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는
어떤 이유로도 침해 받아서는 안된다
금속노조 하이텍이알씨디코리아(이하 하이텍) 지회 여성노동자
정신질환 산재승인 소송에 대한 법원의 기각 처분에 부쳐-
하이텍 지회 전체 조합원인 여성노동자 13명은 회사측의 CCTV를 이용한 조합원 감시, 왕따라인 설치 등 차별, 노조탄압 및 파괴행위로 인하여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적 적응장애’ 등의 진단을 받고 지난 2005년 5월 10일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에 산재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공단은 “노동조합 활동 또는 쟁의단계에 들어간 이후부터 조합활동 중에 생긴 것으로 업무적 사유라 할 수 없어 업무와 상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5월 27일 전원산재불승인 처분을 하였다. 재해자인 하이텍 지회의 조합원들과 금속노조 및 공동대책위 등의 산재승인 요구에 농성장 강제철거와 경찰특공대 투입으로 대응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후 심사청구마저도 기각하였다.
산재신청후 거의 3년만인 2008년 4월 4일 서울행정법원은 하이텍 지회 전체 조합원 13명중 12명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라고 선고하였고 1명의 조합원은 육아휴직기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이는 한 명을 불승인한 문제가 있었지만, 하이텍 사측의 오랜기간에 걸친 감시와 차별, 노동조합 탄압으로 발생한 노동자들의 집단정신질환에 대하여 업무상재해, 즉 산업재해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이텍 지회 조합원들은 산업재해를 인정한 판결 이후에도 치료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고등법원에 항소하는 폭력을 저질렀던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할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근로복지공단은 무참하게 짓밟았다.
근로복지공단은 무엇을 위한 기관인가?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의 즉각적 치료를 보장해야하고 또한 그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공단은 수천억 재정흑자 운운하며 본래의 사회적 책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산재보험의 공공성을 부정하고 치료받을 권리를 짓밟는데 앞장서고 있음이 하이텍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에서부터 항소의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업무상재해를 부정하고 치료와 생계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근로복지공단의 행태는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생활안정 실현’이라는 근로복지공단의 목표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산재법 개악이후 최근에는 많은 재해노동자들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의한 불승인남발과 축소변경 승인 등으로 인해 치료받을 권리조차 집중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를 받아들여 ‘하이텍 지회 13명 조합원에 대한 산재불승인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확정하였다. 법원은 “현장 내 조합원 왕따 라인을 설치하는 것으로는 하이텍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이 있을 수 없다”, “조합원들을 제외하고는 CCTV의 설치로 인하여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람이 없다”, “스트레스의 주요한 원인은 회사와 노동조합 사이의 임금인상을 쟁점으로 한 쟁의와 노동조합 활동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며 쟁의와 노동조합 활동은 하이텍 자본의 지배·관리하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산재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CCTV 설치와 왕따라인 배치는 조합원 감시와 통제를 위한 것이었고, 사측의 탄압은 장기간에 걸쳐 자행된 인권을 침해한 폭력이었다는 것은 국정감사, 특별근로감독, 인권위, 1심 행정법원에서 공히 확인하고 인정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의 탄압에 의해 발생한 우울증을 동반한 적응장애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오로지 근로복지공단과 사법부뿐이다. 1심 재판부의 판단마저 뒤엎는 사법부의 행태는 지금도 아파서 치료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주장하는 대로 받아 적은 듯한 고등법원의 불승인 판결과 대법원의 불승인 확정은 자본가들의 손발이 되고 있는 사법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가들의 천국을 향해가는 정권들과 노동부, 근로복지공단에 우리는 수도 없이 요구해왔다. 경쟁과 효율로 경제를 살리자며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자본의 정부에게 모든 일하는 이들이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현장’, 더 나아가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안전하게 일할 세상과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과 해당 기관들의 노동자 죽이기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가고 있다. 자본의 구조조정과 해고 위협 속에서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있고 많은 노동자들이 다치고 병들고 죽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는 아픈 노동자들의 고통을 개인적 특성때문이라고 하거나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하며 불승인을 남발하고 있으며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옳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는 현실에 치가 떨린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일하는 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등한시하고 짓밟는 폭력에 언제까지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근로복지공단이 변하기는커녕 날로 도를 더해가는 근로복지공단의 노동자 건강권 침해행위와 사법부의 산재법 법정신 왜곡행위는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염원하는 전국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공단의 불승인 남발이 당연하게 여겨지기조차 하는 열악한 현실,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고용 흔들기와 노동조건 악화에 맞서 건강하게 일할 일터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현장 노동자들의 분노와 요구를 모아 단결투쟁을 벼려 나가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이텍 지회 여성 노동자 뿐 아니라 전체 재해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쟁취하고 나아가 모든 일하는 이들이 누려야 할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안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그날까지 투쟁하는 이들과 어깨 걸고 당차게 전진해 나가자.
2009년 4월 9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