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하여
위니아만도 조합원 김미성
용수철을 누르고 있다가 놓으면 위로 튀어 오른다. 누르는 힘이 강할수록 튀어 오르는 힘도 강하다. 우리의 노동운동은 용수철을 눌렀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산업화의 초기단계로 접어들면서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된 내용도 아니었고 그 조차도 실제 현장에서는 준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를 공산주의 또는 간첩활동과 동일시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으로 박봉이라도 일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최저임금의 경계가 있을리 만무하여(사실 그 시대 노동자 중에 최저임금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사측의 노동력 착취와 부당행위 또한 극심했던 시절이라 하겠다. 정부 및 권력도 산업발전과 국가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보다는 사측의 입장을 더 옹호하여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공권력으로 억압하고 심지어는 노동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감옥에 보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노동자의 인권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일해온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오늘날 이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또한 사측의 해고와 협박, 폭력, 거기에 권력의 극심한 탄압의 위협 속에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노동운동을 하며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요구를 조금씩 관철시켜 왔던 것이다.
나는 1997년 1월 입사하여 12년 3개월간 위니아에 근무하였다. 그러나 09년 4월 6일부로 해고를 당하였고 현재 복직 투쟁중이다. 물론 12년3개월간 근무하면서 좋은 점이 나쁜 점보다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항상 약자는 강자에게 질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울산에서 7년 동안 서비스에 근무했었고 해고 당하기전까지는 대구 영업소에서 근무하였다. 대구에 근무한 5년 넘는 기간 동안 일에 매진했던 것 밖에 기억이 없다. 휴일에 상사가 출근하라고 하면 출근 할 수밖에 없었고 휴일 및 법정공휴일에도 근무했었다. 그런 상황에 연·월차 쉬어 보는 건 꿈같은 얘기였다. 월차 한번 마음 편히 쉬어 본 적 없었다. 출·퇴근시간은 정해져 있으나 제대로 퇴근 해 본 적 없었고, 남직원에 비해 내근 관리직이라 3년 전부터는 실적관리로 인해 급여마저 동결상태였다. 심한 모욕감을 느낄만큼의 욕설도 들었다. 하지만 참고 생활 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렇게 하는 줄만 알았고 어느 누구에도 얘기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노동조합 가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지방에 있는 것, 할 수 있었더라도 상사들의 만류가 컸었다고 08년 8월 노조 가입 후 알게 되었다.
부당한 처우에 더 이상 이대로 있으면 내가 못 견딜 것 같아 08년 8월에 노동조합을 접하게 되었고 계속 이렇게 근무해선 난 인간답게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입하게 되었다. 물론 노조가입 후 내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회유하는 상사와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로 인해 불편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09년 2월부터 시행한 희망퇴직 공고에 영업소의 어느 누구도 해고당한 사람이 없었지만 난 해고 당했다. 서울 영업 책임자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여직원은 모두 아웃소싱이며 인건비 비중이 타사에 비해 너무 높게 되어 있어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으니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너무도 부적합한 권유(?)와 설득을 퇴사하기 3일 전까지도 들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까지 온 것이 나의 탓인가? 회사를 경영하는 책임자는 무엇을 하고 불합리하게 열심히 일한 내가, 아니 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오직 나만 해고를 당해야 하는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에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받았을 때 열심히 회사일 할 수 있냐고만 물었지 언젠가 회사가 어려워지면 넌 나가야 한다는 말은 왜 하지 않았던가? 했더라면 이 회사를 위해 헌신하며 일에 매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고당한 지금 1달여가 지났다. 아산과 대구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주중엔 아산에서 해고자 복직을 고전분투 하며 지내고 주말엔 대구에 내려오는 생활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난 이런 나의 현실을 비관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위니아 경영진과 임원들 모두 채권단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언젠가 이대로 가게 된다면 위니아 김치냉장고 딤채 명성은 추락하게 되어 몰락할 것이다.
복직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앞서 말한 내가 당한 부당한 해고에 사유를 꼭 밝혀 나와 같은 힘없고 열심히 일한 노동자의 피같은 눈물, 꼭 닦아 주고 싶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충남 아산의 지역경제 한축을 담당하던 우리 위니아만도(주)가 직원들 정리해고에 나서고 있어 지역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위니아만도(주)는 지난 2월, 전 직원 중 220명에게 정리해고 통보를 해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해외 투기자본 외화유출의 피해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위니아만도는 지난 2005년 씨티밴처캐피탈(CVC)이 만도홀딩스(주)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여 지분 100%를 인수 한 후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8년간 창사 이후부터 외국계자본의 경영인수 및 합병으로 경영에 문제를 보인 경영진은 부채전가 및 유상감자를 통해 투자금 2400억원 중 1600억원을 회수했으며, 현재까지 기업이윤 4500억원 가량을 해외로 유출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니아만도는 2008년 8월 현금유동성위기가 닥치자 현 경영진과 노동조합이 이를 해소하기위해 노사간 합의를 거쳐 사원아파트를 사원들에게 매각, 142억여원의 채무를 상환하면서 부도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경영진과 CVC는 지난해 적자운영으로 인해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지난 2월 전 직원 500여명 중 220명의 직원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해 물의를 빚고 있다.
위니아만도 노조와 금속노조 충남지부는 지난 5일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온양온천역 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정리해고 직원들에게 제시한 20개월의 급여 180억원 제시를 철회하고 정리해고 계획을 백지화하라고 밝혔다.
중재에 나선 아산시 관계자도 기업의 고용관계는 전적으로 기업의 몫이지만 노사간 문제는 지역 전방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위니아만도 본사를 방문해서 지역경제를 위한 신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중재자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지역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타 언론매체에서도 경영자의 일탈행위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것이다.우리는 위니아만도의 재무제표와 페이퍼컴퍼니, CVC의 재무재표. 기타 부속서류의 검토를 통해 회사간의 불법거래는 없었는지 밝히고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가 있었다면 이를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