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8/4월/특집] 특수고용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하여

특수고용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는
노동자성 인정이 우선


한노보연 집행위원 김 재 광


사용자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다?

최근 개정된 산재보상보험법은 올해 7월 1일부터 가입에 있어 특수고용노동자의 일부(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레미콘기사, 보험설계사)를 제한적으로 적용하기로 하였다. 노동부를 중심으로 그동안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인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적용이 확대되었음으로 제도의 진전이라는 시각이 있으나,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애초의 4가지 직종 외에도 적용대상 논의가 있던 직종의 제외 면에서도 그렇고, 보험부담 책임도 그렇고, 근본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의 인정 여부에서도 시원한 구석이 없다.

특수고용노동자(정부는 이들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한다)는 가장 질 낮은 고용형태이다. 사용자 측에서는 ‘특수고용’이라는 형태가 해당 종사자의 자율성 보장과 성과에 따른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지극히 표면적인 점을 들어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를 덮으려 하나, 정부조차 인정하듯 실상은 다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겉으로는 세법상 사업주이나, 실상은 노동과정과 행태에 있어서 실 사용 자에 종속된 ‘노동자’다. 사용자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일반 노동자와 똑같이 감독권과 종속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윤을 획득하고, 법제도 상의 사용자의 의무는 피해가는 왜곡된 고용형태인 것이다. 특히 98년 경제위기 이후 사용자의 비용절감과 사회적 책무를 회피하기 위해 양산되어 현재 180만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심각성으로 인해 이미 2001년 7월 23일 노사정위원회 산하 ‘비정규직근로자대책특별위원회’가 발족되어 대책논의에 들어간 바가 있다. 그러나 기간제와 파견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주로 논의되고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논의는 심도있게 다루어지지 못하였다. 더구나 ‘비정규직근 특 집 1 로자대책특별위원회’ 이후 현재까지 정부의 모든 논의는 ‘권리 실현’를 중심에 두고 진행되었던 것이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보호’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정작 특수고용노동자가 원하는 ‘완전한 노동자성’ 보장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실효성마저 의심되는 ‘일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적용이 입법화 된 것이다.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되고 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대법원 역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의 판별에 있어, 민법상 고용, 도급, 위임계약 등 그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였다. 이에 판단 지표로 크게 △노무제공의 방식 △ 보수여건 및 성격 △ 사업조직의 결합성 △ 법령상의 지위 등을 살피고 있다.
위 법 규정과 판례를 보면 ‘형식과 관계없이 사용종속 관계에서 발생하는 주 수입으로 생활하는 자’를 법상 ‘근로자’라 할 것이며, 이에 해당한다면 현재 한국에서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사업주의 의무를 강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실에서는 정부와 자본이 전면적으로 권리를 확대하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몇가지 특별한 시혜 조치로 모든 정당한 권리를 봉합하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는 7월 시행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적용’ 산재법 개정안은 여전히 입맛이 쓰다.


비정상적 고용형태는 노동자 건강의 적

화물, 레미콘, 보험모집인, 퀵서비스, 택배종사자,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간병인, 각종 A/S종사자, 텔레마켓터 등 모든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세무서에서는 개인사업자로 ‘사장님’ 취급받으나. 이는 빛 좋은 개살구이다. 이들은 대부분 성과를 중심으로 급여를 받고, 항시 시간과 싸우고, 고객의 평가에 민감하며, 모두 경쟁적인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 이 결과 건강상의 문제는 필연적이다.

