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8/11월/현장의 목소리] “22개월짜리 비정규직 인생”

“22개월짜리 비정규직 인생”

- 신용보증기금 비정규직 투쟁 -

전국사무연대노조 신용보증기금비정규지부 해고자복직투쟁단 김현우


365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퇴근을 하면서도 언제 짤릴지 몰라 정규직의 부당한 무시와 차별을 참아야했고 그렇지 못한 동료들은 회사를 떠나갔습니다.

또 정규직들은 실적을 핑계 삼아 사사건건 계약해지를 운운하며 불안감을 조성하여 함께 일하는 동료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까지 몰아갔지만 그마저도 감내하면서 모두가 불만이 많았어도 비정규직이라는 현실과 삶에 쫒기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2008년에 들어서면서 비용절감이라는 미명아래 회사에서 무리한 수수료 인하 요구를 하는 바람에 더 이상 ‘고용안정’이라는 기득권이 없어진 장기근무자와 22개월 밖에 근무할 수 없는 단기근무자들은 함께 ‘고용안정’과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였습니다.
얄굳게도 비가 많이 오는 2008년 5월 18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지역의 동지들이, 아니 그 땐 지독히도 단결할 수 없는 동료들이 5월의 노래가 간간이 흘러나오는 버스 한 대에 함께 몸을 실어 대전에서 민주노총 사무실까지 반신반의 하면서 올라왔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선출된 지부장이 그 다음 날 사퇴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전국사무연대노동조합 신용보증기금비정규지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의 공동 목표를 향해 집행부도, 조합원도 최선을 다하였고 함께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자기 조건이 되어서 더 열심히 한 동지들도 있고, 헌신한 동지도 있고, 또 여러 환경 때문에 앞서서 나서지는 못하였지만 뒤에서 함께 한 동지들도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신용보증기금 비정규지부를 무시하는 행태와 오만에 맞서 그 뜨거운 여름 우리는 상복을 입고 본사 앞에서 가열차게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투쟁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투쟁은 장기근무자들만을 위한, 또는 단기근무자들만을 위한 투쟁이 아닌 모두를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아직도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못되지만, 6명의 해고자 동지들과 일터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동지들이 함께 5개월 동안 투쟁하면서 서로에게 신뢰를 쌓아가면서 변화하는 모습은 아직은 작지만 희망으로 보입니다.

금융공기업들과는 달리 시중은행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속속 전환하고 있습니다.
국민은행은 올해부터 비정규직 인원 8,350명(텔러직, 지원직, 텔러마케터 및 기능인력)을 무기계약직으로 순차적으로 전환하였고, 무기계약직의 복리후생의 경우에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하며 임금은 단계적으로 정규직의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외환은행과 기업은행도 무기계약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고, 신한은행도 내년까지 비정규직 1,500명 중 1천명을 정규직(350명) 및 무기계약직(650명)으로 전환키로 합의한 상태입니다. 우리은행은 정규직 임금 동결을 전제로 개인금융서비스와 사무직군 등 분리직군제를 도입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부산은행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하위직으로 전환해 고용을 보장하는 하위직군제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은 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피해나가기 위해서 11개월 연장계약을 하여 계약해지 하고 있고, 심지어 비정규직노조를 무시하면서 계속해서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용보증기금 홈페이지에는 “기업의 경제적, 법적 책임 수행은 물론이고 사회적 통념으로 기대되는 윤리적 책임의 수행까지 기업의 기본적인 의무로 인정하고 기업윤리 준수를 행동원칙으로 삼는 경영을 말합니다.
“법적 책임이 없는 경우에도 사회 통념에 어긋나면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기준을 선택하는 경영방식이 윤리경영입니다.” 라고 얘기하면서 매번 교섭에서 사측은 ‘법적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일하게 해달라는 저희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또, 정규직 노조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 기고문에서 “비정규직 양산은 소비의 축소를 불러와 영세자영업자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고, 대기업은 뭐든 시키는 대로 일할 비정규직을 고용해 마음대로 부려가며 몸집을 불릴 것이다. 종국에는 사회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힘써야 한다.” 라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비정규직 집회를 방해하려고 정규직 노조원이 사측 집회 신고를 하는 것을 보도도 수수방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측과 정규직노조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것은 저희들 비정규직투쟁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동지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측의 회유 협박에 동지들이 쉽게 흔들리는 모습에서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건강한 노동조합이 되기 위한 단련이라 생각하면서 6명의 해고된 동지들은 마포구 공덕동 신용보증기금 본사 앞에서 상복을 입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1인 시위 중에 시민들이 주신 음식과 격려의 말씀에 감사하고 승리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처음 1인 시위를 할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동지들이 적극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특히 여타 투쟁사업장에 대한 연대투쟁에 부정적이었던 조합원 동지들이 연대투쟁을 함께 하면서 작고 힘없는 비정규노동조합에게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하였고, 이제는 연대투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서로에게 부족했던 신뢰를 쌓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회사 생활에서는 못 느끼던 공동체 생활이, 비록 몸은 불편하고 힘들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더 잘 살기 위한 투쟁이 아닌, 살기 위한 투쟁이기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습니다. 저희들은 신용보증기금 앞을 떠나지 않고 복직하는 그날까지 투쟁 할 것입니다.

투쟁하는 노동자! 연대하는 투쟁으로! 비정규직 악법을 박살내고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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