는 사실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별로 없음을 시사한다.
4) 스트레스 없는 일터를 위한 제언
(1) 일상적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과 대응
최근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동조건의 변화들이 장차 본격화될 구조조정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식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가령 판매금융시스템이나 N-TOPS의 도입은 여러 사업 부문을 통합하는데 필요한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런 전산시스템 도입이 단지 사무직의 일자리를 위협할 뿐 아니라, 영업직 노동자를 비롯하여 판매 이외의 부문까지도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고 고용을 줄이는 등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배경을 현장 노동자들이 왜곡없이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한편 자본은 복합 대형 거점을 도입하기 위하여 판매 거점의 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일부 거점들의 통폐합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총 거점 수를 줄일 수 없도록 단체협약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일각에는 노동자 스스로 거점 통폐합이 판매 환경 개선과 실적 향상에 이로울 것이라는 정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지역별로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런 차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판매 대수로만 실적을 평가해온 관행이야말로 불합리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실적과 무관하게 쾌적한 노동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판매 환경 개선을 내세운 거점 통폐합을 명확히 반대하고 현재 거점의 환경을 개선하자고 요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이다. 그 출발은 목표판매량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면서, 왜곡된 임금체계와 판매실적 중심의 구조를 혁파해 나가야 할 것이다.
(2) 실적 지상의 구조에 대한 실천적 거부
모든 것을 실적으로 평가하고, 실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실천적인 거부 투쟁이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출고를 비롯하여 노동자가 개별 부담하는 가격 할인이나 각종 용품 제공 등의 관행이며, 기본급이 취약하여 실적에 따라 변동이 심한 임금 구조나, 실제 판매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실적만으로 평가하는 관행 또한 실적 지상주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현재 노동조합을 통하여 회사가 조장하는 선출고 수준을 일정 수준에서 조율하고는 있으나, 단지 여기에 머무른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실적 지상의 구조가 불가피함을 인정해주고 그 폐해에 사전 동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까지 거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장 토론부터 시작하여, 지회 수준에서부터 전국 차원에 이르는 다양한 거부 투쟁들을 시도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3) 노동자 단결과 직접 행동의 복원
현대자동차 자본은 판매 노동자들을 직영과 대리점으로, 영업직과 사무직으로, 지점과 지점으로 분할하여 개별화시켜왔다. 그 결과 직영과 대리점의 갈등, 영업직과 사무직 사이의 몰이해, 지점이나 개별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 등이 현장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과 몰이해, 경쟁은 노동자를 더욱 개별화시키며, 자본의 구조조정과 현장통제에 맞설만한 노동자의 필요를 왜곡하고 저항력을 분해해버린다.
자본의 경쟁과 실적 논리에 맞서, 그리고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과 현장 깊숙이 뿌리내린 실적 지상주의에 맞설 노동자의 무기는 단결과 연대 뿐이다. 익명의 스티커 투표를 통해 자기 의견을 드러내기, 지점 차원의 포상 거부하기, 업무를 위해 지출한 비용 집단 청구하기 등, 작더라도 일상적이고도 구체적인 직접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3. 남양연구소위원회 주요 결과
1) 경쟁력 강화를 내세운 노동강도 강화
자동차 산업에서 신차 개발기간 단축은 자본으로 하여금 개발 비용을 줄여 원가를 절감하고, 개발단계부터 투입된 자금을 보다 빠르게 회수하며, 시장의 수요 변화에 맞추어 적기에 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경쟁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세계 자동차 자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신차 개발기간 단축에 힘을 쏟고 있으며, 그 결과 1980년대 당시 7~8년에서 2000년에는 3~4년으로, 지금은 18~20개월 수준으로 단축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자본 역시 세계 시장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2002년 남양, 울산, 기아소하리 연구소를 통합한 이래 신차 개발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대폭 단축시켜왔으며, 하나의 차량을 기반으로 생산되는 품종을 더욱 다각화해왔다. 그러나 도요타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구개발 인력 규모로 세계 수준의 개발기간 단축과 다품종화 추세를 따라가다보니,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어왔다. 앞으로 현대자동차 자본은 2007년 현재 22개월의 개발기간을 더욱 줄여 2010년까지 18개월 수준으로 낮추겠노라 호언하고 있으니, 그에 따라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 우려된다.
2) 수직적 통제와 수평적 분할을 통한 현장 통제
현대자동차 자본이 그동안 가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개발기간을 단축하고도 별다른 노동자의 반발과 저항을 받지 않았던 배경에는 남양연구소의 조직체계와 운영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
1996년 현대자동차 자본은 남양연구소 내에 팀제를 도입하여 센터-실-팀-워킹그룹의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워킹그룹 안에서 그룹장은 일상적인 관리 통제권을 행사하며, 이들 그룹장들 위로는 다시 팀장, 실장, 센터장들이 막강한 위계적 권력을 행사한다. 업무 지시는 물론 고과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상급자들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노동자에게 큰 위협으로 작동한다. 때문에 불합리한 지시에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했던 경험은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에게 매우 보편적이다. 센터-실-팀-워킹그룹의 조직 체계는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을 수평적으로도 분할한다. 노동자들은 각 센터들과 프로젝트 그룹들 안에서 공동의 성과와 목표를 향해 노동하며, 서로 다른 소속의 노동자들과 업무 이외의 인간적인 교류는 매우 드물다.