예컨대 운송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이 기본이다. 운송노동자는 노동시간이 기준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물량을 수송했느냐에 달려있다. 소위 몇 ‘탕’을 뛰었는가에 따라 자신의 임금이 달라지는 것이다. 화물 물동량에 대한 자율성은 노동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화주 혹은 운송대행사에 있다. 운송 노동자는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졸음과 싸우면서 운행하는 장시간 운전으로 상시적인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 결과 위장장애, 근골격계질환, 정신질환에 노출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소화물 운송노동자(퀵, 택배) 역시 목숨을 내걸고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학습지교사나 각종 A/S노동자들은 ‘고객’과의 관계로 인해 대면 접촉의 스트레스를 상시적으로 받고 있다. 회원에 대한 서비스 뿐 아니라 회원의 확보가 자신의 임금과 연결되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회원유치에 열도 올려야 한다.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지점마다 목표가 있고, 이는 다시 개인별 전체별 성과로 계산되어 인센티브와 각종 유무형의 불이익 등으로 돌아오기에 자신의 판단으로 업무의 완급을 조절할 일이 아니다. 심지어 과다한 실적을 강요받아 영업실적을 부풀리고 손실된 금액을 자신의 돈으로 때우는 일도 횡횡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 과정은 심각한 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운송노동자와 노동과정은 달리할 지라도, 동일한 질환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2005년 고 이정연 교사의 경우처럼 심한 우울증으로 이어져 자살에 이르기까지도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법상 ‘근로자’가 아니므로 노동시간에 대한 제약도, 작업환경에 대한 제약도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의 의무도, 노동자의 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당한 지시와 업무에 반기를 들거 같으면 사용자는 노동자를 계약해지하면 그만이다.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근로자’도 아니기에 부당해고로 다투자니 한숨이 먼저다. 혼자서는 힘겨우니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부당한 지시와 처우를 개선하려고 하면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주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단체협약을 맺어 몇 해 간 지속하였던 학습지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를 고발하니 검찰은 버젓이 존재하는 ‘이 단체협약’은 ‘법상 단체협약’이 아니라고 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적용’
그 실효성은 있을까?


노동부의 자랑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의 실효성은 얼마나 될까?

우선 시행령에 따른 적용 노동자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 180만 명에 이르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상당수가 제외되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레미콘기사, 보험설계사 등은 그동안 대부분 노조를 만들어 상당기간 투쟁했던 직종으로 정부의 ‘목소리를 내는 직종 달래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둘째, 가입이 강제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이다. 일반노동자와 달리 적용에 있어 ‘강제 가입’이 아니라, 사업주가 ‘적용 제외’를 신청할 수 있어, 현실 노사관계 하에서 얼마나 많은 사업주가 순순히 보험에 가입할 지 의문이다.

셋째, 가입 이후 보험료의 납입부담을 사업주와 해당 노동자가 1/2씩 분담하게 되어 있다. (일반 노동자는 사업주 100% 보험료납입 의무, 경기보조원의 경우 사업주 100% 부담의 여지를 두고 있음)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으로서 사업주와 노동자간의 사용종속관계를 기반으로 그 재해 책임을 보험으로 처리하고 노동자에게는 예측불가능한 재해에 대하여 사업주의 지불능력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보상하고, 사업주는 보상의 선 내에서 민사상 책임을 면하는 것이 그 원리이다. 따라서 사업주의 100% 보험료 부담은 당연한 것임에도 이를 노동자와 분담하라고 하는 것은 산재보험 일반원칙에 맞지 않으며, 민간보험보다도 못한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적용’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 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건강문제는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권리와 노동3권이 전면 부정됨으로써 해결의 기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사용종속관계가 명확함에도 형식상의 계약관계를 이유로 그들의 모든 권리가 부정되고 있기 때문에 불건강한 노동환경은 개선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특수고용노동자의 불건강 문제의 근원은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고용형태에서 비롯된다. 실상 이들의 존재를 노동자로 인정한다면, 특별한 규정을 굳이 만들지 않아도 이들의 건강문제는 어느 노동자와 같은 출발선상에 설 수가 있다. 물론 노동자로 인정되었다 하더라도, 곧바로 건강한 노동환경과 정신 그리고 신체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건강은 한국 자본주의 총체적 문제와 긴밀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실현할 통로로서 ‘노동자성’ 인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실현이 녹록치 않은 결정적 이유는 오히려 법제도의 미비가 아니라, 이윤을 한 치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자본의 탐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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