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경험과 한계, 촛불은 어디까지 밝힐까!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김재광
87년 어느 가을 두발단속을 하던 학생부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화되니까. 뵈는게 없냐?!” 평소 같으면 훈육(?)의 몽둥이를 미친듯이 휘둘렀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선생은 혼자말 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미친 몽둥이를 그저 손에서만 튕기고 있었다. 당시에 난 학생부 선생에게 무력감 비슷한 것을 느꼈고, 87년 투쟁의 사회적 경험이 이렇게 난데없는 곳에서 어처구니없는 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놀라웠고, 역사적 경험이라는 것이 참으로 깊고 넓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선생은 몇 개월 뒤에 미친 몽둥이를 다시금 휘둘렀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 역시 학생부 선생의 역사적 경험이며 자각(?)이였으리라..
사회적인 거대한 경험과 투쟁(사회적 학습 또는 경험))은 예상치 못한 곳 까지 이르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하는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촛불 소녀/소년이 불을 밝힐 때 그 당참과 재기발랄함은 변화된 세월을 상징한다. 변화된 세월은 기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입시와 경쟁의 레이스에서 숨막히고 힘들도 세상을 보는 눈을 누군가 전한 것이고(그것이 부모이건 /집단지성이건 간에) 약간의 두려움만 떨치면 세상에 나와서 외쳐도 된다는 지난 20년간의 학습과 경험이 축척된 것이다. 87년 대투쟁의 역사적 경험이 그 가을 학생부 선생에서 그치니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변이를 겪으며 촛불소녀/소년에 이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험주의자다. 자신(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인식한다. 이론이 자신의 경험과 부합하지 않으면, 이내 별다른 고민 없이 이론 역시 자신의 경험으로 대치시킨다. 때문에 이러한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가 고집을 부리면 대책이 없고, 권력을 잡으면 더 힘들다. 2MB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해봤어?”라고 하니, 극단적 경험주의자의 참담함을 온 국민이 느끼고 있다.
한편 역사적/사회적 경험 특히 민주주의와 직접행동의 경험은 설사 직접 참여하지 않을 지라도 ‘자각’을 부른다.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환경, 지금까지 문제시하지 않았던 제도, 지금까지 무덤덤했던 일상을 자극하는 것이다. 87년 투쟁이 그때 그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집단적 자각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변이를 만들어 오늘에 이른 것과 같이 촛불의 역사적 경험은 또 다른 자각과 변이를 줄 것이다. 잠시 움찔했던 정권이 다시금 방송을 장악하고, 불온한 네티즌을 색출하고, 검경을 동원한 온갖 탄압으로 줄기차게 내달려도 대중의 사회적 경험을 모두 빼앗을 수는 없다.
촛불이 마주친 한계는 오히려 20년 전 경험이 만들어낸 한계이다. 참으로 모순되면서도 역사적 진전의 순간이다. 형식적인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오히려 촛불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정선거를 한 것도 아닌,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나”, “의회는 무엇 하러 만들었나, 국회의 역할 해야 한다”라는 논리에 대해 감성적 적대성은 완연하나, 딱히 응대할 현실적 자신감은 실상 없다. 그러나 한계는 곧 진전의 징후이다. 대중은 마주친 대의민주주주한계를 이전과 다르게 사고할 것이고,(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대안을 모색이거나) 대중의 직접적 요구와 행동이 어떻게 실현될 지를 수많은 변이를 통해 향후 수년간 실험할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하나의 사건으로 끝낼지, 아니면 변이와 변종을 통해 또 다른 대안을 만들지는 경험한 자와 경험을 이어가는 자의 몫이다. 확신하건데 촛불의 경험은 예상 못한 곳까지 밝힐 것이고, 변이와 변종을 창출할 것이며, 우리가 변이와 변종을 통해 역사적 경험을 몸으로 구현하려 노력할 때 알량한 대의제와 형식 민주주의를 넘는 들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