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의료민영화에 맞서는
진보적 대안은 무엇인가?
제주의대 의료관리학교실 박형근
이명박 정부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세력들이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의료분야에 돈을 더 쓰겠다고 작심을 한 이상 보건의료체계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기회가 열린 셈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외국 경험을 비교해보면 공적 재원을 토대로 의료분야의 일자리를 늘려서 의료서비스의 질도 높이고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 편익이 비교가 되질 않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공적 재원을 마련해서 서비스 질을 높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자.
1) 무분별한 병상 신·증설 규제를 통한 합리적 경쟁구조로의 전환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병상 신·증설을 규제하고, 승자독식 무한경쟁구도를 합리적 경쟁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병상총량제가 시급하게 도입되어야 한다. 지역별 병상총량제는 지역별로 급성병상 총량을 설정하여 공표하고, 특정 지역에 공급된 병상총량이 일정 기준 이상을 넘어설 경우 새로운 병상 신·증설을 허가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지역별 병상총량제를 도입할 경우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급성병상 신·증설을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 있게 되어 국민의료비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수단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병원시장에 대한 강력한 규제 도입이 필요한 것은 현재 병원시장의 경쟁구도가 불공정한 경쟁이고,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경쟁이기 때문에 경쟁구도 자체를 합리적으로 재편해야하기 때문이다. 삼성과 아산병원은 국내 최대재벌의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병원인프라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고 있고, 우수한 인프라 탓에 우수 인력을 끌어들여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당장에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좋은 병원의 규모가 확대되는 것이 그리 나쁠 것은 없어 보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경쟁이 소수 재벌병원의 독과점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질 않다. 현재와 같은 경쟁이 지속된다면 대규모 자본조달 능력이 있는 소수 재벌병원의 경쟁력만 높이고, 이들의 시장지배력만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불공정 경쟁구조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한국의 보건의료제도는 재벌 손아귀에 놀아나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삼성의 경우 2008년 8월 1일자로 삼성서울병원과 강북삼성병원, 마산삼성병원, 성균관대 의대, 삼성생명과학연구소, 인성의과학연구재단 등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6개 기관을 '삼성의료원'체제로 통합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의료경영지원회사(MSO)와 생명공학 벤처기업, 건강증진센터 등 신규 사업 추진을 통해 경영합리화도 이룩하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 삼성생명이 주도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연계된다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벌이 주도하는 의료민영화의 길이 본격화되는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다. 의료분야를 삼성을 먹여 살릴 신수종 산업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그동안 물밑에서 추진하던 내용을 드디어 수면위로 올려 논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작금의 경쟁구조는 형식면에서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국민 건강을 해칠 암 덩어리를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별 병상총량제는 현재의 불공정 경쟁구조를 합리적 경쟁구조로 재편하는 기본 토대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과제는 지역별, 규모별로 의료 인프라의 격차를 해소해서 병원들이 갖고 있는 의료진의 실력을 토대로 경쟁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지역별, 병원 규모별 병원인프라의 상향평준화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2) ‘병원서비스발전기금’을 통한 공공과 민간병원의 질적 수준 향상 지원
재벌병원의 독과점이 강화되는 경향을 해소하고, 합리적 경쟁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의료 인프라 신증설을 규제하고, 현존하는 의료 인프라의 격차를 상향평준화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의료 인프라의 질적 개선을 위해 자본을 조달하고, 병원에 투자하는 목적은 개별 병원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국민의료보장의 틀 안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목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의료 인프라 개선에 투자될 자금은 공적으로 조성되고, 관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일관되게 지켜져야만 한다.
첫째, 의료 인프라 개선 사업을 위해서 정부 재정, 국민연금, 민간자본으로 조성되는 ‘병원서비스발전기금’을 신설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적 지원의 성격을 분명히 하기위해서는 정부예산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지만, 정부예산이 부족하다면 일정한 수익률을 정부가 보장한 조건에서 국민연금이나 민간자본유치를 통해서 자본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수백조원대의 국민연금과 유동자금이 있기 때문에 정부 당국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기금 조성에는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둘째, 조성된 ‘병원서비스발전기금’을 누구에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공공병원의 비율이 전체 병원의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공병원에게만 지원 대상을 국한하게 되면 의료 인프라 개선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 현실에서는 의료 인프라 질적 수준 개선 효과를 전국적으로 기대하기 위해서는 지원 대상을 민간 비영리법인병원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간비영리법인병원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면 전국의 대부분 종합병원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며, 지원을 원하는 개인병원들은 비영리법인병원으로 전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지원 대상에 제한이 없을 것이다. 대신 민간병원에 대한 지원의 투명성 확보와 법인 운영의 민주화 확보 등 기반 조성과 전제조건의 이행에 대한 평가와 모니터링이 전제 되어어야 할 것이다.