남양연구소 안에는 연구직과 생산직, 일반직 등 세 직군이 있는데, 현대자동차 자본은 이들 세 직군의 차이를 구조적으로 강화하면서 노동자들을 또다시 수평적으로 분할한다. 같은 팀이나 그룹 안에서 일을 하는 연구직과 생산직 노동자들은 동료로서의 공통점보다는 직군에 따른 차이를 더욱 크게 느낀다. 나이나 근속기간, 학력 등 개인 인적 사항은 물론, 임금체계나 평가 및 승진 구조 등 노동조건과 노동자 사이의 관계 및 문화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 참여나 노동자들끼리의 교류, 집단적 문화가 상대적으로 활발한데 비하여, 연구직 노동자들은 같은 워킹 그룹 안에서조차 서로 경쟁하거나 고립된 채 일하고 있다. 이런 연구직의 업무특성은 연구직 노동자들에게 맡은 과업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조직운영방식이나, 고과에 따라 승진을 결정하고 승진에 따라 임금 규모를 결정하는 연구직의 월급제 임금체계 등 구조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 강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주요 직무스트레스 요인은 조직체계과 직장문화 요인으로 나타났다. 조직체계 요인은 연구직, 생산직, 일반직을 막론하고 가장 심각한 직무스트레스 요인이다. 남양연구소의 조직 구조가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전달이 불가능한 권위적인 수직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나, 인적 ․ 물적 자원이 부실한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동자들을 쥐어짜왔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직장문화 요인(조직 내 합리연구소리포트적 의사소통 결여나 직무간 갈등에 따른 직무스트레스 요인)의 위험이 크게 나타났다는 것도, 노동자를 수직적 권위로 통제하고 수평적으로 분할하는 남양연구소의 조직 구조와 운영방식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남성 연구직 노동자들을 제외한 모든 직무의 노동자들에서 동료나 상사들로부터의 지지가 부족함을 뜻하는 관계갈등 요인도 전국 참고치에 비해 고위험을 보이고 있다.
공통적인 직무스트레스 요인들 이외에 직무에 따라 고위험 요인으로 나타난 내용들은 각 직무의 노동조건과 집단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연구직 노동자들에게서는 직무요구 요인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는데, 그 배경에는 연장근무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장시간 노동을 일상적으로 해야하며 과업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노동조건이 존재한다. 근골격계 질환이나 사고의 위험이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조건에서 일해온 생산직 노동자들에게서는 물리적 환경 요인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평균 연령이 40세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현재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거나 이후 새로운 구직 기회를 갖기 어렵다고 느끼는 생산직 노동자의 현실은 이들의 높은 직무불안정 요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재량권과 결정권이 부족함을 뜻하는 직무자율 요인은 남성의 경우 모든 직무에서 전국 참고치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여성 연구직과 일반직 노동자들의 직무자율 요인은 전국 참고치보다 낮았으며, 특히 여성 연구직 노동자들에게서 상당히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남양연구소 여성 노동자들이 다른 산업의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기 업무에 대한 재량권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런 재량권에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노동자에게 많은 자율성과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업무에 따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업무를 개별화하여 노동자들의 상호 연대를 차단하고, 동시에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노동강도 강화를 유도하는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4) 훼손된 노동자의 건강과 일상
평균 연령 33.4세인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남양연구소 노동자의 약 77%는 중등도 이상의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데, 87%는 자신의 피로 원인이 일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만병의 근원이 되는 만성 피로 뿐 아니라 실제 건강 지표 또한 심각하다. 일반 인구에 비하여 주관적 건강 인식 수준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추간판탈출증(디스크) ․ 위궤양 ․ 간경변증 ․ 고지혈증 ․ 치질 ․ 알레르기성 비염 ․ 악관절 질환 등 노동조건이나 스트레스와 관련이 높은 만성 질환들의 유병률도 높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의 증상자 28%를 포함하여 약 63%가 근골격계 증상을 경험하였으며, 87%는 증상이 업무와 관련된 것임을 자각하고 있다. 정신 건강의 위험을 뜻하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의 건강군은 2.63%에 불과하였고 약 30%가 고위험군으로 나타났으며, 우울증상 수준 조사 결과 12.5%는 중등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갖고 있다.
