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이명박 정권의 교육시장화 정책
아이들이 뿔났다!
진보교육연구소 소장 이 현
오렌지? 어륀쥐? - 영어몰입교육 파동
이명박은 대통령 선거에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이라는 교육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마 공교육을 강화하여 사교육의 필요성을 대폭 진보교육연구소 소장 이 현줄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일 게다. 하지만 구체적인 공약들을 살펴보면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학교를 시장판으로 만들어 사교육비를 확대시키고 교육 불평등을 더욱 구조화시킬 정책이라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새 정권 출범 전인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의 방향을 한 눈에 가늠해볼 수 있는 ‘영어몰입교육’ 파동이 일어났다. 인수위에서 처음에 제시한 ‘영어몰입교육’은 가능한 모든 과목에서 영어로만 수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영어몰입교육을 제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세계는 글로벌 경쟁시대이고, 영어가 글로벌 언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많아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자는 것이다. 즉 그들은 교육의 목표를 ‘영어 배우기’로 집중시키려 한 것이다. 다른 과목의 수업이 부실화되더라도(실제로 우리말로 수업을 해도 많은 학생들이 수업의 내용을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학생들이 영어몰입교육을 받을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학부모들이 영어사교육비를 더욱 많이 지출해야 할지라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영어, 영어만이 그들 눈에는 선진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우리보다 영어를 잘 하는 많은 나라들이(영·미의 식민지였던 예를 들어 인도, 말레시아, 필리핀 등 모두 우리보다 영어를 잘 한다.) 우리보다 못 살고 있으며, 우리처럼 영어에 광적인 관심을 쏟지도 않고 영어 실력도 떨어지는 일본은(국제 영어인증시험인 토플에서 우리나라는 평균215점 일본은 191점이다.) 여전히 선진국을 유지하고 있다. 영어는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내에서 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필수코스이며, 이명박 정권의 인물들은(대부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 등을 통해 출세한 사람들이다.) 영어를 통한 개인적인 출세의 경험들을 마치 나라를 살리는 길인 것처럼 확대 포장하여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의 ‘어륀지 소동’은- 그 덕에 수많은 오렌지들이 집회장에서 수난을 당하였다.- 영어몰입교육 사태의 화룡점정이었다.
영어몰입교육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과 학생들의 마음은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몰입교육 사태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무능하면도 저돌적인 정권, 어떤 정책이 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없이 경쟁력 강화만 염불처럼 외우는 시장제일주의를 앞세우는 강남 정권으로서의 이명박 정권의 미래를 보여주는 예고편이었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난 국민들이 모두 좋아할 줄 알았다? ” - 4·15 학교 자율화 조치
영어몰입교육 사태로 한바탕 국민들과 학생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던 이명박 정권은 4·15학교 자율화 조치를 통해 더욱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4·15 학교 자율화조치는 학교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고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된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해체하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0교시 부활, 우열반 편성 허용, 학교보충수업에 학원 참여 허용, 촌지 규제 조치 폐지 등등 수많은 문제점을 담고 있다. 우리는 ‘자율화’와 ‘다양화’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정부가 내세웠던 구호가 학교 자율화와 다양화의 확대였다.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율화 조치는 곧 시장적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며 이는 곧바로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을 확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열반의 편성은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유리할 수 있지만 다수의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고 그들을 패배자로 내모는 반교육적 행위이다. 결국 일부 학교에서는 성적순으로 식당을 이용하도록 하는 어처구니없는 조치로 이어졌다.
또한 입시경쟁이 치열한 교육현실에서 최소한의 규제조치의 폐지는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을 해치는 과열 경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어떤 학교에서 0교시를 하면 다른 학교에서 -1교시를 하게 되고, 어떤 학교에서 밤 11시까지 야간학습을 연장하면 옆에 학교에서는 12시까지 연장한다. 경쟁은 경쟁을 낳고 결국 교육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경쟁만이 남게 된다.
교육 주체들과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학교 자율화 조치를 발표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이번 조치가 모든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줄 알았는데 왜 반발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여 또 한 번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고 말았다.
교육에서만큼은 경쟁과 시장화는 이제 그만! - 덜 가진 자에게 더 좋은 교육을!
교육은 본질적인 속성상 경쟁과 어울릴 수 없다. 예를 들어 여기 한편의 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성적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시를 공부하는 학생은 오로지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시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는 시의 주제가 뭐고 소재는 무엇이며, 어떤 표현 기법을 사용하였는지 열심히 암기할 것이다. 이는 시를 읽는 본래의 목적인 정서적 감동을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듯 입시경쟁이 과열화된 한국의 교육은 교육의 본질로부터 끊임없이 이탈해가고 있으며 입시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경쟁은 기본적으로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교육은 남을 누르는 승리를 목적으로 할 수 없다. 모든 학생들이 자기의 풍부한 잠재성을 계발하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사회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다양한 능력을 키워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개개인의 학생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 지원 등이 기본적인 원리가 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교육의 본질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교육 시장화를 단호히 배척할 수밖에 없다. 시장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는 강자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해주고 약자들에게는 기회를 더욱 박탈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교육에서만큼은 시장의 원리가 아니라 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해 주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공공성과 연대의 원리가 관철되어야 한다. ‘많이 가진 자에게 더 좋은 기회’가 아니라 ‘덜 가진 자에게 더 좋은 교육을’이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줄줄이 추진 중에 있는 교육 시장화 정책!
영어몰입교육 사태와 4·15 학교 자율화 조치는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 시장화 정책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미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부터 교육을 황폐화시킬 강력한 시장화 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초등교육에서 대학교육까지 전방위적으로 시장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 정책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귀족학교에서 서민학교까지 - 고교 다양화 정책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정책이 추진 중에 있다. 이름은 다양화이지만 기존의 고교 평준화 체제를 해체하고 고교를 계급화·서열화하겠다는 발상이다. 평준화 이전 60·70년대의 고교 서열화가 단지 입시 성적에 의한 서열화라면 지금 추진 중에 있는 고교 다양화는 교육여건이나 교육과정, 학교 체제 등 모든 측면에서 질을 달리하는 즉 귀족학교에서부터 서민학교까지의 계급적 서열화이다. 결국 돈 많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훨씬 좋은 교육 여건에서 공부하게 되고 돈 없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옆의 피라미드는 고교 다양화 정책이 현실화시킬 고교 서열체계이다. 부모의 경제적 지불 능력과 학생들의 중학교 성적에 의해 완전히 다른 학교 체제에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며, 이제 대입이 아니라 고입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입시경쟁과 사교육은 더욱 빨라지고 심화될 것이며, 아이들은 훨씬 어린 나이부터 갈라치기와 불평등의 고통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