셋째, 어떤 부분에 대해서 지원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인프라 개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병원 시설 신·증축, 시설 구조변경이나 개보수, 그리고 일정액 이상의 고가장비를 지원 내역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넷째, 구체적인 지원 방식의 문제이다. 전국적 규모에서 대규모 자본 투자를 통한 의료인프라 개선사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민간자본유치사업(Build-Transfer-Lease: BTL)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정부에서는 BTL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민간이 공공시설을 짓고 정부가 이를 임대해서 쓰는 민간투자방식을 말한다. 절차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ㅇ 민간이 자금을 투자해 공공시설을 건설(Build)한다
ㅇ 민간은 시설완공시점에서 소유권을 정부에 이전(Transfer)하는 대신
일정기간동안 시설의 사용․수익권한을 획득한다.
ㅇ 민간은 시설을 정부에 임대(Lease)하고 그 임대료를 받아 시설투자비를 회수한다
정부가 정부예산, 국민연금,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기금을 조성하여 투자하고, 병원 시설 인프라 개선 자금을 책임지고 조달·상환하며, 공공병원과 민간비영리법인병원에게 장기간 시설 운영권을 부여해주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장비의 경우 시설 개선과 병행될 경우와 장비투자만 수행할 경우로 나누어서 사업 추진안을 만들 필요도 있을 것이다. BTL 사업기간은 20∼60년으로 장기로 설정하고, 원활한 투자 유치를 위해서 투자 수익률을 얼마로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후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BTL방식의 병원 지원은 국민연금이 되었든, 민간자본이 되었든 일정한 자본을 경제순환의 고리로 유입시킨다는 측면에서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해서 유동자본을 자본시장을 통해 의료시장으로 끌어들여 경제성장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제부처의 논리와 동일하지만, 이윤을 쫓는 민간자본이냐, 아니면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을 목적으로 투자되는 공적기금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BTL방식의 병원 지원은 그동안 자본조달이 어려워서 인프라 개선에 나설 수 없었던 많은 병원들에게 시설 인프라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의료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었던 지방에서 상당한 의료 인프라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비영리법인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결국 국민의 세금이나 다름없는 엄청난 돈을 들여서 시설을 지어주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되리라 생각한다. 의료 시설은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독재정권 하에서 통치의 정당성 확보를 목적으로 시급하게 전국민의료보험을 도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민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료기관들이 성장해 왔다. 현재, 의료기관의 90%가 민간소유이며, 이윤 추구 성향 또한 강하다. 전국의 어디를 가더라도 민간 병·의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공공병원을 신설하는 것은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민간 병원들도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며, 나름대로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비영리법인병원에 대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지원을 하자는 것은 민간의 공익적 역할을 보다 공고히 하자는 취지이며, 한국적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본다면 그 필요성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3) 병원 인력 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 질 향상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수를 더 많이 늘려야 한다. 과거에는 의사수가 부족해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수를 늘리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전문의 취득 후 일정 기간 후에는 90%의 의사들이 개원가로 빠져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적지 않은 의사들이 배출될 예정이다. 의료서비스 질 향상측면에서 뿐 아니라 의사인력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의사들이 병원에 근무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할 시점이 된 것이다. 현재 운영 중인 병원들이 병원에 보다 많은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100병상 당 의사수를 기준으로 진료비에 대해 차등 보상하는 의사 등급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의사 충원에 따르는 소요 인건비에 대해 충분히 보상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전문의 당 수술 건수, 시술 건수에 대한 차감 보상제 등도 생각해 볼 수 있 다. 그리고 전공의 근무 시간 상한제를 도입하여 의사인력 확대와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함께 도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의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간호 인력의 확충도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2007년 미국 병원통계연보를 보면 미국병원협회에 등록된 급성기 병원(general hospital)에서 일하는 간호사(full-time equivalent 기준)는 1,114,988명이 일하고 있고, 이를 100병상당 간호사수로 보면 136.7명의 간호사가 일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병원급 이상 병원에 일하는 간호사가 72,761명으로 100병상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수는 27.9명으로, 미국에 비해 100병상 당 간호사가 108.8명이나 적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병원에 적용되고 있는 간호등급제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병원들이 실질적으로 간호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보상수준을 대폭 인상해주어야 한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명목으로 단순 돌봄 서비스나 보조 인력을 확충하는 근시안적 일자리 창출 방안만 내놓지 말고,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도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닐 것이다.
재벌병원이 병원의 대형화, 고급화 경쟁을 촉발시킨 이후 기존 병원들은 시설 개선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에 급급하다 보니 인력확충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제 공적 재원을 활용하여 병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인프라 확충 경쟁 부담을 덜어주고, 인력의 양적 확충, 질적 수준 제고, 그리고 서비스 제공 경로의 개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질적 수준 향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쟁 구조를 바꾸어줄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병원이 갖고 있는 인적 역량, 조직의 실력, 관리 능력을 기반으로 경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건강보험 역시 보상수준 현실화,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적극적 지원, 합리적 경쟁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