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환경과 노동자를 정리하며.
한노보연, 노무법인 필 김재광
이번 호로써 작업환경과 노동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더 많은 노동현장에 가서 더 많은 노동자분을 만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노동현장을 촬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이 얼마나 안전한지 보기 위해서 산업의학 전문의를 대동하고 촬영을 하겠다고 하면 사업주들 백이면 백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우리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이 어디나 안전하지 않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가 있으니까 보여 줄 수 없는 거죠. 작업환경과 노동자, 마지막 시간에는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 특히 산업재해 실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전쟁터 보다 더한 노동현장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산업재해가 얼마나 발생할까요? 2002년 국제노동기구(ILO) 통계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산업재해 사망자가 매년 2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매일 500명씩, 1분마다 3명씩 사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전쟁시기 보다 더 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적으로 전쟁 희생자 수는 연간 65만 명이라고 합니다. 산업재해 사망자는 200만 명, 그 세배가 넘으니까 노동자들은 우리가 가장 큰 비극이라고 하는 전쟁보다 3배나 더 심한 전쟁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일까요?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산재 사망사고 1위, 사망 만인율 즉 노동자 1만 명 당 사망자수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동부 자료를 보면 연간 노동자 1천 명 중 7.7명, 하루 평균 246명이 재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OECD국가 중 산재 사망사고 1위라, 작업환경과 노동자를 마치며웬만한 나라들 중에서 우리나라가 노동자 살기 가장 안 좋은 나라라는 거네요. 물론 우리나라에서 산재발생률은 변화가 있습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민주노조운동이 발전하면서 현장에서 노동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또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등 법/제도적 보완이 뒤따르면서 산재발생율도 감소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98년 이후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현장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국가 경쟁력과 자본의 이윤을 명분삼아서 각종 규제를 완화하면서 산재 발생율은 다시 증가해서 IMF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의 유형
◈ 사고성 재해
산업재해를 유형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고성 재해부터 이야기해보죠. 산업재해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사고성 재해입니다. 노동재해는 사고와 질병으로 구성되는데, 전체 노동재해 중 90%가 사고성 재해입니다.
사고성 재해자 수 (노동부)
2006년 62,181명
2005년 58,021명
전년 대비 (7.2%) 증가
2006년에 62,181명의 노동자가 사고성 재해를 당했는데요, 2005년에 비해 7.2% 증가한 것입니다.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2007년 1월 1일부터 5월 10일까지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벌써 303명이나 됩니다. 2007년 3월 22일 경남 창원 두산 메카텍 현장에서 52톤 무게의 철판 구조물이 5미터 아래로 추락해서 그 밑에서 일하던 50대의 하청업체 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원청회사 두산메카텍도, 하청업체도, 사업주의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고성 재해의 약 80%가 아주 기본적인 안전/예방조치만으로도 막을 수 있는 재해들입니다. 이러한 재해는 기본적인 안전조치만 해도 막을 수 있습니다. 사고성 재해의 대부분이 5대 재래형 사고라고 하는 협착(끼임), 전도(넘어짐), 추락(떨어짐), 충돌(부딪힘), 낙하·비래(떨어진 것에 맞음)인데요, 기본만 지켜도 막을 수 있는 재해들입니다.
문제는 그런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 기본조차 지킬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우선 노동자가 안전을 생각할 여지조차 없이 일해야 할 만큼 현장의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는 겁니다. 인력 감축·작업량 증가, 다기능화, 효율, 생산성이 제일이니까 “안전제일”은 구호일 뿐 인거죠. 안전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생산보다 노동자의 안전이 먼저라는 원칙이 확고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발상을 할 수 있습니다. 안전운전 캠페인을 떠올리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우리가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안전운전 원칙들이 사실은 작업장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겁니다.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간다는 말이 있죠, 노동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하지 않게 천천히 일해야 하죠. 또 “졸릴 때는 참지 말고 휴게소에서 쉬세요”라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노동자들도 피로하면 그때그때 충분히 쉬어야 안전하다는 겁니다.