건강 관련 생활 습관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생활 습관들이 노동자들의 집단적 경험과 노동조건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가령 건강을 위하여 주 3회 이상 정기적 운동을 하는 경우는 생산직 약 40%, 연구직 약 21%, 일반직 약 15%이며, 전혀 운동을 하지 않는 경우는 일반직 약 47%, 연구직 약 41%, 생산직 약 21% 순으로 나타났다. 일산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연구직이나 일반직 노동자들은 운동을 할 시간이나 정신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 반면 생산직 노동자들은 음주나 흡연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업무량과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를 통하여 건강을 유지할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업무량이나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조합 차원의 집단적 통제가 단지 노동시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여가시간의 내용이나 질에 있어서도 생산직 노동자들은 연구직이나 일반직 노동자들보다 더 나은 상태로 나타났다. 그 결과, 생산직 노동자들의 건강 지표들은 평균 연령이나 근속기간이 10년 이상 차이나는 연구직이나 일반직 노동자들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4) 제언
자본의 세계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신차 개발기간 단축과 다품종화를 추진해온 결과,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은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 강화, 그리고 인간다운 삶과 건강의 훼손을 겪고 있다. 세계시장 5위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현대자동차 자본은 남양연구소를 중심으로 신기술 개발과 개발기간 단축 등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할 것이며, 그 결과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직무 스트레스는 더욱 악화될 것이 예상된다.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앞에 더 이상 노동자의 몸과 삶을 희생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노동조합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개발 계획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중심으로
자본이 그동안 절대 불가침의 가치로 삼아온 개발 계획 일정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의 필요를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 완화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자본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생산 공장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계획된 생산량을 달성하려 하듯이, 연구소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개발을 완료할 것을 요구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황폐해지는 노동자의 건강이나 삶은 자본의 관심사가 아니다. 따라서 노동자가 건강하고 인간답게 일할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잣대에 맞서는 노동자의 잣대를 만들고 요구하고 쟁취해야 한다. 생산공장에서 자본이 정해주는 생산량과 생산속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맨아워(Man-hour)를 낮추도록 주장하고 투쟁하듯이, 남양연구소 노동자들도 비인간적인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개발 계획 일정이 절대 불가침의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이론과 실천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본의 개발 계획이 아니라 ‘심각한 피로를 느끼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평균 31.5%의 업무량을 줄여야 한다는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필요를 바탕삼아 노동자의 잣대를 구체화하는데 지혜와 힘을 모아가야 한다.
(2) 일상의 권위적 통제에 저항하는 조직적인 불복종
수직적 위계질서와 다단계식 통제 방식으로 노동 강도를 강화시키는 데에 맞서는 크고 작은 불복종을 조직적으로 시도하자.
불필요한 부수 업무 증가는 개발기간 단축과 다품종화 추진만큼이나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수직적 위계질서는 현장의 여건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급자들의 불합리한 지시가 난무하게 만들고, 특히 연구직 노동자들의 경우 임금과 승진 문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와 고과권을 상급 관료들에게 부여하여 개별 노동자들이 부당한 업무 지시에 쉽사리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든다. 건강하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면 이러한 관행과 구조를 바꾸기 위한 조직적 노력과, 바꿀 수 있다는 구체적이고도 집단적인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불필요한 업무와 부당한 지시를 바꾸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일상적으로 경험해 온 불합리한 지시들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수동적으로 지연시키는 불복종 운동을 시도해 보자. 가령 자본은 그룹이나 팀 차원의 실적에 연연하는 상급자들을 통해 연구직 노동자들에게 매년 2개 이상의 특허를 취득하도록 종용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연구직 노동자 스스로 ‘특허 안 따기’ 불복종 운동을 만들어내고 확장하면서 직접 행동과 저항의 경험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3) 자본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일상 활동 강화
노동자를 수평적으로 분할하고 개별화하는 현장통제를 깨고 노동자로서의 공동체 의식과 단결의 기풍을 만들어가기 위한 일상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남양연구소 내의 연구직, 생산직, 일반직 중에서도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건강 지표가 상대적으로 나은 것은, 이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통한 집단으로서의 경험과 노동자 의식을 축적해온 결과이다. 그러나 생산직 노동자들도 다른 직무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개발계획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현대자동차 자본의 공세 앞에서 몸과 삶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자본의 개발계획 지상주의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직무의 경계선을 넘어선 남양연구소 노동자 전체의 단결이 필요하다.
이러한 단결은 일회적인 선언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자본조차 업무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팀이나 워킹그룹 차원의 회식을 일상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연구직, 생산직, 일반직 노동자들이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은 계기들을 수없이 만들어 내면서 자본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나드는 노동자의 교류와 공동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날마다 식당 앞에서 차 한잔씩 나누어주며 한두 마디 인사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가슴 속에 쌓인 불만을 쏟아내는 화장실 낙서판을 운영하고 공감 순위를 매겨볼 수도 있고, 많은 시간이 걸리는 운동경기 대신 몇 분도 걸리지 않는 다트 맞추기를 곳곳에 설치해 볼 수도 있다. 꾸준하고 일상적인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남양연구소 구석구석에서 노동자 단결과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작은 실천을 당장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