그 밖에도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바로 비정규직 대책입니다. 사고성 재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 등 기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없애야 하구요,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 양산하는 비정규직법을 철폐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 질병(직업병)재해
직업병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006년 5월 부산에서 이주노동자가 DMF 중독 급성 간부전으로 사망한데 이어 2007년 4월 11일, 김해의 소규모 합성피혁공장에 다니던 36세 여성노동자가 DMF 중독에 의한 ‘전격성 간부전’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6년 이주노동자 DMF 중독 사망사건을 계기로 노동부가 DMF 특별관리 감독에 나섰으나, 2007년 돌아가신 여성노동자가 일하던 공장은 제조업체로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았고, 노동부는 2006년 마찬가지로 직업병 환자 발생 후에야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시작했습니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안 고친 겪인데, 이런 일이 적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 경기도 화성의 LCD/DVD 작업환경과 노동자를 마치며부품업체에서 일하던 타이 여성 이주노동자 5명이 세척제로 사용하던 노말 헥산에 중독되어 다발성 신경염(일명 '앉은뱅이병')에 걸려서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말 헥산으로 인한 다발성 신경염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찍이 1930년대부터 유명한 직업병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74년에 신발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집단 발병되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고전적인 직업병인 것입니다. 그래서 공업용 세척제나 접착제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은 노말 헥산 중독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사업주는 중독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진 산업보건 상식인데 그게 지켜지지 않아서 노동자들이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병에 걸린 겁니다.
우연치 않게도 위 사례는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 이야기입니다. ‘직업병은 없어지지 않고 옮겨진다’는 게 현실입니다.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되거나, 공장 밖으로 외주화되어 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옮겨지게 되는 것이죠.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직업병이 옮겨지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외국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계화의 최선두에 있는 것이 유해산업 수출입니다. 1998년 미국이 필리핀에 투자한 총 금액 중 무려 41%가 유해산업이었습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도 오래전부터 제3세계로 유해산업을 이전했기 때문에 자국 내 재해율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진레이온 역시 마찬가지인 경우입니다. 원래 일본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이 문제가 돼서 폐기처분하던 기계를 60년대에 사들여 와서 원진레이온 공장을 만든 것입니다., 6백명이 넘는 노동자가 치명적인 직업병에 걸리는 비극이 있고난 다음에야 공장 문을 닫았는데, 1994년에 이 기계가 또다시 중국으로 팔려갔습니다. 중국에서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당했을 지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국내의 경우에는 ‘유해작업 도급금지’ 같은 법적 규제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사문화 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국제적인 유해산업 수출은 FTA를 비롯한 세계화를 앞세워 오히려 더욱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규제 강화 뿐 아니라 국제적인 반세계화 운동이 함께 필요한 상황입니다. 반세계화라는 것이 그냥 먼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것, 우리 삶과 직접 닿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 과로사, 정신 직업병
과로사, 정신직업병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2007년 4월 14일 업무스트레스로 우울증 치료 중에 있던 증권노동자가 회사 체력 단련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2000년 이후에만 20여명의 증권노동자가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와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과로사/정신직업병 등은 증권노동자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입니다. 그 원인은 구조조정과 일상적 노동강도의 강화로 인한 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정말 실감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과로사는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간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노동자의 수는 무려 1,500명이 넘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루에 4명이 쓰러지고 그 중 1명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과로사하는 노동자의 나이도 점점 젊어지고 있습니다. 죽도록 일을 시키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견디지 못하고 자살할 정도로까지 일을 시키고 스트레스를 준다는 겁니다. 최근 일본에서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과로에 의한 자살”입니다. 정신(마음)이 견딜만한 수준을 넘어선 노동과 그걸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는 휴식도 없는 것 때문에 자살하는 것. 직장에서의 노동이 도저히 살아서 견뎌낼 수가 없는 지경인 겁니다.
전체 연재를 마치며
오늘은 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봤는데요, 정말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꿔내는 일이 절대로 쉽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두어서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노동자가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마른 걸레 쥐어짜듯'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힘을 최대한 쥐어짜는 노동현실을 바꾸어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적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장기간의 연재를 열독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